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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37 학개서 설교

학개 1장 1절-15절, 너희의 소위를 살피라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by 구약장이 2025.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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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1장 1-15절 강해 설교. 본문 말씀은 "너희 소위를 살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무너진 성전을 재건한 유다 백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고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회복하는 길을 제시합니다.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보십시오.

 

학개 1장 1절-15절, 너희의 소위를 살피라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학개 1장 1절-15절, 너희의 소위를 살피라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학개 1장 1절-15절, 너희의 소위를 살피라

 

 

서론: 안락함과 사명 사이

 

바사 제국의 수도 수산 궁, 왕의 술 관원이었던 느헤미야는 부족할 것 없는 안락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의 최측근에서 부와 명예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고국 유다에서 온 형제 하나니를 통해 예루살렘의 참담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성벽은 무너지고 성문은 불탔으며, 남은 백성들이 큰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느 1:3).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느 1:4).

 

그의 마음은 더 이상 수산 궁의 안락함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무너진 하나님의 도성과 백성들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끌어안았습니다. 결국 그는 왕의 허락을 받아 죽음을 무릅쓰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느헤미야는 개인의 평안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공동체의 회복을 먼저 선택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학개서의 백성들은 안타깝게도 느헤미야와 정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은 황폐하게 버려두고, 오직 자신의 안락한 집을 꾸미는 데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배경과 본문: 멈춰버린 성전 건축

 

오늘 본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지 약 18년이 지난, 다리오 왕 제2년 여섯째 달(B.C. 520년경)을 배경으로 합니다. 귀환한 백성들은 처음에는 성전 재건을 시작했지만(스 3장), 사마리아인들의 방해와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딪히자 이내 중단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학 1:2)고 합리화하며, 정작 자신들은 화려하게 꾸민 '판벽한 집'(벽에 널빤지를 댄 집)에 거주하는 모순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영적 무감각과 잘못된 우선순위를 질책하시며, 학개 선지자를 통해 중요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첫째, 너희의 소위를 살피라.

 

본문 5절과 7절에서 하나님은 두 번이나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살필지니라'는 히브리어로 *'시무 레바브켐 알-다르케켐'(שִׂימוּ לְבַבְכֶם עַל-דַּרְכֵיכֶם)입니다. 직역하면 "너희의 마음을 너희의 길(삶) 위에 두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반성을 넘어, 삶의 방향과 결과가 어떠한지 마음을 쏟아 냉철하게 평가하고 진단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유다 귀환 공동체는 하나님의 집은 황폐하게 버려둔 채 자신의 풍요만을 추구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6절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으나 배부르지 못하며... 삯을 받아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 우선순위가 무너진 삶의 공허함과 허무함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인생의 기준이신 하나님을 떠나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사사 시대(삿 21:25)의 영적 공허함과 같습니다. 또한 말라기 시대에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십일조와 봉헌물)을 도둑질했을 때, 그들의 삶이 저주로 인해 황폐해졌던 것과도(말 3:8-9) 일맥상통합니다

 

최근 '파이어족'이나 '영끌'이라는 신조어처럼, 많은 이들이 물질적 풍요와 조기 은퇴를 위해 밤낮없이 수고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심각한 '번아웃'과 내면의 공허함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학개 시대 백성들처럼, 열심히 살지만 정작 삶의 핵심 가치이신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서 밀어낸 결과입니다. 하나님 없는 수고는 결국 '구멍 뚫어진 전대'처럼 허무할 뿐임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둘째, 산에 올라 나무를 가져오라.

 

하나님은 그들의 문제를 진단하신 후, 구체적인 처방을 내리셨습니다. 8절에 기록된 말씀인,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라는 말씀의 '산에 올라가서'는 즉각적인 행동과 수고를 요구하는 명령입니다. 당시 황폐해진 유다 땅에서 성전 건축에 쓸만한 목재를 구하려면, 먼 산까지 직접 올라가 나무를 해오는 헌신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하필 '나무'를 가져오라고 하셨을까요? 솔로몬 성전처럼 백향목이나 금은보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최선, 비록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들의 순종이 담긴 '나무'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재료의 화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의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나무'로 지은 성전을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한 영광을 얻으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출 35장), 백성들이 '마음이 감동된 자'와 '자원하는 자'가 자신의 소유를 기쁨으로 가져와 지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주셨고, 노아는 "그대로 다 준행하였다"(창 6:22)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 언론에서, 은퇴 후 시골 마을 도서관에서 묵묵히 책을 정리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한 노신사의 사연을 보았습니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나무' 하나를 가져오는 심정으로 봉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거창한 헌신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시간, 재능, 물질이라는 '나무'를 가져와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세워가자고 초청하십니다.

 

셋째,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백성들은 학개 선지자의 책망과 도전을 들었습니다. 12절은 그들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학개 1:12,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유다 귀환 공동체는 변명하지 않고 즉각 순종했습니다. 바로 그때, 13절에서 학개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학개 시대의 무너진 성전은 죄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백성들은 순종의 '나무'를 가져와 성전을 다시 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으로 세워진 이 땅의 성전은 영원한 안식과 구원을 줄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전 된 자기 육체"(요 2:21)를 가리켜 말씀하시며, 이 땅에 '참된 성전'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심으로, 죄로 인해 황폐해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회복시키셨습니다. 학개가 선포했던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는 궁극적인 약속, '임마누엘'의 성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마 1:23).

 

이제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나무'를 나르는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자로서,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으로 지어져 가야 합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22)

오늘 하루, 나의 삶에서 가장 황폐하게 방치된 '영적 성전'(예: 말씀 묵상 시간, 골방 기도, 가정 예배)을 점검해 보십시오. 그리고 매일 아침(혹은 저녁) 단 10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끄고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는' 거룩한 시간을 구별하여 다시 세우기를 결단합시다.

 

 

결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도전합니다. "너희의 소위를 살피라." 학개 시대 백성들은 책망을 듣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즉각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황폐했던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했을 때,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는 하나님의 임재와 위로가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혹시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일은 뒤로 한 채, 나 자신의 '판벽한 집'을 꾸미는 데만 분주하지는 않았습니까? 오늘 나의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하나님께로 맞추어 나갑시다. 무너진 예배의 자리를 회복하고, 방치했던 기도의 성전을 다시 세우기로 결단할 때, '구멍 뚫어진 전대'가 채워지는 회복의 은혜와 "너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우리의 삶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함께 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핑계와 변명 속에 안주하며 주님의 전을 황폐하게 방치했던 저희의 모습을 고백합니다. "너희 소위를 살피라"는 말씀 앞에 마음을 쏟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우리의 삶의 최우선순위를 주님께 두게 하시고, 무너진 신앙의 영역을 '함께 하노라'는 약속의 말씀 붙들고 다시 세워가게 하옵소서.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삶의 무너진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게 하소서.
  • 핑계를 멈추고 즉각 순종하는 믿음을 주소서.
  • '주님과 함께' 하는 임재의 기쁨을 회복하소서.

 

학개 1장 1절-15절, 지금, 여기, 다시 세우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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