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4장 1-13절 설교입니다. 요시야 왕이 어린 나이에 하나님을 찾고(16세), 우상을 제거하며(20세), 무너진 성전을 수리(26세)한 개혁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봅니다. 그리고, 죄를 정결하게 하고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여,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삶을 회복하는 길을 제시합니다.

역대하 34장 1절-13절, 다윗의 길로 행한 왕 요시야
서론
한나가 눈물로 기도하여 얻은 아들 사무엘은 젖을 떼자마자 실로의 성전에 드려집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엘리 제사장과 그의 불량한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 사이에서 구별된 삶을 삽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하나님의 궤가 있는 성전에서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처음에는 엘리가 부르는 줄 알았지만, 세 번째 부르심에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 3:10)라고 응답합니다. 이 어린 사무엘의 순전한 들음과 순종이 이스라엘의 영적 암흑기를 끝내는 사사 시대의 마지막과 왕정 시대의 시작을 여는 위대한 선지자의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시야 왕 역시, 사무엘처럼 어린 나이에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며 위대한 개혁의 불씨를 당겼습니다.
배경과 본문의 내용
요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는 유다 왕국이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므낫세는 55년간 통치하며 유다 전역을 온갖 우상으로 더럽혔고, 아버지 아몬 왕 역시 악을 행하다가 2년 만에 신하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불과 여덟 살의 나이에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왕위에 오른 요시야는, 그 어떤 왕보다 철저한 개혁을 단행합니다. 본문 1-13절은 그의 통치 31년 중 개혁의 전반부를 다루며, 어떻게 그가 우상을 제거하고 무너진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첫째,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오늘 본문의 첫 번째 핵심은 3절에 있습니다.
역대하 34:3,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제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
요시야가 왕이 된 것은 8세,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것은 16세였습니다. ‘어렸을 때’(נַעַר, 나아르)는 청소년기를 의미하며, ‘찾고’(לִדְרוֹשׁ, 리드로쉬)는 ‘간절히 탐구하다’, '열정적으로 구하다'는 뜻입니다. 16세의 요시야는 할아버지 므낫세와 아버지 아몬의 타락한 신앙이 아니라,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의지적으로 탐구하고 따르기로 결단했습니다.
신앙은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결단의 산물임을 보여줍니다. 이같은 요시야의 모습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10대의 다니엘이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뜻을 정한"(단 1:8) 모습과 같습니다. 요시야가 유다의 우상 문화를 거부했듯, 다니엘은 바벨론의 혼합주의 문화를 거부했습니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 '갓생'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매일 정한 목표를 실천하며 성취감을 얻는 삶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갓생'이 자기만족과 성공에 머무른다면, 요시야가 보여준 '갓생'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갓생'은 이른 나이부터 삶의 기준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두고, 그분의 뜻을 간절히 '다라쉬'(찾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둘째, 정결케 한 후 견고히 세우라
이어서 요시야는 성전을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8절입니다.
역대하 34:8,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 지 열여덟째 해에 그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를 마치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시장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개혁의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20세부터 6년간 우상을 '정결하게 한'(לְטַהֵר, 레타헤르 - to purify) 후에, 26세가 되어 성전을 '수리'(לְחַזֵּק, 레하제크 - to strengthen)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자크'는 '견고하게 하다', '강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신앙 회복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먼저 우리 안의 죄와 우상을 제거하는 철저한 회개(정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무너진 예배와 말씀의 기둥을 다시 견고하게 세우는(수리) 재건이 따라와야 합니다. 청소만 하고 채우지 않으면, 더 악한 귀신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마 12:43-45). 이는 느헤미야의 개혁과도 같습니다. 그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하자크'(재건)한 후, 도비야가 차지했던 성전의 방을 '타헤르'(정결)하게 했습니다(느 13:9).
최근 도시 재생 프로젝트는 낡은 건물을 무조건 부수는 재개발 대신, 불필요한 구조물을 제거하고(정화) 본래의 기능을 회복시키는(재생) 방식을 택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 없이 쌓아 올린 세상의 가치관과 죄악의 구조물을 먼저 철저히 제거하고, 그 자리에 말씀의 기초와 예배의 기둥을 다시 '하자크'(견고하게) 세워,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셋째,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시야 개혁의 핵심은 무너진 성전을 수리(하자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므낫세와 아버지 아몬이 더럽힌 성전, 즉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가 수리한 것은 눈에 보이는 돌로 된 성전이었습니다. 그의 개혁은 위대했지만, 백성들의 마음 깊숙한 죄까지는 완전히 정결(타헤르)하게 할 수 없었고, 유다의 멸망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19)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자신의 몸 된 성전을 십자가에서 허무시고 부활하심으로, 요시야의 개혁으로는 불가능했던 우리의 근본적인 죄를 단번에, 영원히 정결하게 하심을 의미합니다.
요시야가 돌 성전을 수리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3:16). 이제 우리는 우리 몸이 곧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내 안에 성전을 더럽히는 우상(탐심, 미디어 중독, 시기, 분노)이 있다면 즉시 '정결하게' 제거하고, 무너진 말씀 묵상과 기도의 기둥을 다시 '하자크'(견고하게) 세우는 '영적 리모델링'을 결단해야 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습니다. 요시야는 16세에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로 결단했고, 20세에 땅을 정결하게 했으며, 26세에 무너진 성전을 수리했습니다. 그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어린 나이에 신앙을 결단했습니다. 그는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죄를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무너진 예배를 다시 견고하게 세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한 성전이 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의 잔재들을 '정결하게' 하고, 무너진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견고하게' 세우는 이 시대의 요시야가 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는 복된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절망적인 시대에 요시야를 세워 개혁을 이루셨듯이, 죄로 어두운 이 시대에 우리를 영적 요시야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내 안의 우상을 먼저 제거하게 하시고,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여 우리 삶이 주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요시야처럼 어린 나이에 주를 찾게 하소서.
- 내 안의 우상을 정결하게 제거하게 하소서.
- 무너진 예배의 자리를 견고히 세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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