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인 역대하 28장 16절-27절 속의 아하스 왕은 극심한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힘(앗수르)과 이방 신(다메섹의 신들)을 의지하며 더 큰 파멸을 맞았습니다. 그의 실패는 고난의 때에 우리가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마음의 진짜 왕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설교는 아하스의 어리석은 선택을 통해 우리의 숨겨진 우상을 발견하고, 유일한 참된 피난처이시며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8장 16절-27절,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마음
서론: 위기는 마음을 드러낸다
인생의 항해에는 예기치 못한 풍랑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사업이 무너지거나, 관계가 깨지거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순간이 옵니다. 바로 그 위기의 순간, 우리는 평소에 가려져 있던 자신의 가장 깊은 속마음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아니면 그저 성공과 번영의 장식품이었는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유다 왕 아하스는 국가적 위기라는 거대한 풍랑 앞에서 자신의 믿음의 실체를 남김없이 보여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실패한 왕의 기록이 아니라, 위기 앞에서 우리가 누구에게, 그리고 무엇에게 달려가는지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이 거울을 통해 우리 마음의 왕좌에 과연 누가 앉아 있는지를 정직하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본론
첫째, 세상의 힘이라는 첫 피난처
아하스 왕이 다스리던 유다는 에돔과 블레셋의 침공으로 극심한 위기에 처했습니다(17-18절). 국가는 흔들리고 백성은 고통받았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 왕으로서 아하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다윗과 여호사밧과 같은 선한 왕들이 그랬던 것처럼, 언약의 하나님께 무릎 꿇고 부르짖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의 눈은 북쪽의 강대국, 앗수르를 향했습니다(16절). 그는 앗수르의 군사력이야말로 이 위기를 해결해 줄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해결책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모습이 아닙니까?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의 첫 번째 반응은 기도가 아니라 검색창을 여는 것입니다. 재정적 위기가 닥치면 하나님이 아닌 은행과 투자 전문가를 먼저 찾습니다. 인간관계가 어려워지면 성경적 원리가 아닌 심리상담과 처세술에 더 의지합니다. 아하스처럼 우리 역시 눈에 보이는 힘, 인간적인 지혜, 세상적인 시스템을 우리의 '앗수르'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앗수르 왕은 아하스를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공격하였더라"(20절, 우리말성경).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바로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더 큰 궁지로 몰아넣는 경험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합니까? 세상의 힘은 결코 우리의 근본적인 피난처가 될 수 없습니다.
둘째, 절망이 낳는 어리석은 예배
세상의 힘이라는 첫 번째 피난처가 무너지자, 아하스는 더 깊은 영적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는 자신을 친 다메섹의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23절). 이것은 논리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완전히 파산한 생각입니다. 자신을 패배시킨 적군의 신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는 위기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에 나타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떠나 무엇이든 자신을 구원해 줄 대상을 찾아 헤매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앗수르'가 우리를 배신할 때, 우리는 더 이상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더 위험한 선택을 하기 쉽습니다. 성공을 향한 야망이 좌절될 때 우리는 비윤리적인 방법에 손을 대기도 하고,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 때문에 파괴적인 관계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심지어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위장된 번영신앙이나 신비주의 같은 '다메섹의 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예배의 대상을 바꾸는 행위입니다. 아하스가 성전 문을 닫고 예루살렘 곳곳에 다른 제단을 쌓았던 것처럼(24절),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문을 닫을 때 우리의 삶은 온갖 거짓된 우상들을 위한 제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분명히 경고합니다. 그 길의 끝은 파멸뿐이라고 말입니다(23절).
셋째, 참된 왕이 보여주신 다른 길
아하스의 이야기가 절망으로 끝난다면 복음이 아닙니다. 성경은 아하스와 같은 우리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뒤, 전혀 다른 길을 가신 진정한 왕을 제시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하스는 위기 속에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의 왕과 거짓 신들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인류의 가장 큰 위기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하스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신들에게 '제물'을 바쳤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위기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제물'이 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을 때,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고통과 압박 속에서 앗수르나 다메섹의 신이 아닌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을 의지하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아하스는 하나님의 성전 문을 닫아버렸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로운 성전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아하스의 길은 우리 자신과 세상을 의지하는 길이며 그 끝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길은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길이며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결론: 당신은 누구에게 달려갑니까
오늘 우리는 아하스 왕의 비극적인 선택을 통해 위기 속에서 우리가 의지하는 것들의 실체를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풍랑이 일 때, 여러분은 어디로 달려가십니까? 여러분의 '앗수르'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유혹하는 '다메섹의 신들'은 어떤 모습입니까? 아하스의 길 끝에는 "그의 열조의 묘실에 들이지 아니하였더라"(27절)는 불명예와 단절만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른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실패와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신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께로 달려가는 길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시며,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십니다. 이제 세상의 힘을 향한 기대를 내려놓고, 어리석은 우상에게 드렸던 마음의 예배를 거두어,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시길 바랍니다. 그분 안에서만 우리는 어떤 풍랑 속에서도 참된 안전과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함께 할 기도
- 위기의 순간, 세상이 아닌 주님을 첫 번째 피난처로 삼게 하소서.
- 우리 삶에 숨겨진 우상들을 깨닫고, 오직 주님만 예배하게 하소서.
-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끝까지 신뢰하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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