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5장 14절-28절에 나타난 아마샤 왕의 승리 후 타락의 모습을 통해, 성공이 어떻게 우상이 될 수 있는지 묵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의 은혜를 대조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된 왕이시며 진정한 승리이심을 설교문에 담아내었습니다.

역대하 25장 14절-28절, 승리 뒤에 찾아온 영적 재앙
서론: 성공이 우상이 될 때
현대 사회는 성공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직장,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부를 얻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정상에 오른 인물들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추락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들의 성공이 오히려 그들을 파멸로 이끄는 덫이 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오늘 본문의 아마샤 왕 이야기는 이 질문에 대한 매우 중요한 정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마샤 왕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에돔과의 전쟁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놀라운 성공 직후,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파멸의 길로 들어섭니다. 오늘 본문의 기록은 단지 고대 왕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성공이라는 이름의 우상에 붙들리기 쉬운 오늘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본론
첫째, 승리가 낳은 어리석은 우상
아마샤의 첫 번째 실수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습니다. 본문의 14절은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역대하 25:14,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방금 에돔을 격파했습니다. 에돔의 신들은 자신의 백성을 지키지 못한, 무력하고 패배한 신들입니다. 그런데 아마샤는 그 쓸모없는 신들을 가져와 자신의 신으로 삼습니다. 이것은 지성인의 도시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파산한 회사의 경영 전략을 최고의 성공 비결이라며 추종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입니다.
이 비합리적인 행동은 인간 마음의 근본적인 작동 방식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배 공장'과 같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반드시 예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 다른 무언가를 올려놓게 됩니다. 아마샤에게 그것은 '승리'와 '힘'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얻은 승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대신, 승리 그 자체와 자신이 정복한 대상이 가진 힘의 이미지를 숭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본질입니다. 좋은 것, 즉 성공, 가족, 지위, 안정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그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믿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 경고하셨지만, 그는 "내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며 은혜의 손길을 거부합니다. 우상에 마음을 빼앗긴 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이 만들어 낸 견고한 성 안에서 스스로 왕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둘째, 교만이 부른 비극적인 착각
우상숭배는 필연적으로 교만을 낳습니다. 17절부터 아마샤는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에게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라는 오만한 도발을 합니다. 에돔을 이겼다는 작은 성공이 그를 완전히 눈멀게 한 것입니다. 요아스 왕은 어떤 말로 자신의 교만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역대하 25:18,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그러자 북이스라엘의 왕인 요아스가 "네가 에돔을 쳤다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 하는도다 네 궁에나 있으라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라고 꾸짖습니다. 요아스의 충고는 매우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듣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의 정체성과 안정감이 이제 하나님이 아닌 '승리자'라는 자신의 이미지에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다른 승리를 통해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없는 도덕주의, 즉 율법주의의 비극입니다.
스스로의 행위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으로 우리를 내몹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나아', '나는 이 정도는 해냈어'라는 자기 의가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이 교만은 결국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게 만듭니다. 결국 그는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참패하고, 예루살렘 성벽이 훼파되며, 성전과 왕궁의 보물까지 빼앗기는 끔찍한 수치를 당합니다. 그의 교만은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본론 3: 홀로 맞이한 비참한 마지막
본문은 아마샤의 마지막을 매우 쓸쓸하게 묘사합니다. 27절입니다.
역대하 25:27, 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으므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아마샤는 자신의 백성에게 버림받고 라기스로 도망쳤지만, 결국 거기까지 추격당해 죽임을 당합니다. 그의 시신은 말에 실려 돌아와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었지만, 그의 죽음은 반역과 도망, 그리고 암살로 얼룩진 비참한 최후였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와 교만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우리의 정체성과 기쁨을 찾으려 할 때, 그것들은 결국 우리를 배신하고 우리를 홀로 남겨둡니다. 세상의 성공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인정도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돈과 권력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아마샤는 자신의 힘을 숭배했지만, 그 힘은 백성의 반역 앞에 무너졌습니다. 아마샤는 승리의 영광을 추구했지만, 고독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 역시 제자들에게 버림받고 홀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우상숭배와 교만의 죗값을 치르시기 위해,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로 회복시키시기 위해 기꺼이 그 고독한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아마샤는 자기를 위해 살다가 홀로 죽었지만,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공동체를 선물하셨습니다.

결론: 당신의 승리는 어디에 있는가
교만한 아마샤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인생을 떠받치는 가장 큰 승리는 무엇입니까? 당신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것이 당신의 직업적 성공입니까? 자녀의 성취입니까? 아니면 도덕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자기만족입니까? 아마샤의 삶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성공은 결국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우상이 될 뿐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더 나은 아마샤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은 우리 모두가 아마샤와 같은 죄인임을 폭로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숭배하며, 교만과 자기 의에 빠져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아마샤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신 완전한 왕,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가지셨지만 교만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분은 가장 큰 패배를 당하신 것처럼 보였지만, 그 패배를 통해 우리의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가장 위대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진정한 승리는 더 이상 나의 성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승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일에 있습니다. 이 진리 안에서만 우리는 성공에 교만하지 않고, 실패에 절망하지 않으며, 참된 자유와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무력한 에돔의 신들을 내려놓고,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신 우리의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함께 할 기도
- 삶의 성공이 주님을 가리는 우상이 되지 않게 하소서.
-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히 주의 경고를 듣는 마음을 주소서.
- 세상의 승리가 아닌, 오직 예수님 안에서 참된 만족을 찾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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