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역대하 18장 28절-19장 11절을 본문으로, 신실하였던 유다 왕 여호사밧이 악한 아합 왕과 동맹을 맺음으로 겪게 된 위기와 하나님의 책망을 깊이 있게 묵상하고 정리한 새벽예배설교문입니다. 악한 자를 돕고 세상과 타협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죄임을 밝히며, 오직 주만 바라보며 부르짖어야만 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역대하 18장 28절-19장 11절, 오직 주만 바라볼지니라
서론
유다 왕 여호사밧은 다윗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던 왕입니다. 그는 나라 안의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쳤으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큰 군사적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조공을 바칠 정도로 그의 나라는 강성했고, 주변 나라들이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하나님을 찾고 그의 계명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신실했던 여호사밧에게도 큰 실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악한 아합 가문과 혼인 동맹을 맺고, 그와 함께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여한 것입니다. 이 잘못된 선택은 그를 죽음의 문턱까지 이끌었고, 하나님의 준엄한 책망을 듣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사밧의 실수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유다 왕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과 동맹을 맺고 아람과의 전쟁에 나섰다가 겪는 위기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출전하지만, 참 선지자 미가야는 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아합 왕이 죽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실제로 전쟁터에서 아합은 변장하고 여호사밧에게만 왕복을 입혀 적들의 표적이 되게 만듭니다. 여호사밧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선견자 예후를 통한 하나님의 책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악한 왕 아합을 돕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선한 행실, 즉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찾았던 것을 기억하시고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이후 여호사밧은 다시 한번 신앙 개혁을 단행하며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재판관들을 세워 공의를 실현하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것을 선포합니다.
첫째, 악인을 돕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다.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역대하 19:2)
여기서 ‘돕다’(עָזַר, 아자르)는 단순히 동정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사랑하다’(אָהַב, 아하브)는 감정적인 사랑을 넘어 언약적 관계, 즉 깊은 신뢰와 동맹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신학적으로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의 악한 세력과 타협하고 연합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보여줍니다. 이 같은 모습은 마치 빛이 어둠과 섞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구약에서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악한 문화에 동화되어 살다가 모든 것을 잃고 겨우 목숨만 건졌습니다. 그의 사위들은 심판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고,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부 기독교인들이 사회적 성공과 안정을 위해 불의한 세력과 손을 잡고 그들의 불법적인 일에 동조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는 잠시의 이익을 얻을지는 모르나,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며, 악을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오직 주만 바라볼지니라
여호사밧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만을 바라보겠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역대하 20장 12절에서, 위기에 처한 여호사밧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역대하 20:12)
비록 오늘 본문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여호사밧의 신앙 개혁과 재판관 임명은 이 고백적 신앙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는 재판관들에게 “너희는 사람을 위하여 재판하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를 위하여 하는 것이니” (역대하 19:6)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라보다’(עַיִן, 아인)는 단순히 시선을 고정하는 것을 넘어, 전적으로 의지하고 기대를 건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신학적으로 이는 인간의 한계와 무능함을 인정하고, 모든 문제의 해결과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고백하는 신앙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의 산헤립이 18만 5천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인간적인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적장의 편지를 펼쳐놓고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날 밤 천사를 보내 앗수르 군대를 전멸시키셨습니다. 최근 경제 위기로 인해 많은 가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한 신문 기사에서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세상의 방법이나 물질이 아닙니다. 우리의 눈을 들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분께서 우리의 피할 길이 되어주시고 구원의 역사를 베푸실 것입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유일한 재판장이시며 구원자
여호사밧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기 위해 재판관들을 세우고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라고 명했습니다. 하지만 인간 재판장은 불완전하며 때로는 실수하고 불의를 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하고 완전한 재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한복음 5:22)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이루셨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심판받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악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모든 심판을 받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세상의 방법에 의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때, “오늘 나의 모든 시선이 주님께만 고정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을 실천합시다. 이 작은 실천이 모여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고, 세상의 유혹과 위협 속에서 우리를 굳건히 지켜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참된 안전과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에 실현하는 통로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악한 아합과 동맹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죽음의 위기를 맞았고 하나님의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섰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그분만을 의지하며 나라를 개혁했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여호사밧과 같이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힘과 연합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기억합시다. 악인을 돕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도움과 희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우리의 완전한 재판장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악한 길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두려워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어떤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만 고정하게 하시고,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악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 우리 교회가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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