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4장 2절-15절은 아사 왕의 삶을 통하여 신앙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인생의 평안한 시기에 성도들은 어떻게 보내야 하며,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닥쳤을 때는 무엇을 의지해야만 할까요? 오늘 본문은 그 해답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역대하 14장 2절-15절, 위기 앞에서 주님만 바라보라
서론: 진짜 평안을 찾아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 평안하셨습니까? 우리가 매일 주고받는 이 인사 속에는 평안에 대한 깊은 갈망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끊임없는 압박감 속에서 살아갑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예측 불가능한 경제 상황, 복잡한 인간관계, 그리고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에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까지,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최근 5년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이 약 30%나 증가했고,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수도 급증했다는 통계는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는 '평안'을 원합니다. 문제가 없는 삶, 걱정이 없는 상태를 진정한 평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평안은 단순히 문제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역대하 14장의 아사 왕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된 평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아사 왕은 즉위 후 10년 동안 나라가 평안한 복을 누렸습니다. 6절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이 평안은 상황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의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평안이 감당할 수 없는 위기로 인해 산산조각 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0년의 평화는 구스 사람 세라가 이끄는 백만 대군의 침공으로 순식간에 끝이 납니다. 아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평안을 재정의하도록 도전합니다. 평안이란 위기가 없는 삶이 아니라, 어떤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상태임을 말입니다. 오늘 아사 왕의 삶을 통해,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함께 배우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평안의 때에 준비하는 믿음 (2-8절)
성도 여러분,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10년간의 평안을 허락하신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아마 많은 이들이 그저 그 평안을 즐기며 안주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 왕은 달랐습니다. 그는 평안의 때를 영적인 기초를 다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황금 같은 기회로 삼았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은 아사가 어떻게 행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까?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역대하 14:2)
여기서 '선'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토브'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고 기쁨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정의'로 번역된 '야샤르'는 '곧다', '바르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기준에 삶을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사는 자신의 감정이나 정치적 유불리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바른 기준에 따라 나라를 개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개혁은 단호했습니다. 그는 전역에 퍼져 있던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렸습니다. 심지어 우상 숭배의 중심에 있던 할머니 마아가를 태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는 가족과 정치적 안위보다 하나님을 더 우선시하겠다는 강력한 믿음의 선포였습니다. 이처럼 평안의 시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것들을 제거하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 재정비하는 시간입니다.
아사의 준비는 영적인 것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7절). 그는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기반으로 국방을 튼튼히 했습니다. 평안할 때 다가올 위기를 대비한 것입니다.
이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에도 평안의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영적으로 나태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사는 우리에게 평안의 때야말로 영적 대청소를 할 시간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시대의 우상은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돈을 향한 탐심, 성공에 대한 집착, 혹은 우리 손 안의 스마트폰일 수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1명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에 속하며, 이로 인해 불안감과 우울증을 겪는다고 합니다. 아사처럼, 평안할 때 우리 삶의 우상들을 과감히 제거하고, 말씀과 기도로 견고한 믿음의 성벽을 쌓아 올리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가 본능적으로 의지할 대상은 평안할 때 우리가 무엇을 섬겼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본론 2: 위기 앞에서 부르짖는 믿음 (9-11절)
그렇게 10년의 평안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인생의 시련이 비껴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기가 유다를 덮칩니다. 구스 사람 세라가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이끌고 쳐들어온 것입니다. 아사의 군대가 58만 명이었으니 ,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적군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도 이런 '백만 대군'을 마주한 경험이 있으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병의 진단, 실직의 통보, 자녀의 방황, 혹은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과 우울감 같은 것들 말입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배가 난파되어 홀로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구조를 위해 기도하며, 비바람을 피할 작은 오두막을 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먹을 것을 구하고 돌아와 보니 그 오두막이 활활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절망하며 소리쳤습니다. "하나님, 어찌 제게 이런 시련까지 주십니까!"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아침, 기적처럼 배 한 척이 그를 구조하러 왔습니다. 선장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피운 연기 신호를 보고 왔습니다." 남자가 끝이라고 생각했던 최악의 절망이, 사실은 구원의 신호탄이었던 것입니다.
아사 왕에게 백만 대군은 바로 그 불타는 오두막과 같았습니다. 인간적인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그 순간, 그는 비로소 하늘을 향해 온전히 부르짖을 수 있었습니다. 11절의 그의 기도는 위기를 만난 모든 성도들이 붙들어야 할 기도의 교과서입니다.
- 첫째, 그는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선포합니다.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하나님 앞에서는 백만 대군과 58만 명의 차이가 무의미함을 고백한 것입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기도의 시작입니다.
- 둘째, 그는 온전한 의지를 고백합니다.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여기서 '의지하다'는 히브리어 '솨안'은 단순히 믿는다는 뜻을 넘어, 자신의 온 체중을 기대어 기댄다는 물리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내 힘으로는 설 수 없으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전적인 신뢰의 표현입니다.
- 셋째, 그는 주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자신의 군대가 아닌, 하나님의 군대로서 싸우겠다는 믿음의 선언입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전쟁의 주체를 바꿉니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정말 놀랍습니다. 아사는 이 전쟁을 '구스 대 유다'의 싸움이 아니라, '피조물인 인간 대 창조주 하나님'의 싸움으로 재정의합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 기도는 점잖은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본문은 아사가 "부르짖었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קָרָא'(카라)는 고통과 위기 속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에 가까운 절규를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백만 대군 앞에서 아사처럼 부르짖으십시오. 나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강하심을 인정하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기도를 드릴 때, 전쟁의 판도는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
본론 3: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는 믿음 (12-15절)
아사의 절박한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12절은 그 결과를 간단명료하게 증언합니다.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승리의 주체는 유다 군대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여기서 '치셨다'는 히브리어 동사 'נָגַף'(나가프)는 단순히 '패배시켰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타격하시거나 재앙을 내리실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전략이나 용맹으로 얻은 승리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임한 초자연적인 승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자, 백만 대군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승리는 완전했습니다. 13절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아사와 그와 함께 한 백성이 구스 사람들을 추격하여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들이 엎드러지고 살아남은 자가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의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노략한 물건이 매우 많았더라 (역대하 14:13)
여기서 '그의 군대'란 바로 유다 군대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을 때, 유다 군대는 더 이상 아사의 군대가 아닌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체성을 그렇게 바꾸어 주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구원은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노략한 물건이 매우 많았더라" (13절), 그리고 수많은 양과 낙타를 전리품으로 얻었습니다 (15절).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는 언제나 차고 넘치는 풍성함으로 이어집니다.
성도 여러분, 아사의 이 위대한 승리는 단지 과거의 역사 기록이 아닙니다. 이것은 장차 오실 더 위대한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구원을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사의 군대보다 더 강력한 원수, 바로 죄와 사망이라는 백만 대군 앞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 모든 원수를 대신하여 싸우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향해 결정적인 '나가프', 곧 하나님의 타격을 가하셨습니다.
그 승리는 온전히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아사처럼 우리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주님께 부르짖는 것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십자가 승리의 전리품인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 그리고 하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하나님의 군대가 될 줄 믿습니다. 아사의 이야기는 바로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결론: 당신의 백만 대군은 누구입니까?
오늘 우리는 아사 왕의 삶을 통해 믿음의 세 단계를 보았습니다. 첫째, 평안의 때에 안주하지 말고 영적으로 준비하는 믿음. 둘째,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닥쳤을 때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믿음. 셋째, 전쟁이 주님께 속했음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완전한 승리를 경험하는 믿음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을 위협하는 백만 대군은 무엇입니까? 질병입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입니까? 깨어진 관계입니까? 아니면 미래에 대한 깊은 두려움입니까? 혹시 그 문제 앞에서 자신의 군사 수만 세며 절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사의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내 군대의 규모를 보던 시선을 들어, 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사의 기도를 드리라고 도전하십니다. "주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연약한 인생이 주님을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이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 여러분의 모든 삶의 전쟁터에서 인간적인 계산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놀라운 승리를 체험하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평안할 때 교만하지 않고 믿음의 기초를 쌓게 하시고, 감당 못할 위기가 찾아올 때 인간적인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께만 부르짖는 믿음을 주옵소서. 모든 전쟁이 주님께 속했음을 고백하오니, 우리의 삶에서 친히 싸워주시고 날마다 주님의 위대한 승리를 경험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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