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열세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하 13장과 14장 1절은 자신의 힘이 아닌, 영원한 ‘소금 언약’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부르짖을 때, 절망적인 상황이 어떻게 하나님의 놀라운 승리로 바뀌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설교문은 참된 왕을 의지하는 것이 유일한 승리의 길임을 증거 합니다.

역대하 13장 1절-14장 1절, 절망의 외침이 승리의 찬가가 될 때
서론: 압도적인 적 앞에 선 우리
여러분은 혹시 인생의 거대한 벽 앞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싸움 앞에서 압도당한 경험이 있으십니까? 40만 대 80만의 싸움. 숫자로 보나 전략으로 보나 패배가 명백한 전투. 오늘 우리가 마주한 역대하 13장의 유다 군대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80만의 막강한 군대를 이끌고 남유다의 아비야 왕을 치러 왔습니다. 유다의 군사는 그의 절반인 40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열세의 상황이 전쟁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일상 속에도 너무나도 자주 나타납니다. 때로는 재정적인 문제, 깨어진 관계, 끝이 보이지 않는 질병, 깊은 영적 침체가 80만의 군대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압박해 옵니다. 이 절망적인 포위 속에서 우리는 어디에 소망을 두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의 전쟁과 관련된 성경 기록은 단순히 고대의 전쟁 기록이 아니라, 오늘 압도적인 문제 앞에 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생한 메시지입니다.
본론 1: 흔들리지 않는 언약의 선포
전쟁이 시작되기 전, 오늘 본문의 아비야 왕은 스마라임 산에 서서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그는 군사력이나 전략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하나님의 ‘소금 언약’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대하 13:5). 소금 언약이란 무엇입니까? 고대 근동에서 소금은 변치 않음, 영원함, 정결함을 상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가문을 통해 영원한 왕국을 세우시겠다는 약속은 결코 변하거나 썩지 않을 것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아비야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군사의 숫자에 있지 않다. 우리의 정당성은 썩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 그분의 신실하심에 있다.”
이것은 놀랍도록 복음적인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비야 자신은 흠이 많은 왕이었지만, 그는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었습니다. 이 소금 언약의 실체는 누구이십니까? 바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영원한 왕,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히브리서는 그분을 “영원한 언약의 피”를 흘리신 분이라고 증언합니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80만 대군 앞에서 담대히 설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의 자격이나 노력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는 그리스도의 언약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디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썩어 없어질 세상의 힘입니까, 아니면 영원한 소금 언약이신 그리스도입니까?
본론 2: 인간의 실패와 절망의 현실
아비야의 신앙고백은 위대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선포하는 동안, 여로보암은 복병을 보내 유다의 진영을 앞뒤로 포위했습니다. 이제 유다는 완벽한 독 안에 든 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기로 결단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신앙고백만으로는 현실의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율법과 은혜’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아비야는 율법적으로 누가 옳은지를 따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고, 너희는 배반했다.” 그러나 그들의 의로움조차도 여로보암의 교활한 매복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종교적인 의무를 다해도, 죄와 절망의 ‘복병’은 어김없이 우리를 포위합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의로움, 우리의 신앙고백, 우리의 힘으로는 이 포위망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절망의 자리가 바로 은혜가 시작되는 출발점입니다.
본론 3: 절망 속에서 드리는 부르짖음
앞뒤가 꽉 막힌 절체절명의 순간, 유다 백성은 무엇을 했습니까? 성경은 “이에 유다 사람이 소리 지르매… 유다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매”(대하 13:14)라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략이나 힘을 의지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우리는 끝났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라는 전적인 의존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그들이 한 것은 그저 부르짖는 것뿐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치시니”(대하 13:15). 승리는 유다의 전략이나 용맹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의 군대에게 포위되어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전혀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의 파산을 인정하고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절망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십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이미 사탄과 죽음의 권세를 치셨습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은 우리가 승리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완성된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는 믿음의 통로입니다.

결론: 참된 왕을 의지하는 평화
전쟁은 유다의 대승으로 끝났고, 아비야의 아들 아사 왕의 시대에 이르러 땅에는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습니다(대하 14:1). 이 평화는 그들이 쟁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선물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하나님을 아직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을 둘러싼 80만 대군은 무엇입니까? 여전히 자신의 힘과 지혜로 그 포위망을 뚫어보려 애쓰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소금 언약으로 우리를 붙드시는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 앞에 우리의 절망과 무능함을 그대로 가지고 나아가 부르짖으십시오. 그때에 우리의 가장 큰 절망의 외침은,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승리의 찬가가 될 것입니다. 참된 평화는 내 힘으로 싸워 얻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싸우신 왕의 품에 안길 때 주어집니다. 그 왕께 여러분의 삶을 온전히 의탁하십시오.
기도 제목
-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을 의지하게 하소서.
- 절망의 순간에 부르짖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소서.
- 그리스도가 주시는 참된 승리와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추천 찬송가
-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나아가겠다는 신앙고백의 찬송입니다.
- 585장 (내주는 강한 성이요): 어떠한 환난과 원수 앞에서도 우리의 견고한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288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삼고 그분 안에서 영원한 기업과 평화를 누림을 고백하는 찬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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