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르호보암은,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맙니다. 역대하 10장 1절-19절에는 그가 어떤 선택을 하였으며, 그 과정은 무엇이었는지를 상세하게 기술하면서, 오늘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고 지혜로운 선택에 대해 설교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역대하 10장 1절-19절, 잘못된 선택을 한 르호보암 왕
서론: 인생의 갈림길에서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최근 한 경영 컨설팅 회사에서 실패한 리더들의 공통점을 분석한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요인 중에서도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경청의 실패’였습니다. 특히 오랜 경험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입맛에 맞는 달콤한 말에만 귀를 기울였던 리더들은 예외 없이 큰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성공의 정점에서 내린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디 비즈니스 세계뿐이겠습니까?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선택의 갈림길에 섭니다. 그 선택의 순간, 우리는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내 경험, 세상의 지식, 아니면 달콤하게 속삭이는 욕심의 소리입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역대하 10장의 르호보암 왕 이야기는 바로 이 ‘경청의 실패’가 한 개인과 공동체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르호보암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솔로몬의 아들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막강한 권력과 부귀영화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지혜까지 물려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갈림길에서 치명적인 선택을 했고, 그 결과 통일 왕국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찢어지는 비극을 맞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선택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누구의 음성을 듣고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참된 왕은 누구이신지를 함께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2. 본문 해석: 교만과 분열의 씨앗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기 위해 세겜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에게는 한 가지 간절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10장 4절입니다.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역대하 10:4)
솔로몬 시대는 화려했지만, 그 이면에는 성전 건축과 수많은 토목 공사로 인한 백성들의 강제 노역과 무거운 세금이라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새로운 왕이 이 무거운 짐을 덜어주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노동의 문제를 넘어, 새로운 왕이 백성을 사랑과 긍휼로 다스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요청을 들은 르호보암은 사흘의 말미를 달라고 한 뒤 두 그룹의 자문단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첫 번째 그룹은 그의 아버지 솔로몬을 섬겼던 ‘원로들’입니다. 그들은 지혜와 경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조언은 명쾌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이 백성을 후대하여 기쁘게 하고 선한 말을 하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역대하 10:7)
한마디로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하라는 것입니다. 왕이 먼저 백성을 섬기고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들은 기쁨으로 왕을 따를 것이라는 지혜로운 조언이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이 조언을 버립니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젊은 신하들’에게 의견을 묻습니다. 그들은 경험보다는 혈기와 교만이 앞서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조언은 원로들의 것과 정반대였습니다. 10절과 11절입니다.
함께 자라난 젊은 신하들이 왕께 말하여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시기를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가죽 채찍으로 너희를 치셨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하리라 하소서 하더라 (역대하 10:10-11)
이것은 철저히 힘과 권위로 백성을 억누르라는 ‘군림의 리더십’입니다. 백성들의 고통에 공감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힘으로 찍어 눌러 복종시키라는 교만하고 잔인한 조언이었습니다. 결국 르호보암은 누구의 목소리를 선택했습니까? 그는 원로들의 지혜를 버리고 젊은 신하들의 어리석은 조언을 따랐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라고 선포합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에게 등을 돌렸고, “우리가 다윗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외치며 북쪽의 열 지파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 독립해 나갑니다. 결국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선택 하나가 다윗과 솔로몬을 거쳐온 통일 왕국을 분열시키는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
3. 그리스도 중심적 연결: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
성도 여러분, 우리는 르호보암의 이야기를 단지 한 실패한 왕의 역사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르호보암의 실패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왜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첫째, 르호보암은 백성의 멍에를 더 무겁게 한 왕이지만, 우리의 왕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멍에를 벗겨주시는 분이십니다.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더 큰 고역과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참된 왕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 11장 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르호보암은 죄와 율법 아래 신음하는 인간의 실존을 보여주는 왕입니다. 세상의 왕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웁니다. 성공해야 한다, 더 많이 가져야 한다, 더 높아져야 한다는 멍에를 지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멍에, 율법의 멍에,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참된 쉼과 자유를 주십니다.
둘째, 르호보암은 분열을 초래한 왕이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왕이십니다. 르호보암의 교만한 말 한마디는 이스라엘을 둘로 갈라놓았습니다. 이것은 죄가 가져오는 분열의 속성을 보여줍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죄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은 말씀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서로가 한 형제자매로 연합하여 거룩한 공동체, 곧 교회를 이루게 됩니다.
셋째, 르호보암은 ‘채찍’과 ‘전갈’로 통치하려 했지만, 예수님은 ‘사랑’과 ‘섬김’으로 다스리십니다. 르호보암의 통치 방식은 폭력과 공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왕의 통치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오셨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채찍을 휘두르는 대신 친히 채찍에 맞으셨고, 전갈로 쏘는 대신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그분의 통치는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자기희생적 사랑에 기반합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나의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의 통치 아래 들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4. 적용: 예수님의 마음으로 선택하는 삶
이제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르호보암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는 자가 아니라,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지혜롭게 선택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개인적인 적용입니다. 나의 삶에 조언하는 ‘원로’와 ‘젊은 신하’는 각각 누구입니까? 우리 안에는 늘 두 가지 목소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음성, 그리고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 들려오는 ‘원로들의 지혜’입니다. 이 음성은 우리에게 겸손과 섬김, 자기 부인을 요구합니다. 때로는 듣기에 거북하고 따르기 힘든 길처럼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육신의 정욕과 세상의 가치관, 그리고 교만을 부추기는 ‘젊은 신하들의 속삭임’입니다. 이 음성은 더 높아지라, 더 강해지라, 너 자신을 위해 살라고 유혹합니다. 듣기에는 달콤하고 따르기 쉬워 보입니다.
오늘 새벽,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누구의 목소리를 더 신뢰하고 있습니까?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 세상적인 성공 기준과 내 욕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배우자나 자녀, 성도들을 대할 때, 섬기고 낮아지는 예수님의 마음보다 군림하고 내 뜻을 관철하려는 르호보암의 마음이 앞서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다. 매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그분의 지혜를 구하고, 섬김과 사랑의 길을 선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 공동체적인 적용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떤 리더십으로 세워져 가야 할까요? 르호보암의 실패는 교회 공동체에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교회는 세상의 방식처럼 힘과 효율성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의 리더십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목회자와 중직자들은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성도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그들의 멍에를 함께 져야 합니다.
어느 작은 교회가 지역 사회에서 ‘소금’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교회는 화려한 프로그램 대신, 독거노인들에게 반찬을 나누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멘토가 되어주며, 동네 청소를 하는 등 묵묵히 섬김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진심 어린 섬김에 감동한 사람들이 하나둘 교회로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르호보암의 ‘전갈 채찍’이 아니라, 예수님의 ‘수건’을 들고 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곳입니다. 우리 교회가 성도들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세상의 상처 입은 영혼들이 참된 쉼을 얻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굳건히 세워져 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5. 결론: 지혜의 왕이신 주님만 따르리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르호보암은 귀가 있었지만 듣지 못했고, 지혜를 구할 기회가 있었지만 어리석음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는 분열과 아픔뿐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소리, 내 안의 교만한 소리가 아니라 오직 우리의 참되신 왕,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무거운 죄의 짐을 벗겨주시고 참된 쉼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분만이 분열된 우리를 하나로 모아 거룩한 나라를 세우시는 분입니다. 그분만이 사랑과 섬김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유일한 왕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 다시 한번 우리의 왕이 누구이신지 고백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지혜의 왕이신 주님의 음성에만 귀 기울이기로 결단합시다. 그리하여 르호보암이 아닌 예수님을 닮아, 섬김과 사랑으로 가정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6. 함께 드릴 기도
- 지혜의 영을 부어주사 주 음성 듣게 하소서.
- 르호보암의 교만 아닌 예수님의 겸손 닮게.
- 섬김으로 하나 되는 건강한 교회 세우도록.
7. 추천 찬송
- 새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 새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 새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