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8편이 약속하는 완벽한 샬롬과 시편 129편이 그려내는 혹독한 고난의 현실. 신앙인의 삶에 공존하는 이 두 그림의 모순 앞에서 우리 모두는 혼란스러움을 느낍니다. 고통의 쟁기질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본문을 큐티하고 정리한 새벽예배 설교문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시고 절망의 줄을 끊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고난을 이기는 복음의 능력을 증거 합니다.

시편 128편 1절-129편 8절, 두 개의 시편, 하나의 이야기
서론
여기 두 폭의 그림이 있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이상향과 같습니다. 시편 128편이 그린 그림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받는 복. 자신의 손으로 수고한 열매를 먹고, 아내는 집 안에서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자녀들은 식탁에 둘러앉은 어린 감람나무 같습니다. 예루살렘의 번영을 평생 보며 자손의 자손을 보는 복, 그리고 마침내 이스라엘에 평강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 이것은 우리가 신앙 안에서 꿈꾸는 완벽한 평형 상태, 바로 샬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 그림을 거실 가장 좋은 곳에 걸어두고 싶어 합니다.
본론
1. 평형을 뒤집기
그런데 고개를 돌려 바로 옆의 두 번째 그림을 보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무너져 내립니다. 바로 시편 129편의 그림입니다. 한 사람이, 아니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전체가 고통스럽게 절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가 젊었을 때부터 나를 심히 괴롭혔도다!"라고 외칩니다. 그의 등에는 밭 가는 자들이 깊고 긴 고랑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쟁기가 맨살을 파고드는 끔찍한 고통의 이미지입니다. 시편 128편의 평화로운 식탁은 온데간데없고, 잔혹한 고문과 억압의 현장만이 남아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128편의 축복을 믿음으로 붙잡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등 위에서는 129편의 쟁기질이 멈추지 않을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예기치 못한 질병, 끊이지 않는 재정적 어려움, 깨어진 관계의 아픔,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영적 침체라는 쟁기가 우리의 등을 갈아엎고 깊은 고랑을 남깁니다. 우리는 당황합니다. "하나님, 제가 꿈꾸던 신앙의 삶은 이게 아니었는데요?" 이 균열과 부조화 앞에서 우리의 평온했던 신앙은 속절없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2. 모순 분석하기
갈등은 더욱 깊어집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의 삶에 이토록 혹독한 쟁기질이 계속되는가? 축복의 약속과 고통의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길을 잃습니다. 이 고통의 고랑은 너무 깊어서, 마치 하나님의 약속이 닿지 않는 곳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부르짖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 같고, 등 위를 짓누르는 쟁기의 무게는 더 무거워지는 것만 같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의로우신가? 나를 보고 계시기는 한가?"라는 의심이 싹틉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 129편의 기자가 느꼈을 절망의 순간입니다. 희망은 보이지 않고, 고통의 이유를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영적 막다른 골목과 같습니다.
3. 해결의 실마리 드러내기
바로 그 절망의 한가운데서, 시편 기자는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시편 129편 4절,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여기서 우리는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쟁기질 자체를 막아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분은 '의로우셔서' 그 쟁기를 끄는 '악인의 줄'을 끊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희망은 고난의 부재(不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운 임재(臨在)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쟁기질당하는 우리 등 위에서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 바로 그 고통의 현장에서 우리를 묶고 있는 줄을 끊기 위해 일하고 계신 분입니다.
4. 복음 경험하기
이 실마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깊은 고랑이 파였던 한 사람의 등,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등에서 가장 선명하게 빛을 발합니다. 로마 군인의 채찍은 그분의 등에 깊고 긴 고랑을 만들었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와 고통이라는 쟁기가 그분의 등을 갈아엎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완벽한 시편 129편의 삶을 사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바로 우리에게 영원한 시편 128편의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고통의 쟁기질을 당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 묶어두었던 가장 질긴 '악인의 줄'을 단번에 끊어버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고통 속으로 들어오셔서, 그 고통의 근원인 죄의 줄을 끊으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기쁨의 노래를 외칠 수 있습니다. 나의 고난이 무의미한 형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는 과정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
그렇다면 이 두 개의 시편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복음은 우리에게 시편 128편의 삶만을 약속하는 값싼 위로가 아닙니다. 또한 우리를 시편 129편의 절망 속에 내버려 두지도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시편 128편의 궁극적인 축복(하나님과의 화평)을 받았지만, 여전히 이 땅에서 시편 129편의 현실(고통과 쟁기질)을 살아간다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 모순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고통을 피하거나, 아니면 고통에 압도당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제3의 길을 제시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시편 129편의 가장 깊은 고통을 겪으시고 시편 128편의 가장 완전한 영광으로 들어가신 분입니다. 그분의 부활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역사적 보증수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다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우리의 고통 앞에서 솔직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9편처럼 울부짖고 탄식해도 괜찮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강한 척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가장 깊은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둘째,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 등 위에서 쟁기질이 계속될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묶은 줄을 끊고 계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서의 완벽한 삶이 아니라, 주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모든 고랑을 치유하실 그날, 우리의 삶이 영원한 시편 128편의 그림으로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습니다. 우리의 고통은 잠시 잠깐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끊으신 그 의로운 줄의 효력은 영원합니다. 이것이 복음이 주는 흔들리지 않는 소망입니다.
기도제목
- 고난의 쟁기질 속에서 일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보게 하소서.
- 나를 묶은 절망의 줄을 끊어주실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 십자가로 참된 샬롬을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하소서.
추천 찬송가
- 새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 새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