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9장 새벽예배 설교: '오직 하나님께, 우리의 할렐루야'. 삶이 힘겨울 때, 우리의 찬양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바울, 다니엘처럼 고난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경배했던 믿음의 비밀을 나눕니다. 당신의 일상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예배가 되는 은혜로운 말씀. 지금 바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8장 20절-19장 10절,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
참고할 글
서론: 경배의 대상을 바로 알았던 사도 요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거룩한 새벽, 세상의 소음은 잠들고 오직 주님의 음성만이 살아있는 이 귀한 자리에 나아오신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요한은 아마 필생의 가장 경이로운 순간을 맞이했을 겁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고, 천상의 예배가 그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 영광과 위엄에 압도된 요한은 자신에게 이 놀라운 광경을 보여준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였어도 그랬을 겁니다. 너무나 인간적이고,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반응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천사는 단호하면서도 사랑이 담긴 음성으로 그를 만류합니다.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본론
이 음성은 2천 년 전 요한에게만 들린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새벽을 깨우는 우리 모두의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우리의 찬양과 영광,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 터져 나오는 ‘할렐루야’는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드려져야 함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찬양,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의로우심
우리는 언제 ‘할렐루야’를 외칩니까? 문제가 해결되고, 기도가 응답받았을 때 물론 감사와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하늘의 찬양은 그 차원을 넘어섭니다. C.S. 루이스는 “우리가 즐기는 것을 찬양할 때 그 즐거움은 비로소 완성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늘의 허다한 무리가 외친 ‘할렐루야’는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나 ‘참되고 의로우셔서’(계 19:2), 그 완벽한 공의로우심에 대한 벅찬 감격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이 위대한 찬양은 억울하게 매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던 바울과 실라의 찬양과도 같습니다. 그들은 차꼬에 발이 묶인 절망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들이 찬양했기에 옥문이 열린 것이 아니라, 옥문이 열리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의로우시고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믿었기에 찬양한 것입니다. 우리의 찬양도 그러해야 합니다.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을 넘어, 이 온 우주와 역사를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볼 때, 우리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진정한 할렐루야가 터져 나오게 될 줄 믿습니다.
2. 흔들리는 마음의 방향, 오직 하나님께로
우리의 마음은 참 연약해서, 자꾸만 눈에 보이는 것에 기대고 싶어 합니다. 대단해 보이는 사람, 안정감을 주는 재물, 세상의 지혜에 마음을 빼앗기곤 합니다. 사도 요한마저 천사의 위엄 앞에 엎드리려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단호히 외칩니다.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계 19:10).
이 외침은 우리를 다니엘의 세 친구가 섰던 풀무불 사건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권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금 신상을 만들어 모두에게 절하라 명했습니다. 절하지 않으면 죽음뿐인 상황, 그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왕에게 말합니다. “왕이여,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상에게 절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의 핵심입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내 생명과 상관없이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라는 위대한 신앙 고백입니다. 오늘 이 새벽, 세상으로 향하던 우리 마음의 방향을 온전히 돌이켜, 우리 삶의 크고 작은 금 신상들 앞에서 오직 한 분 하나님께로만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3. 삶으로 드리는 예배, 가장 아름다운 세마포
결혼을 앞둔 신부가 세상에서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은 순백의 드레스일 겁니다. 오늘 본문은 어린 양의 신부 된 교회가 입을 그 영광스러운 예복은 바로 ‘성도들의 옳은 행실’로 만들어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계 19:8)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주일 이 자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 왕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궤가 돌아오는 것이 너무나 기뻐서 왕의 체면도 잊은 채 아이처럼 힘을 다해 춤을 추었습니다. 아내 미갈이 비웃었지만 그는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다윗의 춤,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예배요, 그의 삶으로 짜 내린 아름다운 세마포 한 조각이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일상의 몸짓 하나하나, 직장에서의 정직함, 가정에서의 따뜻한 말 한마디, 이웃을 향한 작은 섬김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때,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가장 아름다운 찬양의 예복이 됩니다.

결론: 우리의 삶이 곧 우리의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찬양, 우리의 경배, 우리의 삶 전체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향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이제 예배당의 문을 나서는 우리의 발걸음이 그저 어제와 같은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순간이 주님께 드릴 '옳은 행실'의 세마포를 짜는 거룩한 시간이 되게 합시다. 세상의 소음과 불안이 아닌, 어둠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감격하여 터져 나오는 진정한 할렐루야가 우리의 가정과 직장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존재 자체가,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의 찬송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것들에 흔들렸던 저희 마음을 주님께로 온전히 돌립니다. 상황과 환경을 넘어 주님의 의로우심을 찬양하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순간이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오직 주님께만 드리는 진정한 할렐루야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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