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에스더 5:1-14에 대한 큐티와 설교 말씀. 하만의 교만과 그 허무함을 통하여 오늘 우리의 삶을 살펴보며 정리한 새벽예배 설교입니다. 세상 권세와 부가 아닌, 하나님 안에서 참된 만족과 겸손을 찾는 길을 제시하며, 내면의 교만을 깨닫고 주님께 나아가는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에스더 5장 1절-14절, 내 안에 숨은 하만, 교만과 그 공허함
서론
오늘 이 새벽에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의 주제는 “인간의 교만과 그 허무함”입니다. 이 주제는 어쩌면 우리 삶 깊숙한 곳에서 매일 경험하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종종 SNS 속에서 타인의 ‘좋아요’ 하나에 마음이 들뜨고, 무심한 댓글 하나에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는 경험을 합니다. 직장에서의 인정과 성공이 곧 나의 가치인 양 여기며, 동료와의 비교 속에서 끝없는 경쟁심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가 가진 소유나 자녀의 성취를 통해 은연중 우월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흔들릴 때면 마치 세상 전부를 잃은 듯한 절망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바로 오늘 말씀 속, 세상 권세와 부를 의지했던 하만의 교만한 마음과 그 끝의 허무함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본론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만이 쌓아 올린 교만의 탑이 얼마나 위태롭고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지, 그가 의지했던 세상적인 것들이 얼마나 헛된 신기루였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의 ‘작은 하만’을 경계하고, 참된 만족과 평안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발견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만이 의지했던 세상의 것들: 교만의 화려한 외장
먼저, 하만이 무엇을 그토록 의지하며 교만의 탑을 쌓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9절은 하만이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초대받고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왔다”라고 기록합니다. 그의 기쁨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요? 11절은 그 답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하만은 자기의 “큰 부와 많은 아들”을 자랑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부와 다산은 성공의 상징이었고, 하만은 이를 통하여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하만은 "왕이 자기를 모든 지방관이나 왕의 신하들보다 높인 것”을 자랑합니다. 왕의 총애와 높은 지위, 이것이 하만에게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12절에서는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받은 자는 나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라며 교만의 정점을 찍습니다. 그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만이 의지했던 이 세상적인 것들 – 부, 자녀, 명예, 권력, 타인의 인정 –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 있습니까? 그러나 이것들이 과연 우리 영혼의 궁극적인 만족을 줄 수 있을까요?
2. 교만의 실체: 만족을 모르는 하만의 마음
그러나, 이 화려한 교만의 탑 아래, 하만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9절 하반절을 보면, 그토록 기뻐했던 하만은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매우 노하였으나”라고 기록합니다. 모르드개 한 사람의 무시가 그의 모든 기쁨을 순식간에 분노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의 행복은 이토록 불안정하고 조건적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13절에서 하만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교만은 이처럼 끝없는 갈증과 같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된 마음은 결코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그 텅 빈자리를 메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만의 교만은 그에게 참된 평안 대신 끊임없는 불안과 불만족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3. 교만의 결과: 스스로 파멸을 준비하는 어리석음
결국, 이 만족이 없는 교만은 하만을 어디로 이끌어갑니까? 14절 상반절에서 그의 아내 세레스와 친구들은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께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매달기를 구하라”고 악한 조언을 합니다. 교만한 자 곁에는 아첨과 악한 꾀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하만의 교만을 더욱 부추겨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말을 좋게 여기고 곧 나무를 세우게 하니라.”라고 기록합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세운 그 오십 규빗(약 23미터) 높이의 나무는, 역설적이게도 훗날 자신이 매달릴 교수대가 됩니다. 하만은 스스로 자신의 파멸을 준비한 것입니다. 교만은 이처럼 자기 자신을 향한 함정을 파는 눈먼 어리석음이며, 그 끝은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임을 보여줍니다. 비록 오늘 본문에서 하만이 바로 처형되지는 않지만, 이 장면은 그의 교만이 필연적으로 몰락으로 이어질 것임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결론: 교만의 탑을 허물고 겸손의 집을 세우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줍니다. 하만이 의지했던 세상의 권세와 부, 명예는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것들이며, 교만의 탑은 결국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야고보서 4:6).
그렇다면, 우리의 참된 만족과 영원한 가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세상의 평가나 소유가 아닌,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그렇습니다. 우리의 참된 만족과 영원한 가치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작은 하만"의 모습을 성령의 빛 가운데 정직하게 돌아보길 원합니다. 나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며 높아지려 했던 교만의 마음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읍시다. 세상의 헛된 영광이 아닌, 오직 주님의 인정을 구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교만의 허무한 탑이 아닌,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견고하게 지어진 겸손의 집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만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 안에 있는 교만의 모습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며 높아지려 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만이 의지했던 세상 권세와 부가 결국 그를 스스로 무너지게 했음을 기억합니다. 오늘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경외하며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교만의 자리를 내어드리고 주님으로 채우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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