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본문인 에스더 4:1-17을 큐티하고 준비한 새벽예배 설교. "이때를 위함이라"라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우리의 소명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에스더처럼 시대적인 책임 앞에서 믿음으로 결단하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고 주어진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용기와 지혜를 나누고 싶습니다.
에스더 4장 1절-17절, 지금, 여기, 당신을 부르시는 이유
서론: 내 삶의 '왜?'라는 질문 앞에 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거룩한 새벽, 하루의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리려 나아오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 ‘내 삶의 더 큰 의미는 없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신 적 없으십니까? 반복되는 일상과 역할의 무게 속에서 우리는 종종 이런 고민에 휩싸입니다. 사회의 안타까운 소식들 앞에서 '누군가는 나서야 할 텐데...' 하면서도 주저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교통사고의 현장에서 급하다는 핑계로 119에 전화하지 않고 지나가던 경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소명'과 ‘시대적 책임’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나, 사실 우리 일상의 고민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의 부르심, 외면할 수 없는 시대의 아픔,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본론: 위기 속에서 발견하는 '이 때를 위함이라'
오늘 우리는 에스더 4:1-17의 말씀을 통하여, 이 소명과 시대적인 책임 앞에 선 에스더의 고뇌와 결단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특히 “왕후의 자리가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는 모르드개의 권면은, 오늘 우리 삶의 자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 새벽예배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 이곳에 두신 이유, 즉 소명과 시대적 책임을 발견하고 응답하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1. 절망적인 현실과 개인적인 안위 사이의 갈등
오늘 본문은 유다 민족이 하만의 계략으로 멸절될 위기에 처한 절망적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모르드개와 모든 유다인은 재를 뒤집어쓰고 통곡했습니다(1-3절). 존재 자체가 사라질 위기 앞에서 고통으로 부르짖는 처절한 절규였습니다.
반면, 왕궁 안의 안전한 곳에 있던 에스더는 처음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습니다(4-9절). 우리도 안락함 속에 현실의 아픔을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민족 말살이라는 조서 등본을 에스더에게 전달하며 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이제 에스더는 더 이상 현실의 위기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10-12절은 이같은 냉엄한 현실을 마주한 에스더의 인간적인 두려움이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왕의 부름 없이 나아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고, 이미 30일간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왕의 총애가 식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공포가 에스더를 짓눌렀을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안전지대에서 머무르기를 포기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전지대에서 나오라고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2. 모르드개의 요청과 시대적 책임의 무게
에스더의 주저함에 모르드개는 다시 한번 단호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모르드개의 음성은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기도 합니다. 13절을 통하여 모르드개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에스더 4: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모르드개는 특권을 가진 에스더가 회피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 심지어 특권까지도 개인의 유익을 넘어서 공동체 전체를 위한 도구입니다. 이어서 모르드개는 14절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지지만, 그 부르심과 시대적인 책임 앞에서 침묵한다면 개인은 멸망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이러한 경고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주권에 대해 인간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만 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3. 에스더의 결단, 죽으면 죽으리이다
모드르개의 경고를 들은 에스더는 마침내 응답합니다. 목숨을 건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15--16절 상반절을 보면, 에스더는 모든 유다인에게 자신을 위해 삼일 밤낮 금식을 요청하며 자신과 시녀들도 함께 금식하겠다고 합니다. 에스더의 이러한 요청들은 개인의 결단을 넘어, 공동체의 기도를 요청하며 영적으로 연대하는 모습입니다. 소명을 감당하는 것은 홀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리고 마침내 에스더는 16절과 같이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에스더가 자포자기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희생적인 결단입니다. 자신의 생명보다도 동족의 구원을, 개인의 안위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겠다는 믿음의 선포입니다.
에스더의 결단은 즉각적인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모르드개 역시 에스더의 요청대로 행했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이 공동체에 큰 영향을 미쳤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간 것입니다.
결론: 당신의 '이때'는 언제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손길로 그녀를 그 자리에 세우셨고,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삶의 자리, 우리가 겪는 상황들 속에도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숨겨져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 문제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거나, ‘나 하나쯤이야’ 하며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나 한 사람’을 통해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결단과 순종이 역사의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시대의 아픔과 필요를 외면하지 말고, 기도하며 감당해야 할 책임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오늘, 당신의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결단은 무엇입니까? 어떤 일에 대해 나의 편안함을 포기하고, 세상의 가치관과 맞서며, 하나님을 위해 또 이웃을 위해 담대히 일어나시겠습니까? 오늘 이 새벽,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이 때’는 무엇이며, 감당해야 할 ‘시대적 책임’은 무엇인지 묻고 응답합시다. 에스더처럼 믿음으로 결단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에 우리를 동참시키실 것입니다. 지금 여기,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믿음으로 순종하는 복된 하루, 존귀한 인생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에스더를 통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과 시대적인 책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삶의 자리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믿으며, '이때를 위함이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두려움을 넘어 에스더처럼 믿음으로 결단하고 순종함으로, 주님의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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