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누가복음 23장 44절-56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장 큰 사건을 바라보는 주변의 인물들의 행동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큐티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해 주는지 고민하면서 새벽예배설교문을 정리하여 나눕니다.
누가복음 23장 44절-56절, 십자가의 죽음이 주는 의미
서론
인생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생은 떠도는 구름과 같다고 말합니다. 특히, 인생을 50년, 60년 혹은 70년 이상을 살아오신 분들은 "인생에는 단맛이 있는가 하면 쓴 맛도 있다"라고 말합니다. 자녀들이 커 가면서 부리는 재롱으로 인생의 단 맛을 느끼는가 하면, 자녀들이 훌쩍 커서 독립해 버림으로써 허전함과 허무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직장 생활에서 즐거움을 느끼는가 하면 은퇴함으로 인해서 나 자신이 쓸모 없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괴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는 쉴 새 없이 예상하지 못한 어둠이나 큰 슬픔이 찾아옵니다. 산을 하나 넘었다 싶으면 또 다른 산이 우리 앞에 버티고 있습니다. 골짜기를 겨우 건넜다 싶을 때, 더 깊은 골짜기가 우리 앞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본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무게와 고난에 대해서도 위로를 전해 주시는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십자가의 죽음 : 살 길을 여신 죽음
먼저, 예수님의 죽음은 영원한 멸망을 향해 달려 가는 모든 인류가 살 길을 여신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으며,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44절과 4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23:44-45,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온 세상에 어둠이 임하였다는 말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를 보여 주는 동시에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예수님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생생하게 증명하는 표현입니다. 또한 휘장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었습니다. 이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이제는 누구든지 담대하게 하나님 아버지께로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살 길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0장 19절과 20절을 통하여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며 동시에 완전하신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피를 통하여 새로운 길이자 영생의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나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으로 범하게 되는 죄들, 의도적으로 짓는 죄들로 인하여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있을까"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 죄라는 장벽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모든 장벽들을 허물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살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믿을 때, 언제든지 그리고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십자가의 죽음 : 소망을 주는 죽음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고 소망이 사라지는 인생의 결말입니다. 모든 인간이 이러한 결말을 맞을 수 밖에 억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소망을 주는 죽으심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무리들은 가슴을 치며 돌아갔고, 여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지켜보면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의회원이자 존귀한 자로 여김을 받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빌라도에게 당당히 나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시신을 정중하게 모셔 새 무덤에 안치하였습니다. 53절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3: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예루살렘이 소란스럽고 종교 지도자들이 기새 등등하며 예수님은 무기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 같은 현재의 상황 속에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이러한 행동들은 굳은 결심과 큰 용기가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예수님의 추종자로 몰려서 자신의 모든 명예와 존경을 한 순간에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임을 보았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껏 누리던 세상의 것들을 모두 포기할지언정 예수님을 포기할 수 없음을 믿음의 행동으로 보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모든 소망이 사라진 듯한 현실 속에서도 절망이 아니라 소망을 가져다 주는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절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소망을 주는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십자가는 현실의 무게 속에서 절망하고 좌절하는 모든 인류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 소망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라고 분명히 선언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에 시시 때때로 찾아 오는 위기들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건강의 문제나 자녀들로 인한 상처, 관계가 무너져 내림으로 인하여 세상을 잃은 것과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유 없이 미움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하여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슬픔과 아픔과 절망 속에 내던져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무기력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순종하는 죽음이었고 살리는 죽음이자 소망을 주는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장벽을 허무시는 주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십자가의 죽음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들이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죽음으로써 열어 주신 생명의 길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십자가를 붙들고 말씀을 사모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십시오. 또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같이 담대하게 의로운 일을 행하십시오. 오늘 행하는 우리의 의로운 일, 사랑을 베푸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는 소망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십시오.
인생의 황혼기를 향해 가고 점점 쇠약해져 간다 할지라도, 우리의 속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하여 날로 새로워지며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좌절하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의 참된 소망은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십자가의 죽음이 전해 주는 부활의 소망을 굳게 붙잡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죄와 절망 가운데 있던 우리들을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고통의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의 길과 참된 소망을 우리에게 열어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 날마다 담대하게 하나님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예수님님의 사랑과 헌신에 대한 작은 응답이 되게 하여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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