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누가복음 22장 54절-71절을 묵상하고, 베드로를 보신 예수님의 시선에 초점을 맞춘 새벽예배 설교입니다.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는 오늘 우리들에게, 진실과 관계, 그리고 십자가 은혜가 담긴 주님의 시선을 통해 위로와 회복의 소망을 전합니다. 사람의 평가가 아닌 주님의 시선 앞에서 살아가는 삶으로 초대하며, 복음 안에서 새 힘을 얻도록 격려합니다.

누가복음 22장 54절-71절,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서론
고요한 새벽, 만물이 잠든 시간,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두 번째 날을 맞이하여 이 거룩한 자리에 나아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눈빛을 마주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의 눈빛과 배우자의 눈빛을 어젯밤에도 보셨을 것입니다. 또, 때로는 따뜻한 격려의 눈빛을 통하여 위로와 새 힘을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차가운 오해의 눈빛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말보다 더 깊은 공감과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바로 눈빛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 속에서 가장 극적이고도 가슴 아픈 장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슬픈 현장이면서 동시에 가장 은혜로운 눈빛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본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셨던 그 밤, 제자들은 예수님의 곁에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수제자 베드로는 멀찍이 끌려가시는 예수님을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는 불을 쬐며 불안하게 서성이다가, 세 번에 걸쳐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모른다며 저주까지 하면서 부인합니다. 바로 그 순간, 닭이 울었고,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눅 22:61)라고 말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그 처절한 실패의 현장에서, 우리 주님은 베드로를 바라보셨습니다.
이 짧은 순간, 예수님의 시선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요? 그리고 베드로를 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을 통하여 오늘 이 새벽, 어쩌면 실패와 연약함 속에서 불안해 하며 좌절하는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될까요?
첫째, 진실을 드러내는 시선 : 가면 뒤의 나를 보신 예수님
첫째, 베드로를 바라보신 예수님의 시선은 진실을 드러내는 정직한 시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불법적으로 재판 받으시던 그 현장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르는 척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시선은 그의 거짓된 가면과 두려움에 찬 속마음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바로 몇 시간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고 베드로에게 예고하신 말씀을 떠올리는 시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선을 통하여 베드로는 자신의 실패의 실체를 솔직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괜찮은 척, 강한 척, 믿음 좋은 척… 세상의 기준과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까? 슬프고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고 두려움과 좌절로 인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한 마음을 보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때로 우리에게 아픔을 주기도 하지만, 그 모든 아픔들 역시 우리를 위선에서 벗어나 진실 앞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둘째, 관계를 기억나게 하는 시선: "나는 너를 알고 있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은 "관계를 기억나게 하는 시선"이었습니다. 베드로를 보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낯선 분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주님’으로 고백하며 3년간 동고동락했던 바로 그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바라보시며 보이신 그 시선은 그간에 함께했던 시간들과 가르침과 사랑, 그리고 베드로를 향한 기대(“네가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를 가득 담은 안타까움과 따뜻함이 담긴 시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베드로야, 네가 나를 부인했지만, 나는 여전히 너를 알고, 너는 나의 제자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관계에 기초한 시선이었습니다.
혹시 우리도 삶의 분주함과 어려움 속에서 주님과의 관계, 주님의 말씀을 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과 아픔, 심지어 우리의 부끄러운 실패까지도 다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실패 속에서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되돌아 보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고 주의 도움으로만 고난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하시는 시선이었습니다.
셋째, 회개로 이끄는 은혜의 시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신 예수님
가장 놀라운 점은, 베드로를 바라보신 예수님의 시선은 진정한 회개로 이끄는 은혜의 시선이었다는 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시선 앞에서 절망하여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자신의 연약함과 실패를 두고서 ‘심히 통곡’했습니다(62절). 베드로의 통곡은 단순한 후회의 통곡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회개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의 시선에 대한 여러 해석들을 "성경에 ‘은혜의 시선’이라고 쓰여 있지 않은데 너무 감상적인 해석 아닌가?"라며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예수님의 감정이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반응, 그를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마음,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활 후 베드로를 찾아가 회복시키시고 다시 사명을 맡기신 예수님의 모습 전체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시선이 정죄를 위한 시선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실패한 제자를 다시 품으시고 회복의 은혜로 부르시는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어떻게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한 죄인을 향해 은혜의 시선을 보내실 수 있었을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그 시선 이후 곧바로, 베드로의 죄, 그리고 오늘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십자가를 지실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있었기에, 죄인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시선은 심판이 아닌 긍휼과 용서, 은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결론 : 예수님의 시선 앞에서 살아가는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의 실패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매일 일 때문에 사람 때문에 나 자신 때문에 연약하여 넘어지고,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외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처럼 연약한 우리를 예수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따뜻한 시선들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는 어떻게 ‘우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 앞에 설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지금 육신으로 우리 앞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진리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또, 기도를 통해 예수님 앞에 나아가며,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따뜻한 시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그리고 고난주간인 이번 한 주를 살아갈 때, 부디 ‘사람들의 시선(평가)’에 묶여 살지 마십시오. 대신 ‘나를 사랑과 진리로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 앞에서 살아가십시오. 우리의 연약함을 솔직히 고백하고, 우리를 속속들이 아시는 주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힘입으십시오. 우리를 따뜻하게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 그리고 세상을 이길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과 은혜의 주님, 이 새벽 시간에 우리를 주님의 전으로 불러주시고 말씀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베드로처럼 연약하여 넘어지고 예수님을 부인할 때도 많은 연약한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패 속에서도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은혜와 진리의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 세상의 시선이 아닌 주님의 시선 앞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여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시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승리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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