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창세기 27장 41절-46절
설교 : 깨어진 것을 사용하시다
찬송 : 새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형제의 다툼
최근에 안타까운 소식을 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개그맨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지금껏 모든 수입을 관리해 주던 형이 동생의 수입을 따로 챙겨서 외국으로 달아났다는 내용입니다. 선한 인생에 미담도 많았던 개그맨이었는데, 지금은 형제간의 다툼과 법적인 고소의 상황까지 간 상태로 들었습니다. 최근의 홈쇼핑 광고에는 살이 너무나도 빠져 수척한 모습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조선이 세워진 초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의 첫번째 왕인 태조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조가 막내 아들인 방석를 세자로 책봉하여 왕위로 물려주려고 하자, 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형제들을 살해하였습니다. 또 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한 후 방원이 직접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방원이 바로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입니다.
세상 누구보다도 큰 힘이 될 수 있는 형제가 마음이 틀어지게 되면 원수보다도 못한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이삭의 가정이 깨어지다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은 매우 인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랄 사람들이 자신의 우물을 빼앗으려 하여도 다투지 않고 내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르호봇이라는 큰 우물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십니다. 이삭의 아내였던 리브가는 대단한 여인이었습니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의 말을 듣고 가나안 땅에 있는 아브라함의 집으로 시집을 온 사람입니다. 어차피 갈 거라면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한 믿음과 결단의 여인이었습니다.
인자하고 용기와 결단력을 갖춘 부모님 아래에서 에서와 야곱은 각자 자신의 성품과 재능을 따라 성장합니다. 형 에서는 사냥꾼으로, 동생 야곱은 집안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활달한 에서를 좋아하였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잘하는 야곱을 좋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평화로워 보였던 집안이, 아버지 어머니가 쌍둥이 아들들을 편애함으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가정처럼 보이는 집안이었지만, 이 가족들 사이에도 불화가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오늘 본문처럼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서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려 하였던 야곱은, 형 에서와의 틀어진 관계로 인하여 홀로 도망가게 됩니다. 에서는 에서대로 얼마나 동생을 미워하였으며 특히 어머니 리브가를 원망하였겠습니까? 동생 편을 들어 자신이 받아야 하는 장자의 축복을 동생이 가로채도록 뒤에서 사주한 분이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에, 아마도 에서는 평생동안 어머니 리브가를 원망하였을 것입니다.
창세기 27: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이를 부득부득 갈던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돌아가시기만 하면 피바람을 일으킬 기세입니다.
아버지만 돌아가시면, 야곱, 너 두고 보자.
에서의 심정이었습니다.
깨어진 상태에서 만나 주시는 하나님
이삭과 리브가의 가정이 결국 깨어지게 됩니다. 큰아들은 부모를 원망하고, 둘째 아들은 형을 피해 먼 곳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먼 길을 잘 피해 갔는지도 모르고 생사도 확인이 안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부모와 큰아들과의 관계로 불편하고 어머니와 큰아들의 사이도 서먹합니다. 게다가 이 일로 인하여 남편 이삭과 아내 리브가의 관계도 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창세기에서는, 아내가 죽으면 남편이 아내를 애도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애도하고 막벨라 굴을 사서 장사 지냈습니다. 야곱 역시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출산 중에 죽자, 애도하며 장사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있는 이삭은 아내 리브가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에는 리브가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곧 이삭이 아내 리브가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삭의 가정이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서, 모두가 따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상당수의 가정의 모습과도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대화하지 않고 부모에 대한 존경도 자녀에 대한 무한한 사랑도 없이, 각자도생, 즉 각자 알아서 생존하는 가정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생활하다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가정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의외로 깨어지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가정이 많습니다. 마치 이삭과 리브가의 가정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깨어진 가정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비록 야곱의 얕은 꾀와 욕심으로 인하여 가정이 깨어지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는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어디에서 만나셨습니까? 벧엘의 들판에서 홀로 두려움과 막막함에 떨며 잠든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창세기 28: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던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비록 들판에 혼자 누워 있지만, 야곱은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심을 알게 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도록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깨어짐을 치유하실 수 있다
창세기 말씀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여전히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과정 속에서 고생을 하는 내용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약속대로 야곱은 거부가 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얍복강 근처에서 형 에서와도 화해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창세기 28장 15절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용과 같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든, 길을 가는 중에 있든, 자신을 원수같이 여기던 형 에서를 만나는 장면이든, 하나님께서는, 임마누엘, 야곱과 함께 하셨고 그를 지키고 돌보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야곱이 깨어진 상태, 가슴 한 가득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며,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상태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며 야곱의 연약함과 깨어짐, 상처들을 치유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심리 상담가들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친구나 가족들이 우리를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힌 치유와 회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시편들에서, 하나님께 회복시켜 주시길 기도하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80: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혹시라도 주위의 사람들이 나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깨어짐과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아픔을 통하여 우리를 성장 시켜 주시기까지 하십니다.
야고보서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시고 그 아픔을 넘어서서 우리를 온전하고 부족함 없게 성장시키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맡깁시다
어린이들이 자라다 보면 이유 없이 팔다리가 아프다고 하거나, 크게 앓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시고 "성장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라기 위해 아픈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상처이든, 혹은 다른 이들로 인한 상처이든, 그 상처를 하나님께로 가져가면, 완전한 의사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통하여 더 온전하게 성장시켜 주십니다. 상처를 딛고 일어난 우리를 사용하셔서, 또다른 아픔을 가진 이들을 치유하시는 도구가 되게 하십니다. 위로와 용기를 주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 주십니다.
내 삶에 깨어진 부분이 있습니까? 깊은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교회로 부터 받은 상처, 가족들로 인한 상처, 직장 속에서 받은 아픔, 나 자신에 대한 연약한 모습으로 가지게 되는 상처, 그 어떤 상처라도 상관 없습니다. 모든 상처를 다 치유하실 수 있는 우리 하나님께 가지고 나옵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올려 드립시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고 성장시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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