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장 13절-35절, 엠마오 향한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
누가복음 24장 13절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60 스타디아는 약 7마일이며, 개역개정성경에는 이십오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일반적인 거리로는 약 11km 정도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엠마오가 여러 군데 있는데 마카비1서 3:57과 4:3에서 요세푸스는 본문과는 다른 곳을 엠마오로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가 본문에서 말하는 엠마오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4절-17절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두 명의 제자가 엠마오로 내려가는 도중에 다른 유대인이 합류해서 가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특히 시기가 유월절 기간이므로,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지키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례자라고 생각했다면 더욱더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모른 척 하시며 질문하셨다고 해서 예수님이 그 답을 몰랐다는 것은 아닙니다(창 3:9, 11; 4:9-10). 두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사실에 대해서는 24장 31절-35절의 주석을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24장 18절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소식은 입에서 입으로 매우 빨리 퍼져 나갔으며, 유월절 명절 중에 공개 처형한 사실에 대해서는 대중들이 충분히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찾았던 헬라 지역에 거주하는 순례자들 역시 이 소식에 대해 분명히 들었을 것입니다. 글로바가 놀라는 모습은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잠을 자다가 최근에 깨어나 그간의 일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깜짝 놀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지난 며칠 사이에 발생한 사건들 중에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추측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9절-21절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글로바의 말들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느꼈을 것이 분명한 혼란이 무엇인지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선지자였거나 혹은 메시야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도 영접하고 따라야만 했었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유대 지역에서처럼 제사장 귀족 정치가 시행되지 않았던 갈릴리와 팔레스타인 외부에 살았던 사람들은 성전의 지도자들을 더 높이 존경했음이 분명합니다.
누가복음 24장 22절-24절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4장 6절-12절의 주석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24장 25절-27절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은 신명기 18:15-18, 이사야 9장과 11장 그리고 53장에 관한 내용들을 언급하시고 계심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의 여러 곳을 인용하여 자신의 메시야로서의 역할에 대한 원리들을 말씀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랍비 문헌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이 여기에서 보여 주시는 깊은 성경에 대한 통찰과 이해에 대해 칭찬하곤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4장 28절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두 제자들은 예수님께 자신들과 함께 머물라고 초대하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 계속 걸어 가시려고 하시는 행동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의가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또 상대방이 손님을 접대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창 19:2).
누가복음 24장 29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이 제자들이 예수님께 제공하는 것는 숙소와 같은 최소한의 모습은, 예수님에 대한 호의를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특히 해가 저물어 가는 오후 시간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밤길에 하는 여행은 강도로 인하여 예루살렘에서 멀어질 수록 위험하였습니다. 고대 근동의 사회 전역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동족에게 잠자리를 제공하였으며, 강권 즉 끈질기게 권하는 것도 손님 접대의 예의였습니다(삿 19:5-9; 삼상 28:23 참조).
누가복음 24장 30절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또한 늦은 저녁 시간이라 할지라도 손님에게 빵을 제공하는 것은 호의를 나타내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11:5-6 주석 참조). 모두가 오랫동안 걸어 왔었기 때문에, 두 제자들은 아마도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심으로써, 이 집안의 가장의 역할을 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일들을 행하셨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1절-35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천사들은 때로 자신들의 임무가 끝이 날 때까지 변장을 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토빗에서 라헬이 토빗과 토비아에게).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는 달랐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죽었다가 다시 생명을 회복하게 된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천사들과는 달랐습니다.
두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들 중에 하나는, 그들의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24:31, 왕하 6:17). 그러나 예수님께서 즉시 사라지신 것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종류의 몸, 부활한 이후에 의인에게 약속되어진 몸을 입으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Keener, C. S. (1993). The IVP Bible background commentary: New Testament (눅 24:13–35).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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