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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01 창세기 설교

창세기 37:1-17, 꿈, 야망 그리고 비전 Dream, Ambition or Vision 매일성경

by 구약장이 2020.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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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오늘부터는 창세기의 후반부라 할 수 있는 '요셉'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요셉은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을 이어가는 족장으로 구분할 수는 없는 인물입니다만,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의 내용을 이끌어 가는 주요한 인물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야곱의 집안에 대한 내용을 마무리하는 인물로 등장한 요셉은, 창세기 다음으로 이어지는 출애굽기와의 연결 고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요셉의 삶을 통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성경적인 성공의 길'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지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542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성경 창세기 37:1-17

    꿈, 야망 그리고 비전 Dream, Ambition or Vision

     

    창세기 37:1-17, 꿈 야망 그리고 비전, 성서유니온 매일성경 본문

     

     

       꿈은 이루어지는가          

       벌써 20여년 전의 일인 '한일월드컵'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구는 "꿈은 이루어진다"였습니다. 축구의 불모지로 평가받던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까지 진출하는 꿈을 이루어, 그야말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했던 때였습니다.

       당시 월드컵 대표팀 축구 감독이었던 '히딩크'는 일약 온 국민의 영웅이 되었고 훌륭한 축구 선수들이 이름을 날리며 세계 무대에도 진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축구팬들의 꿈이 이루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축구의 꿈이 이루어지게 된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히딩크 감독의 굳은 의지와 선수들에게 불어 넣어 준 자신감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이권 다툼에 휩싸이지 않고 히딩크 감독은 우리나라 축구팀의 형편에 맞게 체력부터 길러 나가며 한 단계씩 밟아 나갔습니다. 선수들에게도 지속적인 자신감을 불어넣었으며 선수들에게 신뢰감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결과, 꿈은 결국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가 꾸는 꿈들이 모두 2002년도의 월드컵 팀이 이루어낸 것과 같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꿈을 꾸는 것마다 이루어지지 않고, 그 꿈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나감에도 불구하고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왜 어떤 꿈은 이루어지고 어떤 꿈은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일까요?

     

     

       꿈의 목적이 무엇인가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가의 여부는, 그 꿈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꾸는 꿈이 나의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면,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 이룰 수는 있지만 곧 무너지고 맙니다.

       권력의 정점에 오른 많은 사람들과 일순간에 많은 재물을 가지게 된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꿈은 큰 권력과 많은 재물이었을 것입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 순간에 권력과 재물을 차지하게 된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비리가 밝혀져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자신의 개인의 영화를 위한 꿈이 아니라 모두의 유익과 나눔을 위한 꿈을 꾸는 사람은, 소리 소문 없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다가 결국 그 꿈을 이루고 맙니다. 늦지만 결국에는 꿈을 이루고, 목표한 대로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게 됩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존경 받고 사랑받는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야곱의 야망 혹은 비전          

       그래서 꿈을 두 가지 종류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그 꿈이 개인의 '야망'이냐 혹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이냐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 역시 꿈을 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꿈은 태어나면서부터 차지하지 못한 "장자권"을 차지하는 꿈이었습니다. 형을 누르고 장자권을 차지하여 장자가 누리는 권리와 축복을 자신이 가지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형 에서에게 팥죽을 주며 장자권을 요구하였고, 어머니 리브가가 에서의 흉내를 내며 아버지에게 가라고 했을 때에도 따랐습니다. 그 모든 것이 원래는 이룰 수 없는 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실제로 속이는 행동들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형과의 다툼입니다. 그리고 가족과의 생이별이었습니다. 형 에서가 분노함을 알고 난 후, 지금까지 장막에서만 거하였던 삶을 살았던 야곱이 가족을 떠나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먼 곳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야곱이 꿈꾸었던 장자권이라는 것은, 결국 야곱의 야망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각종 권모술수를 동원하였고 그 결과 형의 위협에서 도망 다니는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원래부터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주신 비전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 25:23, 개역개정 성경)

       야곱이 형보다 강해지고 결국 야곱이 장자권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비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비전을 믿고 기다렸다면, 가족의 분열 없이 꿈과 비전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급한 야망을 실현하려다가 결국 가정이 깨어지고 야곱 본인도 타지로 도망가야만 했었습니다.

     

    한 걸음씩 정상과 비전을 바라보며 걸어갑니다.

     

       요셉의 야망 혹은 비전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 역시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서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리하게 실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권모술수로 장자권을 노렸으나, 요셉은 그저 꾼 꿈을 이야기했을 뿐 아버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꿈 이야기를 하면 가족 모두에게 꾸지람을 들을지도 모를 내용을 자기 입으로 두 번이나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모습에서, 순수할 정도로 하나님의 비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백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 속에서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통하여 자신의 지위를 높이거나 욕심을 채우려는 야망으로 실현시키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비전을 이루시길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펼쳐지는 요셉과 관련된 성경의 내용들을 통해서 볼 때에도, 요셉은 자신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의 말을 쏟아 내지 않습니다. 그가 한 일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비전을 붙잡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13절과 16절에서도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요셉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창 37:13, 개역개정 성경)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창 37:16, 개역개정 성경)

       흔히 말해서, 손에 물 한 번 묻히지 않고 곱게 자란 아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특별히 요셉을 편애하여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채색옷은 당시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왕의 뒤를 이을 왕자나 집안의 상속자가 입는 옷입니다. 따라서, 요셉은 야곱 집안의 상속자였습니다.

       그러니 형들에게 다녀오라는 야곱의 말에, '종들을 보내소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3절에서는 "내가 그리하겠나이다"라고 대답함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봐이오메르 로 힌네니'(וַיֹּאמֶר לֹו הִנֵּנִי)인데, '그(요셉)가 그(야곱)에게 말하길 당연하지요'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힌네니'라는 말은, '보십시오, 내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종을 보십시오'라는 뜻으로 의역할 수 있습니다.

       또 헤브론에서 세겜까지 약 80여 킬로미터를 걸어가며 형들을 찾았지만, 형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지만, 16절처럼 요셉은 사람들에게 형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요셉의 모습입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야망이 아니라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는 성실한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야망 혹은 비전          

       야곱과는 달리 아들 요셉은, 자신의 꿈을 야망으로 변질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꿈을 소중히 간직하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형들에게 다녀오라는 아버지의 명령에도 최선을 다하며,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그리고 총리가 되었을 때에도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기억하며 성실하게 일하였습니다.

       야망이었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 야곱처럼 권모술수를 썼을 수도 있고, 타국에 팔려갔거나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원망과 절망을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형들을 다시 만났을 때 복수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꿈이 하나님의 비전임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때까지 믿음으로 기다리며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습니까? 그 꿈을 하나님의 때가 아닌 내가 만족하는 때에 이루기 위해 사람의 방법을 동원하려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주신 귀한 꿈을, 내 욕심을 채우는 야망으로 변질시키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비전으로 지켜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 주신 꿈을 비전으로 잘 지키며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주신 비전을 이루실 것이며 우리를 하나님의 도구로 귀히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비전을 바라보며 성실하게 살아 나갑시다.

     

     

    포기하지 않고 걸어 올라가면, 결국 비전은 이루어집니다

    기도

       하나님, 야곱과 그의 아들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 주신 꿈들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았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한 야곱은 결국 가정을 깨뜨리고 자신도 도망자가 되고 말았음을 보았습니다. 반면에 요셉은 꿈을 비전으로 지켜 나갔기에, 어려움과 역경이 있었지만 견디어 내었고 결국 하나님의 큰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꿈도 내 뜻과 내 마음대로 이루려 하여 야망으로 전락시키지 않게 내 마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때까지 기다리며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어서 함께 묵상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주님의 뜻을 이루실 때까지 주신 비전을 잘 지켜 나가게 하옵소서.
    • 한국 교회가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고 먼저 회개하고 말씀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 세계 곳곳에서 복음 전하는 주의 선교사님들을 지켜 주시고, 어려운 시기에도 복음 전파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가는 선교사가 되든지 보내는 선교사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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