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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19 시편 설교

시편 33:12-22, 소망의 이유 A Reason for Hope - 주일오전예배설교

by OTFreak 2020.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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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세상을 살아야 할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에 꼭 살아야만 합니다. 언젠가는 사라지는 일시적인 세상에 소망을 두었을 때에도 살아야 할 이유가 많이 존재합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우리 하나님을 바라볼 때 소망의 이유가 없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소망의 이유들을 제시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목차

     

    시 33:12-22, 개역개정 성경

    1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14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15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17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18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19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20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21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22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소망의 이유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라는 곳에는 인간과 식물 그리고 동물이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지역에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들이 나타나 사람이나 가축들이 피해를 입고 다치는 일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자 호주의 한 대학 연구팀이 소의 엉덩이에 눈을 그렸고, 맹수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연구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습니다. 맹수의 습격을 받은 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맹수들은 눈을 마주치면 사냥을 포기하기에 주로 뒤에서 덮치는데, 엉덩이에 눈이 그러져 있으니 뒤에서 덮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고 험악한 생존 사회나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참으로 애쓰고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도 살아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힘든 시간들을 잘 버티셨고 잘 지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위로받고 새 힘을 얻게 되길 바랍니다.

     

    들어가며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을 잘 섬긴 왕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섬긴 히스기야 왕이었지만, 그가 남유다를 다스리던 때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북쪽의 강대국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점령한 후, 호시탐탐 남유다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남유다의 왕이 된 지 14년이 지난 주전 701년 경, 앗수르의 왕인 산헤립이 군사를 이끌고 남유다로 공격해 옵니다. 열왕기하 18:13의 말씀에는,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공격하여 점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산헤립이 이후에 남긴 비문에서는, 총 46개의 중요한 요새를 모두 점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히스기야는 두려움에 떨며 성전의 문을 입힌 금과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주고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국가의 재산뿐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할 때 사용하는 금은 그릇과 문의 금까지 벗겨서 산헤립에게 바쳤기에, 앗수르 군대는 철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재물로써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뒤, 산헤립은 다시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포위하게 하였습니다. 금은과 같은 보물로는 남유다와 히스기야 왕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에서 완전히 구원해 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재물로 혹은 다른 나라 특히 애굽에게 요청하여 앗수르를 돌려보내려 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라고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재물로 다른 군대로 아무리 노력을 해 봐도 진정한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달은 히스기야는, 오직 하나님만이 예루살렘이 포위된 이 위급한 상황 가운데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전쟁 가운데 오직 소망은 하나님께만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 산헤립이 항복하라고 조롱한 글들이 적힌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 기도한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 결국 산헤립으로부터 완전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열왕기하 19:35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하 19:35, 개역개정 성경)

       그 어느 것도 우리를 두려움과 염려와 괴로움에서 완전히 구원해 낼 능력이 없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철학도 우리를 죄에서 완전히 구원해 낼 힘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시며,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는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본문으로

       오늘 본문인 시편 33:12-22의 말씀은, 정확하게 누가 어떤 상황에서 지었는지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바로 앞서서 말씀드렸던 히스기야를 구원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서 지어진 시이자 노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적으로 둘러 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있었던 남유다와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한 이후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들의 소망이요, 기도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닫고 노래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진 재물이나, 군대나 강한 용사로는 진정한 구원을 결코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이 소망이 되시고 누구든지 환난을 당한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참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경험을 통해 가르쳐 주는 귀한 믿음의 고백이 되는 시가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스기야 왕이 고백하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살피시며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백성 곧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의 모든 상황을 살피시고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시 33:15, 개역개정 성경)

          아무도 몰라줘도 아무도 이해 못해도, 내 모든 형편과 상황을 알고 계신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만 합니다. 이 땅의 그 어떤 존재도 우리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며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의 깊은 곳까지 모두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깊은 것까지 알고 계십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인간은 귀를 통하여 들어야 알 수 있고, 눈을 통해 보아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음식인지 냄새를 맡아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형편을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29-30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눅 12:29-30, 개역개정 성경)

          우리를 굽어 살피시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필요도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고 채워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를 이미 알고 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이 아닌 우리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둡시다. 우리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성도는, 아무리 큰 절망이 짓누른다 할지라도 결코 넘어지지 않습니다. 설령 넘어졌다 해도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실뿐만 아니라, 우리를 적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이시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미 앗수르의 산헤립 왕에게 있는 것 없는 것 다 구해서 바쳤습니다. 그 즉시로는 문제가 해결되고 전쟁이 끝난 것 같았지만, 2년 만에 더 큰 전쟁이 시작되었고 곧 앗수르에게 패망할 듯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벗겨서 줄 성전 문에 칠해진 도금도 없고 성전의 그릇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제야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16-1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시 33:16-17, 개역개정 성경)

          우리 하나님은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모든 군대를 거느리신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불가능이 없으신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에 처한 성도가, 인간의 군대나 용사나 재물로는 진정한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16-17절을 통하여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당대의 최고의 군사력과 병거를 가졌던 애굽의 군대를 홍해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기억해 봅시다.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 바다를 가르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적들은 그 한가운데에 던지시고 가라앉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5:3-4에서 구원받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 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출 15:3-4, 개역개정 성경)

          진정한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바다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물며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건지시지 못하시겠습니까? 우리의 패배감,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불안함을 제거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우리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죄의 권세를 깨뜨리시지 못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약한 육신을 회복시키지 못하시겠습니까?

          우리를 능히 원수 된 사단과 죄, 그리고 우울함과 패배감에서 건지시고 구원해 주시는 능력의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아시고 원수들에게서 구원해 주시는 우리 하나님은 또한 우리를 향한 한 없는 사랑을 베푸시기에 하나님께만 소망을 둘 이유가 됩니다.

          1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시 33:19, 개역개정 성경)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기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세세하게 보살펴 주십니다. 아무리 환난이 극심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마치 암탉이 날개 아래 병아리를 품음과 같이 우리를 품어 주시며 보호하여 주십니다.

          극심한 바이러스와 같은 질병이 우리를 덮치고 기근과 홍수로 우리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우리 하나님은 보살펴 주십니다. 기근으로 굶주린 주의 백성들의 필요를 채우셔서 배부르게 하시며, 영적인 기근으로 메말라 가는 영혼에 은혜의 단비를 부어 주심으로 회복케 하십니다.

          19절의 "굶주릴 때"라는 말은 히브리어 원어로는 "라아브"(רָעָב)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기근'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일 수도 있지만,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근'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영과 육이 굶주리고 지쳐 허덕일 때, 한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살려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죽어가는 몸을 살리시며 시들어 가는 영혼을 소생케 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한 없는 사랑만이 우리의 영과 육을 회복시킬 수 있기에, 우리는 육신이 지쳐갈 때 영혼이 시들어 갈 때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도시에서 제일 크고 높고 화려한 건물은 어떤 회사의 건물인지 아십니까? 일반적으로, 도시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건물들 중의 상당수는 "보험회사" 건물들입니다. 서울의 63 빌딩도 처음에는 보험회사 건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험에 소망을 둡니다. 보험이 있으면 내가 나중에 아프고 힘들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우리나라 국민 중에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보험 가입자가 많습니다. 보험회사는 어마어마한 돈을 버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러분! 보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줄까요? 보험에 우리의 소망을 걸어도 될까요? 혹은 자식은 어떻습니까? 우리 자식에게 소망을 걸어도 되나요? 자식이 내 입의 혀와 같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해 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보험도 자식도 우리의 진정한 소망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의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보험설계사도 우리 자녀들도 알지 못하는 나의 모든 속속들이 사정까지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를 어려움에서 건져 주시는 우리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5, 개역개정 성경)

       한 주간을 살아가면서, 오직 우리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우리의 도움으로 삼고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 평강과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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