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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신구약성경 주석 내용요약

11. 회복과 소망의 메시지를 주시다

by OTFreak 2020.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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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1. 회복과 소망의 메시지를 주시다 

     

    1. 성경 본문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다니엘, 학개, 스가랴, 말라기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가지다

     

    2. 들어가며

       앞선 내용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인종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공동체로 더 가까이 인도하시기 위해 포로 시대를 사용하셨다. 이제 위의 본문들을 통해 백성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제의적 삶을 회복시킴으로써 어떻게 하나님이 이 공동체를 계속 형성해 나가시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3. 본문에서

       (1) 하나님은 절망과 세상 권력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유다가 멸망한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왕국의 여러 지역에 두루 흩어진다. 그들은 거기서 그들의 운명을 돌아보게 되고 비로소 하나님을 발견한다. 그들은 나라, 땅, 성전, 공동체의 삶을 잃은 흑암의 수렁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선택받은 백성이 아니던가? 왜 하나님은 그들을 이 와 같은 방법으로 밀어내시는가? 왜 이렇게 오래 지체되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들은 놀랍고 역설적인 방법으로 다가온다. 포로기의 혹독한 절망 중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황폐한 땅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읍들을 재건하고, 그들이 소망하는 성전을 회복할 것이라는 확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거룩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절망과 이방의 권력을 사용하신다.

       포로기 이후에,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이방 통치자들을 사용하시어 아브라함의 후손이 장차 오실, 말씀 가운데 약속된 메시아에게까지 이어지도록 하신다. 이방 통치자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에게 이스라엘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도록 허락한다(스 1:1-4; 느 2:1-9). 에스더는 바사 왕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호해 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한다.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에 7:3). 이방 통치자들의 관대함과 호의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남는다. 이후 자신들의 퇴락한 성전을 다시 세우고, 종교적 행위들을 회복하고자 고국으로 돌아온다.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고국으로 귀환한 이들은 한때 몰락했던 이 나라의 사명감과 목적의식을 일깨운다. 백성은 아직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눈에 보이는 정치적인 실제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방 권력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통치하도록 하셨다. 인정하기엔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이러한 점령기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은 실제로 지중해 지역의 정치적 격변기 동안 안전과 안정을 보장받았고, 자신들의 종교적 유산을 회복할 수 있는 자유도 얻었다. 또한 하나님의 주도로 율법이 회복되었으며 성전이 재건되었다. 그리고 백성이 간절히 바라던 안정을 찾았다. 이제는 군대나 국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회복과 안정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예전의 신실함으로 돌아올 것을 요구하시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사죄(放罪) 능력과 은혜를 값없이 주셨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복된 기회를 이스라엘에게 부여해 주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그들은 이방 권력의 통치하에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종교적 삶의 중심에 두 기관을 세우셨다. 독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진실하고 지속적인 믿음을 가꾸어 가고 표현할 수 있는 회당과 새롭게 재건되어 율법이 요구하는 제사를 드리며 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성전이 바로 그 두 기관이다. 마을의 회당은 그 지역의 정기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되었다. 그곳에서 랍비는 성경을 해석하고 율법인 토라를 중심으로 한 유대교 문화의 관리자 역할을 감당했고, 바리새인들은 이들보다 좀 더 융통성 있는 회당의 전통을 대표하는 자들이 되었다.

       성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과거로부터의 연속성을 확증하고 안정을 찾는다. 성전에서 순례의 절기들을 지켰다. 제사장의 반열은 다시 세워졌으며 각종 의식이 번성하게 되었다. 새로운 집단인 사두개인들은 오로지 예루살렘에서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독실한 유다인들이 여러 세대를 거쳐 다시 세운 성전 예배를 보존하려고 노력했다.

     

    홀로 있으면서 깊이 하나님을 묵상하고 경험하는 그 장소가 예배의 장소이다

     

       (2) 회복에 대한 소망이 있는 곳에 변화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은 성경 가운데 가장 놀라운 주제 가운데 하나다.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 역시 인상적이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통해 들려준 하나님의 약속과 메시아에 대한 소망에 이끌리어,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고 율법 준수에 근거한 신실한 공동체를 세우고자 이곳으로 돌아왔다. 느헤미야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 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 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느헤미야 1:5-9, 개역개정 성경)

       포로기의 경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을 성취하시고, 그분의 백성을 회복시키시며, 역사의 모순들을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들은 포로가 된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 잠시 중단된 상태였음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놀라운 반응은 선지자들의 말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신실함이다. 포로 시절에 에스겔 선지자는 체계적인 제사장직과 정기적인 제사와 의식을 행함으로써 폐허가 된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회복할 거룩한 공동체를 요구했다. 무너진 것들을 재건하는 동안 선지자들은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역사를 회고했다. 그리고 현재의 비참한 모습은 백성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주변 국가들의 우상을 좇아 타락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께만 충성을 다하라는 에스겔의 경고와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에 대한 후대 선지자들의 통찰(洞察)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 가운데는 유일신(唯一神) 사상이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다. 따라서 유일신 사상은 헌신의 엄격한 기준이 되었으며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적인 충성을 요구했다.

       포로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 지리적인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연속성을 단절시켰다. 이들은 본국으로의 귀환과 더불어 새로운 문화를 수립해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정, 회당,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방식의 생활을 발전시켜 나갔다. 수많은 외국의 점령과 정치적인 술책, 종교 전쟁과 수세기 동안 그 땅을 뒤덮고 있었던 반란들을 견디는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인들에게 멸망당하고 유다인들이 지중해 전 지역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는 여전히 지속되었고 번성하기까지 했다. 오늘날도 세계 곳곳에서 그들의 문화를 만날 수 있다.

       또한, 국가적 재난과 주변국에 포로로 끌려가는 어두운 수렁 속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날’, 곧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심판이 도래하는 것과 이스라엘이 본래의 신분과 위대함을 다시 회복할 그날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전 역사를 위한 하나님의 구속적인 목적들을 부여잡게 되었다.

       포로기의 영적 침체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었다. 포로기 이전의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면서 하나님을 거부했다. 이와 같은 거부가 포로기 후에는 다른 방법으로 계속된다. 그들은 율법과 율법의 해석에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항상 우리에게 손을 내미시고 우리를 포용하시며, 항상 사랑하시고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모 습을 놓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잉 반응은 율법과 규례들을 엄격하고 철저한 제도로 발전시켜 백성을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인도하는 원래 목적에 집중하기보다는 제도 자체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3) 하나님은 언제나 그분의 백성과 상호 관계를 가지신다

       포로기와 이로부터의 회복 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특정 시간이나 장소에 제한되지 않으심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예배를 받으신다. 다니엘은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 했다(단 6:10). 그들은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만 유한한 세상과의 상호 관계를 늘 유지하고 계시는 분임을 배우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과 구별되어 존재하심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하나님이시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나라의 통치하에 힘겨운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의 종교적 신앙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인간의 정치적인 힘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 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기의 비극을 통해 이 모든 중요한 교훈들을 배워야만 했다. 우리는 이들보다 덜 힘든 상황에서 이러한 교훈을 얻기를 소망할 뿐이다.

       또한 회복기에는 국경도 없는 비물질적인 나라인, '천국'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미리 알리는 예언들이 있었다. 다니엘은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한' 뜨인 돌에 대해 예언 했다. 이 돌은 모든 인간 나라들을 정복할 것이며,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던' 돌이다(단 2:34-35). 베드로는 이 산 돌이 '보배로운 모퉁잇돌'이며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라고(벧전 2:6) 선포한다.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과 능력, 진리와 의의 모양으로 이 땅 위에 보이지 않는 그분의 나라를 세우셨다. 이 나라는 이미 도래했지만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은 영적인 나라다.

       (4) 제의적 정결 운동과 이에 대한 후유증을 앓다

       한계 또한 여전히 많다. 제의적 정결을 지키려는 열정 때문에 포로 기간 동안 경험했던 것만큼이나 격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예를 들어, 이방인 아내들을 버리고 이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거스를 뿐만 아니라 국가적 위기까지 초래할 형편이었다. 느헤미야는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어찌 용납하겠느냐”라고 (13:3, 27) 외친다. 예수님의 심오한 가르침 가운데도 같은 내용이 있다.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태복음 5:31-32).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은 종종 비공식적인 집단을 다루는 것이 공식적인 통치 기관을 다루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다. 당시 바사 사람들이 옛 이스라엘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고 느헤미야에게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도록 공적으로 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 거주민들과 주변 '통치자'들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노력에 대항했다. 상황은 더욱 심화되어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게(느 4:16-17)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경험이 우리에게 나라의 안정과 정부 공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동기를 부여해 준다(딤전 2:2).

       점령국들의 지배와 아무런 견제가 없는 종교적인 체제의 볼모가 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또 다른 할 일이 생겼다.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왜냐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서든지 원하는 곳에서 예배할 수 있는 자유가 우리 정신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국가들의 지배를 받았던 마을 중심의 이스라엘 농경문화 속에서는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예수님의 탄생 이전의 2세기 동안 나타난 수많은 민족 중심주의의 움직임과 전통 사상에서 이탈한 분파(分派)들이 발달하는데 중대한 요인이 되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회복의 소망이시다

     

       (5) 예수 그리스도는 회복의 소망이시다

       우리 자신의 개발에 도움이 되는 통찰력은 많고 다양하다. 무엇보다 우선, 우리 자신의 보호와 안전을 위해 이 세상의 어떤 나라보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미래를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이 만든 정부는 질서를 유지하고 공의를 보장함으로써 하나님이 규정하신 과업을 이루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능력이나 그 안에서의 현재 삶에 대한 보장이, 영원히 함께하시는 하나님과는 결코 비교될 수 없다.

       둘째, 사회적 유대를 제공함에 있어서 가정과 신앙 모임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절대적인 중요성에 대해 주장할 필요가 있다.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가정과 신앙 모임에서 그들의 공통된 역사를 되새기면서 그들의 신앙과 문화가 살아 있도록 유지했다. 포로에서 돌아온 뒤로는, 자녀들은 부모의 무릎에 앉아서 개인적으로 신앙의 가르침을 받았고 성 인들은 랍비의 발아래에 모여 격식을 갖춘 신앙 훈련을 받았다. 모든 신앙 공동체가 공동적인 신앙을 함께 확인하고 함께 살아갔다. 우리는 이들보다 더 나을 수 있지 않을까?

       셋째, 성장과 개발을 위해 지도력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을 격려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했을 때, 느헤미야는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았다. 백성의 절반은 성벽 쌓는 일을 하는 반면, 다른 절반은 대적들로부터 보호하는 일을 감당했다. 오늘날, 종종 '상식' 이라 불리는 실제적인 지혜가 결핍된 현실에 맞닥뜨리곤 한다. 지혜의 은사가 있고, 또 이것을 책임감 있는 지도력을 통해 발휘하는 사람의 말을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넷째, 예배는 우리 공동체의 삶 한가운데 세워져야 한다. 바사의 고레스 왕이 유대인의 제의(祭儀)와 믿음의 핵심이 되는 성전을 재건하라는 조서를 내려 1차 포로 귀환자들이 옛 고향으로 돌아오는 때로부터 이스라엘의 회복은 시작되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은 옛 성전 자리에 모여서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스 3:3, 6). 백성은 극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예배를 드렸다. 우리도 그와 같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회복기의 문헌들을 통하여 메시아와 관련된 주제들을 특별히 강조해야 한다. 이 주제들은 문헌 가운데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간과하기에는 너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이사야 59:20, 개역개정 성경)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이사야 61:1, 개역개정 성경).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스가랴 9:9, 개역개정 성경).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말라기 3:1, 개역개정 성경). 이 구절들과 유사한 다른 본문들도 '여호와의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지속적인 소망을 돋우어 준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회복의 약속에 대한 열정과 믿음을 생기게 하는 것은, 바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다.

     

    4. 나가면서

       예수님은 이 소망을 바라보는 사고의 틀을 통해 유대교의 율법주의에 도전하셨다. 그분은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와 능력을 전하고, 열방의 빛이 되시며 세상을 구원하실 계획을 품으셨다. 이 증언으로부터 역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들이 궁극적으로 성취된다.

     

    5. 더 읽어보면 좋은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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