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부/10 사무엘 하 주석및해설

사무엘 하 6장, 하나님의 궤를 옮기다 - 구조 매일성경큐티 새벽설교주제 해설

구약장이 2022. 9. 2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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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하 6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안정되고 블레셋 등의 외부의 침입도 없는 상태가 지속될 때,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두 차례에 걸쳐 시도하여 예루살렘으로 궤를 옮기는 데 성공합니다. 사무엘 하 6장의 구조와 매일성경큐티 새벽설교주제 및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6장, 하나님의 궤를 옮기다 - 구조 매일성경큐티 새벽설교주제 해설
하나님의 궤를 옮기다

 

 

사무엘 하 6장의 구조 매일성경큐티 새벽설교 해설

 

 

사무엘 하 6장의 구조

 

1절-11절, 베레스 웃사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려고 합니다. 새 수레에 궤를 싣고 여러 악기로 연주하며 옮깁니다. 하지만 소가 뛰는 바람에 하나님의 궤가 흔들리자 웃사가 궤를 붙들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웃사를 치시고 그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베레스 웃사'라고 부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궤를 자기가 있는 곳으로 모셔 오지 못하고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갑니다.

 

12절-23절, 춤추는 다윗

다윗이 다시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데, 기쁨에 겨워 힘을 다해 춤을 춥니다. 춤을 추는 다윗의 모습을 보고 미갈이 업신여기는데, 왕으로서 체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미갈을 엄히 꾸짖습니다. 주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에, 얼마든지 뛰놀 듯 춤을 출 수 있다고 다윗은 말합니다.

 

 

사무엘 하 6장의 매일성경큐티 새벽설교주제

 

1절-11절, 베레스 웃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하나님의 궤를 다윗이 자기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셔 오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궤를 모셔오기 위하여 다윗은 정성을 다합니다. 하지만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가 뛰는 바람에 웃사가 궤를 손으로 잡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궤를 옮길 때는 제사장이 어깨에 메고 옮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수레에 싣고 온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일은 두려운 일입니다. 단순한 불순종을 넘어서서, 생명과도 직결된 일입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애쓰고 있습니까?

 

12절-23절, 춤추며 기뻐하는 다윗

하나님의 궤가 있던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자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자신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옮기기 위하여 다시 서둘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 온 힘을 다해 춤을 추며 기쁨을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모습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감사하는 춤이었습니다. 그의 춤을 보는 사람들을 어떤 이는 이해하고 어떤 이는 오해하겠지만, 다윗은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가 최선을 다해 춤을 추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궤가 자신의 집으로 왔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생에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여 춤추는 날들이 있길 바랍니다.

 

 

사무엘 하 6장의 해설

 

6절-7절, 그를 그곳에서 치시니

언약궤는 삼상 6:1-7:2의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버려진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모두 대단한 성공을 거둔 다윗은 이제 언약궤를 가져올 절차를 하나하나 밟아갑니다. 그러나 다윗의 성공으로 이스라엘이 누리던 태평성대는, 언약궤를 어떻게든 책임지려 했던 웃사의 죽음으로 일순간 주춤거리고 말았습니다. 사무엘 상 4-6장에서처럼, 여호와의 위엄 있는 거룩함이 드러나서(그것이 아무리 선한 의도일지라도) 여호와를 마음대로 조종해 보려는 시도를 다시 한번 꺾어 놓았습니다.

 

10절-12절,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6절에서 웃사에게 일어난 일과는 정반대로, 오벧에돔과 그의 가족들은 여호와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일을 행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조종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는 그분을 조종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십니다. 현대 독자들로서는 웃사가 저지른 일은 별 것도 아닌 위반 행위일 뿐인데 너무 가혹하게 처벌한 듯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주제넘게 여호와를 조종하려는 어떤 행동도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2절-13절,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이 조종당하지 않으신다고 해도, 그분의 거룩하심은 우리의 겸손을 통해 그리고 이 경우처럼 희생 제사를 통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희생 제사는 언약궤를 옮길 만한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이 이야기는 여호와께 나아가는 것은 무관심이나 관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는 시작될 수 없는 것임을 명시해 주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희생 제사를 첫 번째 여섯 걸음 이후
에만 드렸는지, 아니면 언약궤를 모신 곳까지 가는 동안 여섯 걸음마다 드렸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입니다. 본문은 이 점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희생 제사, 곧 생명을 취하는 고대 관습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옮기게 하는 여건을 조성했다는 것입니다. 다윗과 그의 신하들은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써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리고 난 이후에야 언약궤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17절-19절, 건포도 떡 한 덩이

비극적이고 심각한 장면을 지나 이야기는 이제 감사 예식에 집중합니다. 13절에 나오는 경우에 그랬던 것처럼, 언약궤를 모셔 두기 위해 희생 제사를 드리고, 또 축복하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나중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기독교 예배에서 기념하는 성만
찬 예식에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두려운 임재 속에서, 마음이 깨끗하고 동기가 순수한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고 행복해했습니다. 이러한 기쁨이 바로 다윗이 언약궤를 옮겨 와 곁에 두려고 했던 이유임에 틀림없습니다.

 

20절-23절,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미갈은 다윗이 조심성 없이 흥청거리면서 공개적으로 자기 몸을 드러내는 것을 아주 못마땅해했습니다(14-16절). 3장은 미갈이 자신의 남편인 발디엘에게서 이끌려 올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녀는 다윗이 자기 몸을 드러낸 것에 대해 야단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앞으로도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고 해도 11장에 나오는 자신의 도덕적 타락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갈은 자기주장을 분명하게 합니다. 이 일로 인해 그녀는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사회적 결함을 안고 평생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그녀 스스로 결단하고 다윗과의 부부 생활을 그만두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호의적으로 대하는 사람을 그녀가 반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녀에게 진노하신 것 때문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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