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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신구약성경 주석 내용요약

47 고린도후서 내용요약 설교자료 주석 묵상가이드

by OTFreak 2020.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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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성경 중에서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두 번째 편지는 바울 사도의 영적 전투의 실상을 가장 잘 보여 준다. 바울은 사도이면서 전도자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을 보면 복음화 된 이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고린도후서에는 고린도 교회 공동체에서 아버지 역할을 감당하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바울의 고통이 담겨 있다. 본서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고린도 교인들을 교훈하고 훈계하기 위해 썼다. 고린도 교인들이 화해의 신학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애쓰는 야윈 얼굴의 바울이 눈에 선하다.

목차

    편지를 통하여 의문을 해소하다

     

    고린도후서를 쓴 이유

       본서는 바울과 그가 세운 지역 교회 사이에 한창 긴장감이 흐를 때 기록한 편지다.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는 계속해서 함께 사역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의 장점과 약점 등을 진솔하게 시험받아야 하는 가혹한 시련이었다. 고린도 교인들의 입장이 어땠는지는 바울의 설명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한가지 기억할 것은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쓴 것이 아니라 당시 고린도 교인들에게 썼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린도 교회 안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대략은 짐작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를 통해 우리는 고린도 교인들이 음식, 성, 결혼 그리고 법정 소송에 관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규범을 찾는 일에 애를 쓰면서 좌충우돌하고 있는 것을 본다.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보낸 후에 근친상간에 대한 교훈의 후속 조치를 위해(고전 5:1) 혹은 어떤 중요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고린도 교회를 두 번째로 방문한 것 같다. 그런데 바울의 두 번째 방문은 그의 기대처럼 순조롭지는 않았다. 바울이 언짢은 감정으로 속히 고린도를 떠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다른 복음 전파자의 말을 경청하게 되었고, 바울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했으리라 생각된다.

       본서는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는 것과 그들 가운데에는 부도덕한 자들도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그 갈등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공동체를 위태롭게 했고, 그 중대한 사건은 다른 사건으로도 이어졌다. 아마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두 번째 방문 이후, 거역하는 고린도 교인을 징계하도록 지시하는 편지(오늘날까지 알려지지 않은 편지)를 고린도 교회에 보낸 듯싶다. 바울을 거역하는 자는 고린도전서에 기록된 근친상간 죄를 범한 자였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바울의 두 번째 방문 기간에 바울의 권위에 이의를 제기했던 자일지도 모른다.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 빠뜨린 부분이 있는데, 고린도후서 마지막 4장이 그 부분이 아닐까 추정한다. 무슨 일이었든지 간에, 모든 사람들이 이 일로 인해 매우 괴로워했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다. 대신 디도를 보내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알아보면서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가 잘못된 지도자에게 넘어가지 않을까 무척 염려했다.

       후에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가르침에 순종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거역하는 자를 혹독하게 징계했다. 그리하여 바울이 고린도 교회 지도자들에게 그를 처벌한 후에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이라고 교훈했을 정도다(고린도후서 참조).

       신중하게 회중을 돌보며 목회하는 목회자와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뒤에서 험담하기는 쉽다. 하지만 교회의 규범을 어긴 사람을 징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 한편, 가식적인 회개를 근거로 어떤 사람에게 가했던 징계를 거두고 회복시키는 것 역시 교회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결국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함으로써 징계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의 권위를 다시 인정했다. 바울은 다시 고린도 교인들에게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그 이전 해(아마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두 번째 방문하여 그곳에 머문 시기 중)에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로 한 약속을 지키도록 권면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바울은 미묘한 주제인 금전 문제(구제 헌금)를 제안하기 전에 먼저 본 서신을 통해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한 바울

     

    바울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오해

       그리스도를 따르며 살기로 다짐하는 것은 실제 그런 삶을 사는 것보다는 쉽다. 계단을 오를 때 한번에 한계단씩 올라가듯이,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형상을 조금씩 닮아 가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영적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며, 우리가 이 보배(예수님)를 질그릇(바울 자신 혹은 연약한 우리들 속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다(4:7). 

       본서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울은 개종한 자들로 인해 곤궁에 처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향해 자기중심적이라고 비난한다. 본서를 통해 그들이 왜 바울에게 불평하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바울은 고통 중에도 강함을 자랑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자들로 인해 고난 중에도 위로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발언은 분명 그 말을 듣는 자들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아직 인정받지 못한 종파(기독교)의 신조를 따르기 위하여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며, 고난, 핍박, 모욕 등의 어려움을 겪는 일은 고린도 교인들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대신한 자신의 고난은 그들을 향한 사랑의 표시라고 말했다. 바울의 이러한 외침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는 것으로 생각한 듯 싶다. 바울의 의도와는 달리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또한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일부는 바울이 재정적인 면에서도 잘못 인도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 같다. 바울이 처음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는, 그가 다른 지역 교회에서 모금하여 보낸 성금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로부터는 물질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연보할 것을 요구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면전에서는 동의했으나, 바울이 떠나자 자신들을 잘못된 방법으로 조종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바울이 그들에게 값없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속여 그리스도인이 되겠다는 도장을 찍게 한 후 세금 딱지를 붙였다고 비난했다. 아마도 그들의 열정은 바울이 떠난 후 식어 버린 것 같다.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에게는 바울이 귀찮은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살아서 역사한다

     

    바울이 가르친 핵심 내용

       이러한 상황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본서에는 바울이 자신을 당당하게 변호하는 내용들이 눈에 띈다. 본서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세 장에서는 바울의 분노가 느껴질 정도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그의 평판에 손상을 입혀 다른 지역에서의 복음 전파 사역에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실망을 표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일을 해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화해(reconciliation)의 핵심이라는 바울의 가르침이 본서에서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어려운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신학적 원리를 가르친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린도 교인들의 공동체가 세상에 손색 없는 공동체로 알려지도록 고린도 교인들을 돕는다. 따라서 고린도후서가 단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과의 오해를 풀고, 그의 방문과 본 서신을 쓰는 기간 사이에 발생한 분노를 표출한 편지라고 주장한다면, 본서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본서는 바울과 그의 새로운 개종자들 이 사소한 다툼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높은 차원의 영적인 영역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신학을 담고 있다. 화해는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했을 때 누리는 열매다.

       바울은 자신에게 사랑받는 것을 성가시게 여기는 듯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그래도 그들을 사랑한다고 확언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고린도 교인들이 그 시련을 무사히 이겨 낼 수 있고, 또 그 시련을 통해 주 안에서 강건해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한 갈등 상황이 있었기에 바울은 분노하고 실망하는 와중에도 복음의 핵심인 화해를 더 명확히 표현할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학에 기초한 목회

       신학은 탁상공론하는 학문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직면하는 구체적인 문제들로부터 시작되는 학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대부분 위기에 이르러서야 명백하게 드러나는데, 본서의 경우에는 목회적인 위기가 문제의 핵심이었다. 고린도후서는 전문적 목회 사역이란 영적으로 긴장이 연속되는 사역일 뿐 아니라 영적인 위험도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자신을 의의 병기인 깨끗함, 지식, 오래 참음, 자비함, 성령의 감화, 거짓이 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 등으로 무장하기 위해 고투한다(고후 6:6-7).

       비록 기독교 신학을 확고히 붙잡고 살기는 어렵지만 바울의 목회는 그 신학에 기초했다. 바울은 자신의 약점과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믿음의 거인이다. 또한 뒤로 물러나는 자가 아니라 위기에 직면하여 맞대결할 수 있는 강자다.

       바울은 자신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를 해석하고 있다. 또한 편지를 받는 교회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서신서를 기록했기 때문에 복음 역시 다양한 국면에서 기술했다. 이러한 다양성이 바울 서신을 읽는 독자들을 현재 상황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의 복된 소식인 복음은 우리 안에서 다양하게, 다른 모습으로 역사하신다.

     

    나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 특별히 그의 죽으심과 부활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더 풍성하게 세분화할 수 있는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기술한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의미가 오늘 우리 삶의 여 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분열과 불화의 상황을 화해로 돌이키는 이정표가 된다.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변화될 것이다.

    - 엘렌 T. 체리(Ellen T. Charry)

     

     

    고린도후서 연대기

    • AD 30년 : 그리스도의 승천, 오순절 성령강림, 스데반의 순교
    • AD 32년 : 사울의 다메섹 회심
    • AD 44년 : 요한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
    • AD 47-48년 : 바울의 1차 선교 여행
    • AD 50-52년 :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 AD 53-58년 : 바울의 3차 선교 여행
    • AD 58년 : 바울의 체포
    • AD 61년 : 바울의 로마 투옥
    • AD 64년 : 네로의 박해
    • AD 67년 : 바울의 순교
    • AD 70년 : 예루살렘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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