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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신구약성경 주석 내용요약

49 에베소서 내용 요약 설교 자료 주석 묵상 가이드

by OTFreak 2020.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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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에베소의 신전
에베소의 신전

   20세기 고고학의 발달로 예루살렘의 고대 성전산(Temple Mount)에 관한 몇 가지 신기한 사실들이 밝혀졌다. 그 가운데에는 티로포우이언(Tyropoean) 골짜기로부터 성전까지 수십 미터에 달하는 아무렇게나 설계해 놓은 듯한 남쪽 층계로, 지친 순례자들이 오르내리던 곳이 있다. 그 계단은 건축학적으로 볼 때 계단 높이가 몇 센티미터씩 차이가 나는가 하면 계단의 폭 또한 각각 다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설계사들이 무능했거나 혹은 술에 취해 있었으리라! 그렇지만 고대 랍비들은 달리 생각했다. 그들은 신학적 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고대 성전산의 설계자들은 생각 없이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것이 영적으로 무분별한 행위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성전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 하듯이 주의 깊게 그리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고르지 않은,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가는 계단은 우리가 영성 개발의 관점으로 에베소서나 혹은 성경 전체를 읽는데 하나의 은유가 될 것 이다. 천천히 그리고 주의 깊게 읽으라. 그렇지 않으면 넘어질 것이다!!

 

에베소 성도들

아데미 여신상
아데미 여신상

   에베소서는 대부분의 다른 고대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보내는 자와 받는 자 모두를 밝히 는 관례적인 인사말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이 보내는 자요,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 받는 자들이다(엡 1:1). 이 위대한 고대의 서신을 받는 이들에 관하여 언급한 다음 네 가지 사항은 영성 개발을 위한 도구로서 에베소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려 준다. 그들은 성도들, 에베소에 있는 자, 신실한 자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로 불 렸다.

   첫째, 우리는 성도(saints)로서 에베소서를 읽어야 한다. 신약성경에서 성도들(hagioi 하기오이)이라는 말은 도덕적 혹은 영적으로 특별한 자질을 갖춘 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영적 장소에 있는 이들을 뜻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따로 구별된 자들이다.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 간의 관계는 호칭에서부터 시작된 다.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의의 도구가 되도록 하나님께 선택받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그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는 도구가 되도록 하셨다(창 12:3). 그와 마찬가지로 교회를 창조하시고 세상을 향하여 복이 되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마 5:13-14) 말씀하셨을 때 분명히 이러한 것을 생각하고 계셨을 것이다. 이 서신을 올바로 읽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구속의 목적을, 철저한 순종으로 열심을 갖고 우리 삶에서 실천함과 동시에 그것들을 발견할 줄 아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둘째, 우리가 마치 에베소에 있었던 것처럼 이 서신을 읽어야 한다. 영성 개발의 차원에서 장소도 고려해야 한다. 이 책에서 표면화되는 문제들, 곧 기도의 효력, 그리스도의 유일성, 그리스도인들의 부르심, 성령의 능력과 사역, 사회적 관계의 신학적 기초, 영적 전쟁의 혼돈스러운 성격 등은 특정 지역 안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이 서신의 첫 독자들에게 이 서신은 다원주의 문화 속에서 특별한 진리를 실현하는 길이 되었고, 낡고 억압된 방식에 얽매인 상황에서 창조적인 새 삶을 찾는 길이 되었다. 에베소는 당시 고대 소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잘 알려진 항구, 경제의 번영, 전략적인 군사 요충지, 문화의 혼합 도시로서 로마 시민의 위용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닥친 진짜 문제는 그들이 충성할 대상이 로마와 로마의 황제(Caesar)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이라는데 있었다. 만일 복음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면 그것은 에베소라는 특정 지역과 관련이 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살든지 그 지역에 대한 사명이 있다. 영성 개발은 신학적 현상일 뿐 아니라 지역적으로도 드러나는 현상이다.

 

영적 운동 경기에로의 부르심

   셋째, 우리는 신실한 자의 모습으로 무릎을 꿇은 채 에베소서를 읽어야 한다. 피스티스 (pistis)라는 형용사는 능동적인 의미(신뢰하는, 믿음을 가진)와 수동적인 의미(믿을 만한, 신실한)를 둘 다 갖고 있다. 이 서신을 제대로 읽기만 하면 열정 있는 기도와 실천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에베소서의 독특한 특징 가운데 산문체와 기도체가 복음적인 교훈과 함께 섞여 있다. 기도는 이 서신을 쓰는 펜이며, 서신을 읽는 데 꼭 필요한 렌즈다. 복, 간청 그리고 기도 요청은 영적 삶의 바위투성이 비탈길을 오르는데 사용되는 안전 장비요. 밧줄이다. 한편 이 서신을 열심히 읽으면 실천으로 드러난다. 고대 유대 전통에 하가다(haggadah, 명상)와 할라카(halakah, 진리 안에서 걷기)라는 두 전통이 있는 것처럼 바울의 영성은 쉽게 이론에서 실제로 넘어간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엡 4:1). 에베소서는 영적인 분리를 가져오는 무기력한 부름(요청)이 아니라 영적 운동 경기에 대한 긴박한 부름(요청)이다. 우리가 기도와 열정 없이 에베소서를 읽는다면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할 것이다.

   넷째,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에베소서를 읽어야 한다. 바울의 생애와 신학의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고 그분의 신비로운 부활에 참여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를 떠난 삶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이 바울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 서신을 신실하게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렌즈(Christ lens)를 착용해야 한다. 우리의 운명은 그리스도 안에 보존되어 있으며(1:11),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었다(2:4-5). 우리가 은혜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가능하다(3:12). 사역을 위한 은사들도 그리스도의 승천으로부터 흘러나온다(4:8). 사회적 변혁을 위한 힘은 그리스도를 본받음에서 나온다(5:1). 그리고 우리 주위의 분쟁을 해결하는 병기도 그리스도로부터 받았다. 바로 이것이 존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모든 좋은 것의 너무나 위대한 보고()가 그 안에서 발견되기에 다른 어떤 곳에서도 말고 이 샘에서 마음껏 마시자라고 쓴 이유다. 바울의 말씀을 경청하는 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라는 헌신이 없다면, 우리는 가슴 두근거리는 이 서신을 졸린 눈으로 읽는 데 그치고 말 것이다.

   톨레 레게(Tolle lege)! 취하여 읽으라!

- 티모시 브라운(Timothy Brown)

 

에베소서 연대기

  • AD 30년 : 그리스도의 승천, 오순절 성령강림, 스데반의 순교
  • AD 32년 : 사울의 다메섹 회심
  • AD 44년 : 요한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
  • AD 47-48년 : 바울의 1차 선교 여행
  • AD 50-52년 :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 AD 53~58년 : 바울의 3차 선교 여행
  • AD 58년 : 바울의 체포
  • AD 61년 : 바울의 로마 투옥
  • AD 64년 : 네로의 박해
  • AD 67년 : 바울의 순교
  • AD 70년 : 예루살렘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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