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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세 가지 꿈에 대한 묵상 1

by OTFreak 2020.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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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의 말씀 중에도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요셉의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과연 내가 밤에 자다가 꾸게 되는 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가, 아니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 중의 하나가 무의식 속에서 꿈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혹은 미래에 대한 나의 소망이 꿈으로 투영되는 것일까?

   정확하게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에 대한 해석이나 답을 알고 싶어 하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창세기 37장을 통하여, 요셉이 자다가 꾼 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요셉의 꿈은 밤에 꾼 꿈일까요, 하나님의 뜻이 담긴 꿈일까요?

목동 집안의 요셉이 곡식 단과 해달별 꿈을 꾸다

목차

     

    요셉의 세 가지 꿈에 대한 묵상 1

     

    1. 들어가며

       창세기 37장부터 시작하는 창세기 37장의 주인공은 요셉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이야기에서 계속적으로 흐르는 사건들의 연관점은 "꿈"에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에는 3번의 꿈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각 꿈을 꾼 이후에 극적인 상황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 꿈의 흐름을 따라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을 통해 흐르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2. 세 번의 꿈들

      (1) 요셉의 꿈

          1) 성경의 이야기

          요셉과 관련한 세 번의 꿈들 중에 첫번째 꿈은, 당연히 요셉이 직접 꾼 꿈입니다. 창세기 37:5-11까지의 말씀에 등장하는 첫 번째 꿈 사건은, 요셉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요셉이 꾼 꿈에 대한 성경의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세기 37:7, 개역개정 성경)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창세기 37:9, 개역개정 성경)

          12아들 중 11번째인 요셉의 입장에서는, 이 꿈이 매우 신기하고도 즐거운 꿈이었지도 모릅니다. 비록 아버지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었지만, 형들에게는 여전히 막내 동생과도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 번이나 연속해서 형들에게 절을 받는 꿈을 꾸었으니 얼마나 통쾌하고도 흥분했겠습니까?

          약 17세의 소년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겠지만, 형들의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상황입니다. 평소에도 아버지의 편애 때문에 불만이 있었는데, 이제는 요셉이 자기 입으로 온 가족의 절을 받는다고 하니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래서 형들이 보인 반응은 요셉에 대한 "미움"(사네, שָׂנֵא)이었습니다(5절, 8절).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주로 '적대적이고 혐오적인 사람', '부정한 물건'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형들은 요셉을 적대적이고도 부정한 존재, 자신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겼다는 의미입니다.

    채색옷을 입은 요셉과 곡식단이 절하는 꿈을 꾸는 요셉

     

          2) 특별히 생각할 부분 - 목자에게 곡식 단과 해달별의 꿈이라니?

          단,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요셉이 꾼 꿈이 곡식과 해달별과 관련된 꿈이라는 부분입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대대로 양을 치는 집안입니다. 그런데 양을 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곡식 단"에 대한 꿈과 농사와 관련 깊은 "해달별"의 꿈을 꾸었다는 것은, 흔히 꿀 수 있는 꿈이 아닙니다. 요셉의 경험을 투영하거나 요셉이 갈망하는 부분이 꿈으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요셉과는 상관이 없고 야곱의 집안과도 크게 상관없는 것들이 꿈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요셉의 꿈에 나온 곡식단과 해달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요셉의 경험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들이 꿈에 나왔다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뜻으로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섭리를 통하여, 요셉에게 미리 알려 주신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해 보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됩니다.

     

          3) 생애의 가장 큰 전환점과 그 해석

          하지만 이 꿈을 통하여 요셉의 일생에 가장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 머나먼 타국으로 억지로 팔려 가며, 그 곳에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종의 일과 가보지 않았던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꿈 사건은,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환점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4) 더 읽어볼 글 : 창세기 37장 설교

    2020/08/31 - [나의 설교/새벽예배 설교 - 매일성경] - 창세기 37:1-17, 꿈, 야망 그리고 비전 Dream, Ambition or Vision 매일성경

    2020/09/01 - [나의 설교/새벽예배 설교 - 매일성경] - 창세기 37:18-36,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

    두 관원장에게 꿈을 해석하는 중세풍의 요셉

       (2) 두 관원장의 꿈

          1) 성경의 이야기

          보디발의 집안에서 가정 총무로 성실하게 일하던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계략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사형을 당하거나 즉결처형을 당해도 무방한 사건이지만, 어쩐 일인지 요셉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창세기 39:20, 개역개정 성경)

          이 곳에서 요셉은 왕의 두 관원장을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왕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의 음식과 관련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근동의 사회에서는, 왕을 암살하려는 무리들이 많았고, 가장 빈번하게 일어났던 암살의 방법이 바로 독살이었습니다. 

          왕의 음식에 독을 넣어 왕을 살해하는 일들이 많음으로 인해, 왕궁에서는 왕의 최측근을 왕의 음식과 관련된 직책에 임명하였습니다. 왕의 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요셉과 같은 감옥을 쓰게 된 두 명의 감방 동료들이 아니겠습니까?

          고대의 이집트 사회에서는, 빵을 굽기 위해서는 빵을 맡은 주방장이 머리를 화덕 속에 집어넣어서 빵을 화덕 벽에 붙였다고 합니다. 이때 주방장의 다리를 아들이 붙잡아 주는데, 가끔씩 아들이 아버지의 다리를 놓쳐서 아버지가 불 속으로 빠졌다는 글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로 왕의 신임을 받고 특별한 기술을 가진 관원장들이 하필 요셉의 감옥에 같이 있었고, 그들이 동시에 비슷한 꿈을 꾸게 됩니다.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창 40:5, 개역개정 성경)

          이들의 꿈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그 내용이 다르고 결과도 정반대였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창세기 40:11, 개역개정 성경)

    라고 하였으며, 떡 맡은 관원장은

    맨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창세기 40:17, 개역개정 성경)

    라고 합니다.

     

          2) 특별히 생각할 부분 - 두 관원장의 차이가 뭐길래?

          세 포도가지와 세 광주리는 모두 3일을 뜻하는 것이며, 3일 후에 한 사람은 복직이 될 것이지만 다른 한 사람은 사형을 당할 것임을 요셉이 해석해 줍니다. 요셉의 해석대로, 3일 후에 두 관원장은 모두 '머리를 들게' 되지만, 한 사람은 복직을 위하여 또 다른 한 사람은 죽음을 위하여 머리를 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창세기 40:10-11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창세기 40:10-11, 개역개정 성경)

          술 맡은 관원장의 꿈에서, 포도가지의 세 가지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정상적인 포도열매가 열리는 과정입니다. 정상적인 과정 속에서 술 맡은 관원장이 직접 열매들을 따서 즙을 짜고 그 잔을 바로에게 직접 드립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특별히 문제점이 있을까요? 자연스러운 순서를 따라갑니다. 자연스럽게 자라고 익어가고 즙을 생산합니다. 그의 꿈에는 생명의 성장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술 맡은 관원장은 복권이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떡 맡은 관원장은 어떠합니까?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맨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창세기 40장 16-17, 개역개정 성경)

       떡을 만드는 일련의 생산적인 과정은 없고, 이미 만들어진 떡이 자신의 머리 위의 광주리에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떡 맡은 관원장이 한 일이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떡은 이미 있었으며, 생산이 아닌 소비적인 의미로써 그 떡을 새들이 먹었습니다. 있던 것을 새에게 빼앗기는 이러한 꿈을 통하여, 어떤 생명과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3) 요셉을 잊은 관원장과 그 해석

          실제로 요셉이 해석한 대로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미 해석 후에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자신의 무죄함도 밝혔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잊지 말고 감옥에서 건져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아마도 해석을 들은 직후에는 술 맡은 관원장이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무엇이든 해 주겠다고 흔쾌히 대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가 잊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창세기 40:23, 개역개정 성경)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았든, 요셉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을 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을 통하여 감옥에서 나가고 무죄도 밝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술 맡은 관원장이 기억하여 요셉을 건져 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요셉은 극적으로 고향에 돌아갔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요셉이 고향으로 돌아갔다면, 요셉이 꾼 꿈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버림받고 잊힌 요셉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꿈의 과정 속에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4) 더 읽어볼 글 : 창세기 40장 설교

    2020/09/04 - [나의 공부/창세기 주석] - 창세기 40장 주석, 설교를 위한 자료

    2020/09/04 - [나의 설교/새벽예배 설교 - 매일성경] - 창세기 40:1-23 내 삶의 해석자 - 성서유니온 매일성경

     

       (3) 바로의 꿈

    2020/09/04 - [나의 공부/내 마음대로 공부하기] - 요셉의 세 가지 꿈에 대한 묵상 2

    바로 위의 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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