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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01 창세기 설교

창세기 37:18-36,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

by OTFreak 2020.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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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꿈도 좌절될 때가 있듯이, 요셉의 꿈도 좌절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어쩌면 평생 노예로 살아가거나 죽임을 당할지도 모를 위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걸까요? 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요셉의 위기 상황 속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분의 보이지 않는 손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목차

    보이지 않는 손이 여전히 나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성경 창세기 37:18-36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

     

     

       

    보이지 않는 햇빛

       지금 태풍이 다시 올라오고 있습니다. 긴 장마가 끝이 나는가 했는데, 지난 주에도 태풍이 지나갔고 오늘과 내일도 태풍이 한반도를 통과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늘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어, 한편으로는 시원하지만 습기도 많습니다. 햇빛만 있으면 이러한 습기를 모두 날려 버릴 수 있을 텐데요.

       태풍이 올라옴으로써 하늘에는 온통 구름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구름이 가득하다고 하여, 태양이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닙니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져 보이진 않지만 여전히 태양의 빛은 지구를 비추고, 그 빛으로 인해서 아침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눈에는 햇빛이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햇빛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햇빛은 식물을 비추고, 식물은 그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며 성장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공기도 그러하고 바람도 그러합니다. 세상의 논리로 볼 때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힘이 있어 보이고 안정감을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여야 의지가 되고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세계가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세계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넘어선 영적인 세계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고 세상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인 세계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의 생각과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창조주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3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롬 11:34, 개역개정 성경)

       이 땅에는 하나님을 완전히 깨닫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들 역시 피조물에 불과할 뿐,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안다고 말하는 자는 교만한 자요, 하나님을 인간과 동일시하는 죄를 저지르는 자일뿐입니다.

       이 땅에는 우리의 감각으로 설명하고 느낄 수 있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으로는 느낄 수 없지만 믿음으로 알 수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존재합니다. 마치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햇빛과 같이 말입니다.

     

     

    요셉을 팔다

       본문의 말씀은 답답한 부분이 많습니다. '꿈꾸는 자'로 유명한 요셉이 형들에게 비아냥 거리는 소리로 '꿈꾸는 자'라고 불립니다. 이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꿈인데도 말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창 37:18-19, 개역개정 성경)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서 가두었습니다. 또 미디안 상인들에게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리고 염소의 피를 요셉의 옷에 묻혀 아버지 야곱에게 '요셉이 죽었다'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아버지의 애통해함을 알고서도 말입니다.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창 37:33-34, 개역개정 성경)

       이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됩니다. 물론 르우벤이 요셉의 죽음을 막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중요한 순간에는 자리에 하지 않음으로써 요셉은 애굽의 보디발 장군의 집에까지 팔려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진 요셉이 형들에게 안부를 묻기 위하여 먼 길을 찾아왔는데, 형들은 단지 밉다는 이유로 요셉이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묻지도 않고 팔아 버립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다윗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나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는 것과 같은 장면입니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시 13:1, 개역개정 성경)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팔려가는 그 순간에는 얼굴을 숨기심으로 꿈꾸는 자가 무기력하게 망하는 것을 보시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그리고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직접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10명의 형들이 요셉을 팔아 버렸다'라고 말씀해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있다

     

    보이는 손과 보이지 않는 손

       오늘 본문만을 볼 때에는, 우리의 믿음과 삶이 너무나도 비참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살아갑니다. 믿음 때문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간직하고 살아왔는데도 고난을 겪습니다. 나는 고난으로 고통스러워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가장 위급할 때 숨어 버리신다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비겁한 하나님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는, '보이는 손'과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합니다. '보이는 손'이란, 우리가 쉽게 예측하는 법칙이나 논리를 말합니다. 혹은, 정확하게는 예측하지 못해도 예상할 수 있는 움직임을 말합니다. 반대로 '보이지 않는 손'은 우리 인간의 생각을 넘어선 하나님의 영역에서의 섭리를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보이는 손이 강력해 보입니다. 물론 르우벤은 반대의사를 표현했지만, 10명의 형들의 손은 요셉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여의치 않자 형들의 보이는 손은 요셉을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버리고, 형들의 손이 요셉의 채색 옷에 염소의 피를 묻힙니다. 강력한 손입니다. 요셉의 인생을 파괴해 버린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셉이 미디안 상인에게 팔려 애굽의 보디발 장군의 집에까지 가지 않았다면,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애굽의 위기와 자신의 가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고통의 과정이 없었다면, 결국 요셉에게 주신 꿈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을 이루시기 위해, 형들의 '보이는 손'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지금 당장은 고통스럽고 원망스러워 보이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과정임을 요셉의 팔려간 사건을 통하여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요셉에게만 있습니까? 아닙니다. 나를 향해서도 하나님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한 단계 한 단계 그 위대한 손으로 나를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당장에는 하나님의 손이 보이지 않아 답답할 수 있습니다. 괴로울 수 있습니다. 원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도 하시지만, 보이지 않는 손도 사용하심을 기억합시다. 내가 요셉처럼 계속되는 고통을 겪게 되며, 마치 하나님이 나에게 무관심하신 것처럼 느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은 여전히 나를 인도하고 계심을 신뢰합시다. 그리고 원망이 아닌, 침묵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바라봅시다.

       보이진 않지만 하나님의 손을 믿음으로 느끼며, 오늘 하루도 믿음 가운데 주의 손을 붙들고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나를 이끄십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의 눈에 아무 증거가 보이지 않고 때로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요셉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권능의 손을 나도 기대합니다. 나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권능의 손을 의지하며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믿음으로 걸어가게 하시고, 용기와 소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옵소서.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시며 크신 팔로 나를 보호하시는 주의 팔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어서 함께 묵상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을 날마다 생각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 하나님의 뜻이 한국을 통하여, 특별히 한국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시며, 지금의 국난을 기도로 이겨 나가게 하옵소서.
    • 복음 전하며 사명 감당하는 주의 선교사들을 지키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옵소서. 삶으로 예수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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