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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23 이사야서 설교

이사야 5:1-7, 하나님의 후회와 은혜(찬290장)

by OTFreak 2020.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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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1-7, 하나님의 후회와 은혜(찬290장)






이사야 5:1-7, 하나님의 후회와 은혜(찬290장)



이사야 5:1-7, 개역개정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이사야 5:1-7, 쉬운성경

1 <하나님의 포도밭 이스라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노래를 불러 주겠다. 이는 그의 포도원에 관해 노래한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가 기름진 언덕 위에 포도밭을 가꾸고 있었네.

2 그가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 내어 가장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다네. 그 한가운데에 망대를 세우고, 그 안에 포도주틀도 만들었다네. 그는 거기에 좋은 포도가 열리기를 바랐지만 나쁜 포도가 열렸다네.

3 “자,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아, 유다 사람들아, 나와 내 포도밭 사이에서 판단해 보아라.

4 내가 내 포도밭을 위해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겠느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좋은 포도가 열리기를 바랐지만 어찌하여 나쁜 포도가 열렸을까?

5 이제 내가 내 포도밭을 어떻게 할지 너희에게 일러 주겠다. 울타리와 담을 무너뜨려 짐승들에게 짓밟히도록 하겠다.

6 내가 그 밭을 황무지로 만들겠다. 거기서 더 이상 김매기나 손질도 못하게 하겠다. 그 밭에서는 잡초와 가시가 자랄 것이다. 내가 또 구름에게 명령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겠다.”

7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민족이요, 주께서 아끼고 사랑하는 나무는 유다 백성이다. 주께서 정의를 바라셨으나 압제뿐이었고, 의로운 삶을 바라셨으나 고통의 부르짖음뿐이었다.





하나님의 후회와 은혜



1. 사람의 후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를 도둑 맞고 나서야 빈 외양간의 허물어진 데를 고치면서 수선을 떤다는 속담입니다. 일이 이미 잘못된 뒤에는 손을 써도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교훈해 주는 속담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이 말은, 그러므로 후회해 봐야 이미 늦었다는 뜻입니다. 후회가 무슨 뜻입니까?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치는 것을 말합니다. 아마도 우리의 삶에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할 것입니다. 아이고, 내가 왜 그랬을꼬, 진작에 해 둘껄...

아무리 후회해 봤자, 이미 늦은 일입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떤 일이 제일 후회가 되십니까? 저는 좀더 넓은 시야가 없었음과 결단력이 없었음이 후회가 됩니다. 좀더 젊을 때 이스라엘에 갈껄 하는 후회가 있습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는 20살의 젊은 외국인들을 상대로 공부하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후회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매일 후회합니다. 작은 일에도 큰 일에도 후회하고 아, 이렇게 할껄, 저렇게 할껄 뉘우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개역개정성경)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지혜로움 그 자체이십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후회하지 않으시며 뉘우칠 일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인생은 후회의 연속의 삶을 살지만 하나님은 후회하실 일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라고 말하는 구절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후회 - 창 6:6, 삼상 15:11, 본문

(1)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후회 - 창 6:6, 노아의 홍수와 관련하여

후회하지 않으시는 분, 후회할 일을 하지 않으시는 완전한 분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후회를 하셨다고 합니다. 어느 구절인가 하면 창세기 6:6입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6, 개역개정성경)


쉬운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땅 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습니다(창 6:6, 쉬운성경)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들이 항상 악한 것밖에 없음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6절과 같이 후회하시고 한탄하시고 근심하시고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괜히 사람을 만들었나, 사람이 이렇게 나의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뉘우치고 후회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홍수로 심판하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후회하시는 장면은 또 있습니다.



(2)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후회 - 삼상 15:11,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 달라는 요청을 들으시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인간의 왕을 원하심을 아시고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허락하시고,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처음에 사울은 겸손한 듯 보였지만, 곧 본색을 드러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죽이라고 하셨는데 사울은 좋은 것만 남겨 두고서는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사울의 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다고 말하지만, 속마음은 좋은 것들을 차지하려는 욕심이 그 속에 있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15:11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삼상 15:11, 개역개정성경)


하나님께서 아예 후회하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마음에 맞는 새로운 왕을 찾으셨습니다. 쉬운성경에도 같은 표현으로 번역 되어있습니다.


 “사울이 이제는 나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이 후회된다. 사울은 내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 사무엘은 이 말씀을 듣고 당황하였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시기를 간구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삼상 15:11, 쉬운성경)



(3)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후회 - 사 5:4, 이스라엘이 들포도를 맺음과 관련하여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께서 후회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본문 말씀은 포도원의 노래라고 일컬어지는 이사야의 노래를 담고 있습니다. 이 노래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포도원으로 비유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극상품, 최고 좋은 품질의 포도나무로 비유하십니다.

매우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만드시고 최고 품질의 포도나무들을 심으시고 성실하게 가꾸시고 최선을 다해 돌보셨습니다. 가만히 자라기만해도 최고 품질의 포도를 맺을 수 있는 기름진 땅에서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포도나무가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4절입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사 5:4, 개역개정성경)


하나님께서는 포도원 농부로서 하실 수 있는 모든 것,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런데 최고 품질의 포도나무가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는데, 현실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 어찌 됨인고' 라고 후회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후회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창 6:6이나 삼상 15:11,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후회하시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후회의 내용이 아닙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괜히 택했어. 괜히 돌보았어. 괜히 잠 안자고 물 주고 벌레들을 쫓고 짐승들이 따먹지 못하도록 지켰어. 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3. 하나님의 후회의 의미

(1) 구약 성경의 후회의 원 뜻 - 나함

히브리어로 후회한다 라는 말은 "나함"(נָחַם)이라는 말을 씁니다. 나함이라는 말은, 원래 '나흐'(נח)에서 왔는데, 나흐에서 나온 사람 이름이 '노아'(נוח)입니다. 노아의 이름 뜻이 '안위함' 즉 '위로함'입니다.

후회하다로 번역된 나함 역시 '후회함'의 의미도 있지만, 원 뜻은 '애석해 하다, 유감스럽게 여기다, 가슴아파하다, 안타까워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 뜻으로 창세기 6:6과 사무엘상 15:11, 그리고 본문을 보면 어떻게 됩니까?



(2) 하나님의 후회는 실수했다는 뉘우침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후회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부분을, 하나님께서 '가슴치며 안타까워 하셨다'라고 하면 어떨까요?

창 6:6은 이렇게 될 것입니다.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이들은 하는 일마다 죄로 가득차 있기에 물로 심판해야만 하는 사실에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하셨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삼상 15:11은, 사울이 왕으로 세움 받았으나 교만하여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 하셨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정성을 다해 돌보셨는데, 쓸모 없는 들포도를 맺은 이스라엘을 보시며 결국 포도원을 황폐하게 만드셔야만 하는 일들을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 하셨다 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의 죄악으로 인해, 사울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가슴 치며 안타까워 하십니까?

죄에 대해서는 그 댓가로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기 때문에, 인간이,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이 견디어 낼 수 있을까를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 가슴 치며 안타까워 하십니다. 노아 시대의 인간들에게는 홍수로 8명을 제외한 모든 호흡 있는 인간들이 멸망하였습니다. 사울왕은 하나님께 버림 받고 이후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아들들까지 같은 전쟁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바벨론이라는 나라들에 의해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죄의 삯이 사망임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후회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후회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지혜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후회, 즉 뉘우칠 일이 없으신 분입니다. 우리를 향한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순종하는 자를 형통의 길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완벽한 목자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줍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후회하시는 장면들은, 뉘우침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안타까움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혼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하고, 답답해 하며, 욕심의 죄 속에서 이랬다 저랬다 당황해 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4. 하나님의 후회와 은혜는 연결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후회란, 결국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시는가에 대한 또다른 표현입니다. 갈 바를 몰라 방황하고 제 멋대로 우왕좌왕하는 우리를 보시며 가슴 아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후회하셨다라고 번역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에, 하나님께서는 가슴 치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후회, 즉 우리를 보시며 안타까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자신의 하나 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워 하시는 후회를 하셨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야, 내가 같이 해 줄께, 내가 손 잡아 줄께, 내가 도와 줄께, 너를 안타깝게 여기는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잖아. 이것이 하나님의 후회, 안타까워 하심과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표현입니다.



5세 된 승호라는 어린이가 심장수술을 5시간 받았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하여 중환자 회복실에서 첫날 치료받게 되었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가슴 치며 안타까워하며 바라만 보던 5살 짜리 승호의 엄마는 면회시간을 허가받고 아이 곁에 갔습니다. 

승호는 코와 가슴에 10개도 더 돼 보이는 고무호스를 달고 있었습니다. 어린 것이 엄마를 보자마자 원망 하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엄마, 어디 갔었어. 나 이렇게 아픈데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나 수술받을 때 엄마는 어디 갔었어.” 승호는 엄마를 보자 설움과 반가움이 복받쳐 울음을 터뜨렸고, 엄마도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엄마는 승호에게 입을 열었습니다.

“너 수술받을 때 엄마가 어디 갔겠어. 수술실 유리 밖에서 하루 종일 먹지도 않고 너를 위해 기도했단다. 네 고통과 함께 했단다. 엄마 생명을 데려가고 우리 승호 살려달라고 기도했단다. 기도하며 너랑 함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는 사랑한 자가 더 아파 하기 마련입니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가 더 아픈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도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보시며 가슴 치며 안타까워 하셨고, 예수님은 바로 아픈 자녀를 둔 어머니의 심정으로 지금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죄와 세상의 즐거움과 만족에 빠져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우리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보고 계시며 함께 하고 계십니다. 시작되는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의 마음을 가슴 치며 안타까워하시며 슬프게 만들지 맙시다. 죄를 멀리하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살아갑시다. 우리를 지금도 바라보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 속에서 한 주간도 주와 동행하며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사야 5:1-7, 하나님의 후회와 은혜(찬29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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