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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오바댜 Obadiah

오바댜 1장 2절

by OTFreak 2014.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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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오바댜서 1장 2절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앞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에돔은 남유다와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책망을 듣게 됩니다.


  1절에서도 여호와께로부터 전쟁의 부름을 민족들이 받는 것과 같이, 2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직접 일들을 행하시겠다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먼저 히브리어 원문을 보겠습니다. 

 

     הִנֵּה קָטֹן נְתַתִּיךָ בַּגּוֹיִם בָּזוּי אַתָּה מְאֹד׃[각주:1] 

 

  개인적으로 번역을 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라! 내가 너를 민족들 가운데 작게 내어 주었다. 너는 매우 경멸함을 받게 되었다. 

 

  다른 번역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라 내가 너를 나라들 가운데에 매우 작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개역개정 한글) 

    나는 여러 민족 가운데서 너를 가장 보잘것없이 만들겠다. 모든 사람이 너를 경멸할 것이다(새번역 한글). 

    Behold, I make thee small among the nations; thou art greatly despised(JPS) 

    The LORD said to Edom: I will make you the weakest and most despised nation(CEV) 

 

  본문에서 말하는 내용들 중에, 에돔을 작게 만들고 경멸함을 당하게 만드는 주체는 ''입니다. 이 '나'라는 존재는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우리는 쉽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에돔을 심판하시겠다는 매우 지엄하고도 두려운 말씀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이제 에돔은 죽었다!'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첫 단어가 '보라'(הנה)입니다. 이 단어는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내용의 전환을 시도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각주:2] 하지만 여기서는 선포자의 확신을 더해주는 단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보면 어떨까요? 

 

    다들 잘 봐라!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에돔을 ... 

 

  거듭 말하지만, 에돔은 이제 죽었습니다. 살아날 방법이, 피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에돔을 어떻게 하려고 하시는가요?


  바로 '작게'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많은 민족들 가운데에서 에돔을 '작게' 만드시겠다고 선포하시며, 에돔이 작게 되어 매우 경멸을 받게 될 것이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에돔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러한 심판을 받게 될까요? 에돔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는 3절부터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들은 다음에 살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의 교만에 대해 말씀하시는 내용이 예레미야 13장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15절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성경 전반에 흘러 내리는 주제가 그러하지만,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멸망을 재촉하는 최고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교만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말씀하시지만 변화가 없었습니다.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도 남유다나 예루살렘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봅니다. 에돔이나 남유다보다도 겸손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들보다도 훨씬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예상은 했지만, 충격적입니다.

  겸손해야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과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이 안타깝고도 슬픈 현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에 높이실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마는, 잘 안됩니다. 따라서 이 방법을 오늘은 써 봐야겠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 

 

  이 방법만이 그나마 겸손을 조금이라도 더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런지요? 하지만 이 방법이라도 잘 실천해 나갈 수 있을지조차 의문입니다.

 

  오늘도 보켈 토브(בוקר טוב)입니다! 


  1.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 With Westminster Hebrew Morphology. 1996, c1925; morphology c1991 (오바댜 2). Stuttgart; Glenside PA: German Bible Society; Westminster Seminary. [본문으로]
  2. Raabe, P. R. (2008). Obadiah: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119).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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