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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46 고린도전서 설교

고린도전서 15:9-10, 오직 하나님의 은혜

by OTFreak 202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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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9-10, 오직 하나님의 은혜

 

고린도전서 15:9-10, 개역개정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9-10, 우리말

9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작은 사람이요, 사도라 불릴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오늘날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내게 주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 내가 어느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1.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사도였습니다. 

  흔히 우리는 '사도 바울'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에서 '사도'라는 직분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함께 생활하고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의 사도는 11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스스로 생명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15부터 사도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남은 예수님의 11명의 제자들까지 포함한 120여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유다는 성경대로 이루어져 우리에게서 떠났고, 이제 그의 직분을 대신할 사람을 세워야겠소"(행 1:16-20)

  이 때, 사도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 1:22, 개역개정)

  이 말을 한 이후에, 120여명의 성도들은 기도하고 나머지 1명의 사도를 세웁니다. 기도 후 제비를 뽑았을 때 맛디아가 뽑혔고,  사도행전 1:26에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행 1:26, 개역개정)

  사도는 12명이요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그 옆에서 예수님과 함께했던 자들이며, 주의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바로 사도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나 요한 사도는 전혀 "사도"라고 불리는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사도라고 부르기에 결격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눈물로 세운 고린도 교회뿐 아니라, 여러 교회들에서 바울이 사도인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2. 왜냐하면, 바울에게는 사도로서의 자격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따라 다닌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12명의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생활한 적도 없었으며, 예수님의 부활 현장을 목격한 사람도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도 바울은 사도의 요건에 맞지 않는 사람임이 분명하였습니다.

  게다가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던 사람이요 신실한 스데반 집사의 죽음을 뒤에서 지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과 7장에는 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도행전 7:58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행 7:58, 개역개정)

  여기에 등장하는 '사울'이 누구입니까? 바로 '바울'의 옛 이름입니다. 그는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부추키며 뒤에서 옷을 맡아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오려고 공문을 받아 다메섹에 가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고 하였습니다. 이 때 기록이 아주 섬뜩합니다. 사도행전 9:1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행 9:1, 개역개정)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답니다. '위협'이란 '복수하려는 사람이 대상자에게 가하는 협박'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피해를 본 내용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복수하려는 사람처럼 눈에 불을 키고 그리스도인들을 협박하려고 하였습니다. 또 '살기'는 '반드시 죽이고자 하는 열망'을 의미합니다. 항상 칼을 품에 품고 다니는 사람처럼, 이전의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다 잡아 죽이겠다는 무서운 마음을 품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유대인의 율법에 대한 지나친 열정으로 인한 것 같습니다. 잘못된 열정으로 인해,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고 작정을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도 오늘 본문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언급합니다. 본문 15:9입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전 15:9, 개역개정)

  바울 스스로도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여러 교회들에서는 바울이 사도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만합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바울이 사도인지에 대해 의심할 만 합니다.

 

3.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 받았습니다.

  바울은 세상의 관점으로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을 만한 자격이 하나도 없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사도로 부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본문의 10절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개역개정)

  바울은 말합니다. 자격이 없는 내가 하나님의 사도가 된 것은, 내 뜻이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호의' '선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대가를 바라지도 않으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대가로 무엇인가를 드릴 수도 없는 것이 은혜입니다.

  교회를 박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려고 하였던 바울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찾아 오신 사실입니다. 주께서 먼저 바울을 만나 주신 사실이 큰 은혜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는 자들을 죽이려고 하였고, 이 땅에서 예수의 이름을 지우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를 만나 주셨고 그의 삶을 바꿔 주셨습니다.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가는데, 하늘에서 빛과 함께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 옵니다. 바로 여기에서 주님은 박해하는 바울에게 저주와 심판을 내리시지 않고, 만나주시며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괴롭히는 원수에게 복수를 할 것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바울이 가졌던 마음, 위협과 살기로 괴롭히는 원수를 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원수된 바울을 만나 주시고 그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며 사도로 불러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바울을 만나 주셨기에 바울도 "사도 바울"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는 바울의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께서 먼저 만나 주신 은혜요 오직 하나님께서 예정하셔서 베푸신 은혜 때문입니다.

 

4.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곳에 모인 우리 중에, 저와 여러분들도 바울이 받은 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 믿게 된 것은 내가 착해서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나는 마음 속 깊은 곳부터, 요즘 하는 말로는 "뼛속부터" 악한 사람일 뿐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항상 악하고 이기적이며 욕심만을 부리는 존재입니다. 죄로 가득찬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찾아 와서 빼내어 주지 않으면 한없이 죄악 속에서 평생 살아갈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받았던 그 은혜를 똑같이 받았습니다. 자기 열정에 사로잡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도 바울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만나 주셨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찾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속에 빠져 죄에 빠져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나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만나 주셨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찾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 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 받을 수 있나요

  네,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벌레만도 못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한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만나 주시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 보셨습니까? 매일 아침, 죽을 죄인을 살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십니까? 간밤에 무사히 잠을 자고 새 아침을 맞이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셨습니까?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지키시고 보호하신 신실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셨습니까?

  세계적인 신학자이자 설교가이며 메튜 헨리 주석을 쓴 사람인 '메튜 헨리'가 어느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강도를 만났습니다. 얼마나 강도에게 얻어 맞았는지 온 몸이 피범벅이 되고 얼굴과 손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그는 가장 먼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강도를 당하여 가진 것을 빼앗겼기에, 강도가 필요한 것을 부족한 내가 채울 수 있게 한 것에 감사합니다. 비록 많이 맞고 돈을 빼앗겼지만,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은혜를 베푸셨으니 감사합니다. 나를 괴롭힌 그 강도를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이제 그가 다시는 강도로 살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얻어 맞아도 강도를 당해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할 수 있습니까? 직장에서 이웃에게서 이유 없이 비난을 받거나 억울한 일을 겪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있음을 믿고 무릎 꿇고 은혜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인하여 아파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 예배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의 호흡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단 한순간도 온전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시작되는 한 주간에도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며 어떤 상황 속에 처하든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 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들을 통하여 인도하시고 형통케 되는 은혜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니, 감사보다도 불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여, 우리의 약한 믿음을 지켜 주옵소서. 우리 입술에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이 끊이지 않게 하시고, 모든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시작되는 한 주간에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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