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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내 마음대로 공부하기

진실로, 마지막 한 푼까지 네가 지불하기 전까지는 결코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복음 5:21-26)

by OTFreak 2020.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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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마지막 한 푼까지 네가 지불하기 전까지는 결코 나오지 못할 것이다.


블롬버그의 "마태복음" 주석을 의역하여 정리하고 성경 구절을 삽입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21-26, 개역개정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5:21-22

예수께서는 "옛 사람에게 말한 바"라고 말씀하시면서 "고대 시대"에 쓰였거나 "오래 전 사람들"이 사용했을 법한 표현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어쨌든, 그분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셨던 열 계명 중에 제6계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출 20:13).


살인하지 말라(출 20:13, 개역개정)


"살인"은 정당방위로 인한 살인,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살인, 위법으로 인한 적절한 법 집행에 의한 사형, 또는 우발적인 살인은 포함하지 않는 히브리어(라짜흐, רָצַח, 때로는 "살인"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에서 유래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조건으로서' 라는 말은 '가능한'으로 또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비난을 받는 한 사람을 언급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재판의 위험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적절한 배상을 한다면 재판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모세와 같이, 예수께서도 살인을 비난하시는 것은 분명하지만, 마음에 분노를 품는 것 또한 죄악이며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것이 나쁘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강력한 사본 전통(D, L, W, f1, f13 등)에는 "형제"라는 단어에 이어서 "이유 없이"라는 문구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이 문구는 후기 버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해석을 제공해 줍니다. 죄에 대한 의로운 분노(성전에서 돈 바꾸는 것에 대한 예수의 행동과 같은, 마 21:12)에 대한 예가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적절한 분노를 하셨습니다(예를 들어, 18:34, 22:7 등). 하지만 인간의 분노는 복잡한 동기들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고 일부는 자기 복수일 수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 사실이다.  생물학적인 형제를 언급하지 않을 경우에 마태복음에 나타난 "형제"는 일반적으로 종교적 공동체의 동료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는 예수의 제자들을 말합니다(예를 들어, 5:44, 7:3-5, 12:49-50, 18:15, 21, 35, 23:8, 25:40, 28:10).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동료나 성도가 아닌 사람들, 즉 불신자들에게는 분노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은 가장 부적절한 사람들에 대하여 먼저 분노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분노에서 용서 받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 특별히 나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동료들에 대한 분노를 억제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우 필수적인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마 21:12, 개역개정)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마 18:34, 개역개정)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마 22:7, 개역개정)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개역개정)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3-5, 개역개정)


진실로, 마지막 한 푼까지 네가 지불하기 전까지는 결코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복음 5:21-26)힌놈의 아들 골짜기, 게헨나



예수님은 추가적이고 평행한 방법들을 통하여 살인 뿐 아니라 분노까지도 죄악이 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첫째, 그분은 믿음의 동료들을 향하여 "라카"(아람어로 유사맹세, a quasi-swear)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표현은 아마도 '머리가 비었다'(empty-headed)라는 뜻을 가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향하여 "바보"라고 부르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Moros, μωρός)는 어리석음 뿐만 아니라 부도덕함과 과장된 경건함의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분노에 대한 명령과 같이, 모욕적인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금지 역시 의심할 여지 없이 부당한 일이라는 암묵적인 허락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적절한 상황에서는 예수께서도 스스로 23:17, 19(직접적으로) 그리고 7:26(간접적으로) '모로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재판"에서 시작하여 "산헤드린"(유대인들의 최고 법정)을 언급하시며 점점 발전시켜 나가시면서, 구약 성경 시대에는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전통적으로 그 이후 시대에는 계속해서 쓰레기들을 불태우던 장소였던 예루살렘 남쪽의 계속인 게헨나(지옥의 불)로까지 연결해 나가셨습니다. 그러나 각 설명들의 첫 번째 절들 사이의 밀접한 평행성들을 고려해 볼 때, 전체 문장은 아마도 대체로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들로 받아 들이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세 가지(재판, 산헤드린 그리고 게헨나) 모두 은유적으로는 영원한 심판의 위험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마 23:17, 개역개정)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마 23:19, 개역개정)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마 7:26, 개역개정)


5:23-24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청중들은 다급하게 죄를 단호한 자세로 다루어 말씀하신 심판에서부터 벗어나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두 개의 극적인 이야기들을 통하여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말씀하십니다. 첫째, 예수님은 예물을 드리는 제사(예배)보다는 형제와의 화해를 더 우선적으로 여기는 예배자를 그림 그리듯 표현하십니다. 물론 상처 입은 그 형제가 우리와 화해하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어도, 우리는 모든 노력을 하여 화해하려고 애써야 합니다(롬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개역개정). '단지 요청할 것이 당신에게 있다'라는 말을 하고 그들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형제에 대한 불만을 제기해서는 안되며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인 것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를 해야만 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명령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일시적으로 비워지거나 비워져야만 할까요? 그렇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올바른 예배를 드리기를 여전히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희생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데서 시작되지만, 진짜 제자의 도는 믿는 성도들과 반드시 화해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다른 사람이 없는 사람은 죽어가는 영혼을 결코 구할 수 없습니다(요한일서 1:8-9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개역개정)(요한일서 2: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개역개정).


5:25-26

화해의 중요성에 대한 예수님의 두 번째 설명은, 소송한 동료들이 법정 바깥에서 해결해 나가야만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시작됩니다. 이 부분은 법적 진행 과정 중에 있어서 매우 좋은 조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1-22절을 비추어 볼 때, 이 구절들은 분명히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영적 목표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말씀하신 비유는, 25-26절의 구체성이 반드시 비유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적과 재판관에 대한 영적인 대응은 나타나지 않으며, 만일 누군가가 지옥에서 나가기 위하여 충분히 값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는 것 같은 구절이지만 26절은 연옥이라는 로마 카톨릭의 전통적 교리를 지지하는 용도로 쓰일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 페니"는 '고드란트'를 말하는데, 이것은 일일의 최저 임금(1 데나리온)의 64분의 1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1세기 통화에서 두 번째로 작은 로마 동전이었습니다.




Blomberg, C. (1992). Matthew (Vol. 22, pp. 106–108).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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