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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17 에스더서 설교

에스더 10:2-3, 모르드개 - 심지가 굳은 사람 - 주일오후찬양예배

by OTFreak 2020.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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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10:2-3, 개역개정

2 왕의 능력 있는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 10:2-3, 쉬운성경

2 아하수에로 왕이 큰 권세와 능력으로 이룬 모든 업적과, 그가 모르드개를 높여 영화롭게 한 일은 메대와 페르시아의 왕들의 역사책에 적혀 있습니다.

3 유다인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다인 가운데서 가장 세력이 컸는데, 자기 민족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 일했기 때문에 모든 유다인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모르드개 - 심지가 굳은 사람


에스더 10:2-3, 모르드개 - 심지가 굳은 사람 - 주일오후찬양예배머리만 모래 속에 파묻는 타조



1. 타조 사냥하기 - 심지가 굳어야 한다

타조는 날지 못하는 새이지만 덩치가 엄청 크고 달리기를 매우 잘 합니다. 게다가 힘도 쎄기 때문에 타조가 달려와서 박치기하면, 사람은 저만치 나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빠르고 힘도 쎈 타조를 어떻게 사로 잡을 수 있을까요? 총으로 쏘면 죽으니까, 산 채로 잡기 위해서는 타조 사낭꾼들이 타조의 성격을 사용하여 잡는다고 합니다.

먼저 타조 사냥꾼들이 말을 타고 타조를 쫓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타조가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사냥꾼들이 조금 속도를 줄입니다. 타조도 조금 속도를 줄입니다. 사냥꾼이 갑자기 쫓아 가는 속도를 올리면, 타조도 놀라서 또다시 죽을 힘을 다해 뜁니다. 몇 번 이렇게 반복하면, 타조가 힘이 다 빠지고 도망갈 힘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타조는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때 사냥꾼은 천천히 가서 모래에 머리를 파묻고 꼼짝 하지 않는 타조를 잡기만 하면 됩니다. 눈 가리고 아웅으로,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고 사냥꾼을 보지만 않으면 위험이 없는 것으로 생각해 버리는 타조의 습성을 이용한 사냥 방식입니다.

한 편으로는, 자기 눈에 보이지 않으면 위험도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만 넘기면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무슨 일이든, 그 순간만 넘기자 라고 생각하면 결국 대충 일을 처리하거나 꼼수를 쓰게 됩니다. 처음부터 기초부터 튼튼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물은 기초가 튼튼해야 하기에 높은 건물일수록 땅 아래의 터파기도 깊게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높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가 굳은 사람이 큰 일을 하며, 특히 성경에서는 심지가 굳은 사람이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고 교회에서도 인정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바울이 그러했고 우리 예수님께서 그러하셨습니다.

한 번 믿음을 가진 후에는 결코 변하지 않고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 나간 분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가 굳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일을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시간이 아무리 걸리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엄청난 노력을 하면서 스스로 이뤄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티 안내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마치 오늘 본문의 모르드개와 같이 말입니다.


에스더 10:2-3, 모르드개 - 심지가 굳은 사람 - 주일오후찬양예배에스더와 모르드개



2. 모르드개 - 바사와 유대인들에게 존경 받다

오늘 본문이 포함되어 있는 에스더서는, 성경에서 조금 독특한 책입니다. 에스더서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나,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유대 민족들을 구원하시거나 에스더와 모르드개 같은 등장 인물들에게 역사하신 내용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가 전체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을 뿐,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더서는 포로로 잡혀 갔었던 유대인들까지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전의 능력을 잘 알려 주는 성경입니다.

에스더 하면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말로 유명합니다. 아마도 에스더는 몰라도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말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에스더는 페르시아, 즉 바사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의 아내가 되어 유대인들을 적인 하만이라는 신하의 손에서 구원해 낸 왕비였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딸처럼 키운 에스더의 삼촌이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실질적인 양육자이자 신앙을 가르친 사람이었고 에스더가 왕비가 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한 인물이자 이후에는 바사 제국의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었습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총리로는 요셉과 다니엘 정도만 알지, 모르드개도 총리였다는 사실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으로서 총리에 오른 총리 3인방 하면, 요셉, 다니엘 그리고 모르드개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당시의 엄청나게 큰 제국이었던 바사 제국의 총리이자,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까지 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2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로 치면 조선왕조오백년에 외국인이면서도 이름이 올랐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처럼 대단한 인물이었던 모르드개는, 바사 제국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동족인 유대인들에게도 크게 존경 받고 사랑 받고 평안을 주는 존재였다고 본문의 3절은 기록합니다.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더 10:3, 개역개정)


남들에게는 존경 받을 수 있지만, 자기 가족들에게까지 존경 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르드개는 자신과는 다른 민족인 바사 사람들과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 모두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인물로 성경은 표현합니다.

이처럼 위대한 인물로 모르드개가 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3. 심지가 굳은 사람 - 아무리 힘들어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

모르드개는 아무리 힘들어도 또 남이 알아 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심지가 굳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사 왕 아하수에로의 왕비였던 와스디가 폐위되고 새로 에스더가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누구나가 새 왕비를 아버지와 같이 키운 모르드개가 높은 자리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더 2:21-23에는, 여전히 모르드개는 원래 자기가 하는 일이었던 대궐 문의 문지기 일을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더 2:21-23, 개역개정)


원래 모르드개의 직업은 문지기였습니다. 딸과 같았던 에스더가 왕비가 되었으면, 영의정, 좌의정은 아니더라도 병조판서 정도는 할 수 있을텐데, 모르드개는 여전히 문지기였습니다. 에스더에게 좋은 자리 하나 달라고 말하지도 않았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문을 지키던 내시 빅단과 데레스의 반란 음모를 알게 되고 그 사실을 에스더에게 알립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이 사실을 알리고 결국 반역을 저지르려던 두 내시는 처벌을 받습니다.

왕비를 키운 사람이요 왕의 목숨을 구한 사람. 이 정도면 최소한 표창장 하나는 줘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에스더 3장 1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더 3:1, 개역개정)


모르드개가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이 뜬금없이 하만이라는 사람들 총리로 임명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르드개에 대한 어떤 감사의 인사도, 칭찬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상황이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에 대해 불평하지 않겠습니까?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내가 자기를 위해 해 준 것이 얼만데, 목숨을 구해 주었건만 표창장 하나도 안 주다니, 내가 다시는 도와 주나 봐라' 하지 않겠습니까?

에스더에게도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에스더, 니가 좀 알아 봐라. 왕이 왜 저러시는지. 나한테 문지기를 벗어날 한 자리는 주셔야 하는거 아니냐, 너는 왕비이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느냐' 쫓아 다니며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심지가 굳은 모르드개는, 묵묵히 자기 일만 합니다. 여전히 문 앞에 서 있으며 문을 지킬 따름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모르드개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유대 민족을 하만의 손에서 건지셨습니다. 심지가 굳어, 초조해 하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고 알아 주지 않아도 분노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높이셔서 바사의 총리가 되게 하시고 민족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갚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하는 심지가 굳은 사람에게 반드시 은혜와 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 섭섭한 일이 왜 없겠습니까? 고생은 내가 다 하는 것 같은데 알아 주지도 않는 것 같을 때 얼마나 초조하고 답답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수고하고 고생한 모든 것에 대하여, 모르드개에게 갚으셨던 것처럼 은혜와 복으로 갚으십니다. 우리는 심지를 굳게하여 하나님께서 갚으실 때까지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시니 조금만 더 인내하며 성실하게 살아갑시다.



4. 심지가 굳은 사람 -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사람

착한 일은 모르드개가 다 하고, 하만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총리가 된 상황 속에서, 모르드개는 문지기로서의 역할을 아무 말 없이 충실히 감당합니다.

그러나 모르드개가 지키는 대궐 문으로 하만이 드나들 때, 모두가 꿇어 절하여도 모르드개는 꿇지도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꿇어 절하는 것은 "왕의 명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왕과 하만에 대한 섭섭한 마음 때문에 반항하는 것일까요? 더 3: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더 3:2, 개역개정)


'꿇어 절한다'는 말은 코가 땅에 닿도록 납작 엎드리는 자세입니다. 우상에게, 신에게 절하는 자세입니다.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이들에게 인사를 하거나 절을 하는 것은 존경의 뜻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만은 꿇어 절하도록 함으로써 마지 하만 자신이 신인것처럼 행동을 하였던 것입니다. 즉 하만을 신과 같이 숭배하고, 하만을 총리로 세운 왕을 신으로 숭배하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르드개의 행동은, '꿇지도 절하지도 않았다' 입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은 결코 신(神)이 아니며 하나님 외에는 어떤 존재에게도 꿇어 절하지 않겠다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왕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며, 문지기 주제에 바사 제국의 총리를 모욕하였으니 당장 불호령이 떨어지고 생명의 위협을 받을 것이 불보듯 뻔하였지만, 모르드개는 눈도 깜짝하지 않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불안해 하던 주변의 신하들이 보다못해 모르드개에게 날마다 권하였다라고 에스더 3:3-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말 믿음에 있어서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심지가 굳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바벨론의 총리였던 다니엘은 어떻습니까?

그 역시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 대적들이 30일 동안 다른 어떤 신에게도 기도하지 말고 오직 왕께만 기도하도록 하는 법령을 선포하였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대적들의 계략임을 다 알고서도, 그는 매일 하던대로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사자굴 속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은 다니엘을 보호하셨고 대적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목숨의 위협 앞에서도 믿음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다니엘 역시 심지가 굳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일본 제국 주의가 우리 나라를 강제 점령했을 때, 건축을 하던 한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장로님은 총독부의 건축 담당자를 찾아가 총독부 주관의 큰 공사에 참여 하려고 면담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건축 담당자가 장로님께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당신이 기독교인임을 내가 알고 있는데, 만일 예수를 버리고 일본 천황을 신으로 인정하고 절하면 내가 공사를 당신에게 맡기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 장로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굶어 죽을지언정 내가 섬기는 예수님을 배신할 수는 없소'

라고 외치며 그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며칠이 안되어 총독부의 건축 담당자가 다시 장로님을 부르더니

'당신이 당신의 섬기는 신을 배반하고 공사를 하겠다고 했다면, 나는 당신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오. 자기 신을 배반하는 자를 어떻게 믿는단 말이오. 전에 했던 말은 당신의 신앙을 확인해 본 것 뿐이니, 당신이 이 공사를 맡아 주시오'

라고 했다고 합니다.


믿음을 지킬 때, 당장은 손해가 있어 보입니다. 당장은 위기를 겪을 수도 있고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심지를 굳게 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믿음으로 끝장을 볼 때, 마침내 역전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신비입니다. 믿음은 뻔히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굳은 심지를 가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개역개정)


믿음은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소망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힘입니다. 세상 속에서 유혹이 있을 수도, 믿음과 타협을 하여 이익을 거둘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심지가 굳은 성도는 어떤 유혹이 와도 믿음을 놓고서 타협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한 번 시작했다면, 믿음으로 끝장을 보는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처럼 믿음으로 끝장을 보는 심지가 굳은 사람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에스더 10:2-3, 모르드개 - 심지가 굳은 사람 - 주일오후찬양예배모르드개의 승리



5. 심지가 굳은 사람 - 모르드개

모르드개가 바사 제국의 열왕기에 이름을 올린 것도, 바사의 총리가 된 것도, 동족 유대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가 심지가 굳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심지가 굳은 사람은, 남이 알아 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사람이며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끝을 보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한 주간의 삶 속에서, 가정이나 직장, 교회나 이웃들에게 심지가 굳은 사람, 묵묵히 성실한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의 복, 모르드개가 누린 복을 받아 누리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간 우리 함께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에스더 10:2-3, 모르드개 - 심지가 굳은 사람 - 주일오후찬양예배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우리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심지가 굳은 사람으로, 주께서 맡기신 사명 잘 감당하여 주님의 기쁨되겠습니다 라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도 모르드개처럼 하나님께 인정 받고 가족과 성도들과 직장 동료들과 이웃들에게 인정 받는 심지가 굳은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변함 없는 성실함으로 맡겨 주신 일을 묵묵히 감당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를 사용하옵소서. 우리를 통하여 영광 받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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