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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18 욥기 설교

욥기 10:1-22, 사랑으로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찬308장) - 수요기도회

by OTFreak 2020.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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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0:1-22, 개역개정

1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2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3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4 주께도 육신의 눈이 있나이까 주께서 사람처럼 보시나이까

5 주의 날이 어찌 사람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해와 같기로

6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들추어내시나이까

7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8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9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10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1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1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13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14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5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

16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17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

18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19 있어도 없던 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겨졌으리이다

20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21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22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



욥기 10:1-22, 우리말

1 “인생 살기가 정말 지긋지긋하구나. 그러니 내 원통함을 터뜨리고 쓰라린 내 마음을 토로할 것이다.

2 내가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나를 정죄하지 마시고 주께서 무슨 이유로 내게 이러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3 주께서 손으로 지으신 나는 억압하고 멸시하시며 도리어 악인이 꾀하는 일은 좋게 보시는 것이 선한 일입니까?

4 주께 있는 것이 육신의 눈입니까? 사람이 보듯이 보십니까?

5 주의 날이 사람의 날과 같습니까? 주의 해가 사람의 해와 같습니까?

6 내 잘못을 찾고 내 죄를 탐색하시다니요!

7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것을 아시고 나를 주의 손에서 빼낼 자가 없음도 아십니다.

8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나를 두루 다듬어 주셨는데 이제 와서 나를 멸망시키시려 하십니까?

9 주께서 나를 진흙같이 빚으셨다는 것을 잊지 마소서. 나를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시렵니까?

10 주께서 나를 우유같이 쏟아 붓고 치즈같이 굳히지 않으셨습니까?

11 내게 가죽과 살로 옷 입히시고 뼈와 힘줄로 짜서 나를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12 주께서 내게 생명을 주시고 은총을 베푸셨고 나를 돌보시고 내 영혼을 지키셨습니다.

13 주께서 이런 것들을 주의 마음에 숨겨 두셨지요. 주께서 이를 염두에 두고 계심을 내가 압니다.

14 내가 죄를 지으면 주께서 지켜보시고 내 죄악에서 나를 면해 주지 않으십니다.

15 내가 악하다면 내게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의인이어도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수치와 고난을 지긋지긋하게 겪고 있습니다.

16 내가 머리라도 들면 주께서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다시 내게 권능을 보이십니다.

17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증인들을 새로 세우시고 주의 진노가 내게 더해 가고 있으니 군대가 번갈아 나를 칩니다.

18 어째서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끌어내셨습니까? 아무 눈에도 띄지 않게 죽어 버렸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19 내가 차라리 없었어야 했는데! 차라리 모태에서 무덤으로 바로 갔어야 했는데!

20 이제 내 인생도 얼마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끝내 주십시오. 나를 내버려 두어 잠시나마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21 내가 돌아오지 못하는 곳, 어두침침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가기 전

22 어둠 그 자체의 땅, 죽음의 그림자와 혼돈의 땅, 빛조차 어둠 같은 그런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 해 주십시오.”


욥기 10:1-22, 사랑으로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찬308장) - 수요기도회불평하는 욥(Leon Bonnat)



사랑으로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


예전에 사춘기 시절에,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여러 친구들이 모여서 노래를 불러 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가 아니라 "왜 태어났니"로 가사를 바꿔서 불렀었는데, 친구가 갑자기 화를 벌컥 내는 것입니다.

친구끼리 장난으로 부른 노래인데, 그 친구는 그 가사가 매우 마음에 상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누나와 자신은 지금 어머니의 자녀이지만 지금 함께 사는 아버지는 새아버지였기 때문에 사춘기 감성에 그 노래가 매우 상처가 되었던가 봅니다.

한참 동안 그 친구의 눈치를 봤었는데, 우리는 그처럼 일상 속에서도 쉽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혹은 평소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그 한 마디가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쉽게 상처 받고 쉽게 상처 주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범죄자들도 처음부터 악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받았던 상처를 치료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분노와 원망이 쌓여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상처를 받고 마음이 아팠을 때, 치료가 되었었다면 범죄까지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욥도 세상에서 받을 만한 상처는 모두 받은 사람입니다.

자녀를 잃고 아내를 잃고 재산을 잃고 건강을 잃었습니다. 친구도 잃어 사람도 잃음으로써,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털이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희망까지도 잃었습니다. 거기에다 하나님께도 버림 받은 것 같습니다.

이 때 욥이 한 일은,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만을 보면,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욥 1:21의 고백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는 욥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욥 10:3, 개역개정)


 다 주셔놓고 이제는 다 뺏어 가셨으며, 이제는 내 생명까지 가져가시려 하십니까? 하나님께 원망하고 온갖 불평 불만을 쏟아 놓고 있습니다. 1장의 욥은, 오늘 10장에 와서 불평 불만투성이에 하나님마저 신뢰하지 못하는 듯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서, 불평 중에 있으면서도 욥의 위대함을 볼 수 있습니다.

욥은, 원망을 해도 사람 앞에서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원망하였습니다. 욥은 우울해 하며 괴로워하며 분노하여도, 사람에게 쏟아 놓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 앞에 쏟아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1절과 2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기 10:1-2, 개역개정)


“인생 살기가 정말 지긋지긋하구나. 그러니 내 원통함을 터뜨리고 쓰라린 내 마음을 토로할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나를 정죄하지 마시고 주께서 무슨 이유로 내게 이러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주께서 손으로 지으신 나는 억압하고 멸시하시며 도리어 악인이 꾀하는 일은 좋게 보시는 것이 선한 일입니까?(욥 10:1-3, 개역개정)


믿음의 사람인 욥도 불평과 불만을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괴로운 대로 다 말합니다. 분노하는 대로 화를 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아뢰고 누구와 논쟁하여 다투겠다고 말합니까?

네, 하나님입니다. 어떤 아픔도, 우울함도, 분노도 모두 하나님께 솓아 놓겠다라고 말합니다.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우리의 마음, 우리의 분노, 우리의 아픔을 쏟아 놓을 분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을 통해 위로를 받을 것 같지만, 참 위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그 사랑으로 우리를 싸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개역개정)


예수님 앞에서 애통해 하는 자는 하늘의 위로를 받게 됩니다. 바울도 하나님은 낙심한 자를 위로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고후 7:6, 개역개정)


디도를 통하여 복음 전파로 지친 바울을 하나님께서 위로하셨지만, 그 위로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른 평안, 진정한 평안은 하늘에서 오는 평안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안입니다.


욥기 10:1-22, 사랑으로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찬308장) - 수요기도회위로하시는 하나님


구약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라이벌이 있습니다. 왕위를 놓고서 사울 왕과 다윗은 쫓고 쫓기는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말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적인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은 전사하였지만, 다윗은 적인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 보호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사울은 이스라엘 왕위를 다윗에게 빼앗길까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버리셨고 사무엘 선지자와의 관계도 끊어진 채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선택한 방법이 무엇인가요?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의 큰 짐과 걱정과 염려, 두려움, 외로움 속에서 신접한 여인을 찾아 이미 죽은 사무엘을 불러 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그 결과는, 내일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세 아들들과 함께 전사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블레셋의 아기스 왕이 준 시글락이라는 성에서 도망자로 살아가는 도중에,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어쩔 수 없이 나갔다가 블레셋 장군들의 반대로 다시 시글락 성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시글락 성은 아말렉 사람들이 공격하여 다윗의 가족들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의 가족들을 포로로, 모든 재산을 다 빼앗아 간 상황이었습니다. 함께 한 사람들은 화가 나서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 때, 다윗이 크게 "다급"(야짜르, יצר)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 입고 용기를 얻었다 라고 삼상 30: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묻고 아말렉을 추격하여 모두 찾아 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결말은 왜 생겼을까요? 누구에게 고통을 아뢰고 누구를 의지하는가의 차이였습니다. 당장의 일이 더 급한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사울은 아직 왕이었으며 자녀들을 살아 있었으며 이스라엘도 블레셋에게 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을 의지하였고 그것도 한 때 자신이 쫓아 내었던 신접한 여인, 하나님께서 싫어 하시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사울보다 더 다급하고 금방이라도 반역으로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한 다윗은, 오히려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고 몸과 마음이 강하게(하자크, חזק)되었습니다.


아픔과 상처는 사람에게 받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과 상처를 치료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습니다. 일이 잘 되지 않아서, 가족의 아픔 때문에, 몸이 아파서 우울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모른척 하시는 것 같아서 괴롭고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라 할지라도, 본문 2절부터 22절까지 욥이 하나님께 조목조목 따지듯 불평했듯이, 우리도 먼저 하나님께 나와 엎드려 아룁시다.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시며 사랑으로 우리를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로 다 쏟아 놓읍시다.

우리의 아픔을 아시는 하나님만이 진실한 그 사랑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 상처를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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