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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18 욥기 설교

욥기 9:25-35,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찬96장) - 수요기도회

by OTFreak 2020.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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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욥기 9:25-35, 개역개정

25 나의 날이 경주자보다 빨리 사라져 버리니 복을 볼 수 없구나

26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먹이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27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28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29 내가 정죄하심을 당할진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30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

31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32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33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34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35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라



 욥기 9:25-35, 우리말

25 내 인생이 달리는 사람보다 빨라서 좋은 것을 보지도 못하고 날아가 버리는구나. 26 내 인생이 갈대 배와 같이 빨리 지나가며 먹이를 보고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 같이 쏜살같이 지나가는구나. 27 내가 ‘내 원통함을 잊어버리고 내 무거운 짐을 떨어내고 웃음을 보이리라’ 해도 28 아직도 내 모든 고난이 두렵습니다. 주께서 내가 죄 없다고 하지 않으실 줄 내가 알기 때문입니다. 29 내가 정녕 악한 사람이라면 왜 이처럼 헛되이 고생을 해야 합니까? 30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씻어도 31 주께서 나를 시궁창에 빠뜨리실 것이니 내 옷마저도 나를 싫어할 것입니다. 32 그분은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시니 내가 그분께 대답할 수도 없고 서로 대면하여 시비를 가릴 수도 없구나. 33 우리를 중재할 누군가가 있어 우리 둘 사이에 그 손을 얹어 줄 이도 없구나. 34 그분의 회초리가 내게서 사라지고 그분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짓누르지 않기를 바라노라. 35 그러면 내가 그분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위치에 있지 않구나.”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



탈무드 세 친구



왕이 신하를 보내어 한 사람에게 급히 왕궁으로 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자 명령을 받은 한 사람은 두려움으로 인해, 가장 친한 친구에게 같이 왕궁으로 같이 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아무 이유도 말하지 않고 거절하였습니다.

다른 친구에게 찾아 갔지만 궁전 입구까지는 함께 가 주겠지만,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해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친구에게 찾아 갔을 때, 세 번째 친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지, 내가 함께 가주겠네, 자네는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으니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네, 내가 함께 가서 임금님께 잘 말씀드려 주겠네.


나의 무죄를 알아 줄 한 친구가 있었기에, 왕의 명령을 받은 그 사람은 담대하게 왕이 있는 궁전 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세 친구는, 재산, 가족, 그리고 선한 행동이 각 친구들이었다는 탈무드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 주지 않을 때,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옆에 누군가가 있어도,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외롭고 우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해 왔는데 자녀들을 위해 지금껏 나를 희생하며 살아왔는데,  정작 가족들이 나를 알아 주지 않고 자녀들이 나의 수고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얼마나 섭섭하고 괴롭겠습니까?


욥은 이유 없이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옆에 있어도 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해는 커녕, 욥이 은밀히 숨긴 죄가 있어서 지금처럼 고통을 당한다며 인과응보를 들먹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입증하지 못하고 이대로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위기감을 느낍니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도 인정해 주지도 않고, 비참하게 인생을 마칠까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괴로움을 하나님께 아뢰는 욥



괴로움 속에서 욥의 육신은 점점 더 병이 깊어가고 죽음을 보게 됩니다.

욥은 죽음을 생각합니다. 자신의 남은 생명이 25절과 26절의 경주하는 사람의 달리는 속도, 빠른 배의 속도, 먹이를 향해 내려 오는 독수리처럼 신속하게 사라져 간다고 말합니다. 육신이 병들고 회복의 가능성과 희망이 사라진 지금, 이제 남은 것은 이렇게 죽는 것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욥은 당당했던 옛날의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죽어가는 슬픈 모습의 자신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육신 뿐만 아니라, 욥의 마음과 영혼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였습니다.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30-31절처럼, 아무리 씻고 깨끗하게 하여도, 하나님께서 또다시 개천에 빠지게 하여 나를 더럽히실 것이기에 아무리 내가 씻어보았자 소용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욥 9:30-31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31절의 '개천'은, 구약 성경 시대와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다른 말로 '스올', '죽음', '지옥'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즉,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하나님께서 나를 또다시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실 것이라는 절망의 외침을 하고 있습니다.


몸과 영혼이 죽어가는 절망의 순간에, 그러나 욥은 한 가지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욥 자신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를 구하는 것입니다. 판결자는, ‘야카흐’(יכח)라는 동사에서 온 말인데, 그 의미는 “변호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극심한 외면과 자신을 향한 괴롭힘에 대하여, 욥 자신의 무죄함을 대신 말해 줄 변호자, 하나님의 손과 자신의 손을 맞잡고 화해할 수 있도록 해 줄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무죄를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 욥 대신에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무죄를 대신 말해 줄 사람, 하나님과의 화해를 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욥은 그러한 중재자, 판결자, 변호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내도, 친구들도 욥을 중재해 줄 수 없었습니다. 욥의 무죄함을 대신 하나님께 말해 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그러나 욥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나 대신 피를 흘리심으로 나를 변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손과 내 손을 맞잡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 받게 하셨으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인도하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은혜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 앞에 감히 나갈 수 없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힘 입어 그의 앞에 서며, 천국을 소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욥과 같이 육신의 절망 속에 있습니까? 욥은 그 절망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 줄 변호자, 판결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의인으로 여겨졌던 욥은 자기 스스로 자기의 무죄함을 입증할 수 없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다고 여겼지만,  죄인인 우리는 내가 무죄하다고 내세울 필요도 없이 예수께서 대신 모든 변호를 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이 되신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로 와 계십니다. 우리에게 죄사함의 은혜, 구원의 은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며 간절히 기도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 역전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이 밤에 중보자되신 예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왔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성실히 기도하게 하시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의지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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