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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이번 주의 교회 절기

20200614일 성령강림 후 둘째주일 - 창세기 18:1-15 설교를 위한 본문 연구

by OTFreak 2020.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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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둘째주일 - 창세기 18:1-15 설교를 위한 본문 연구


2020년 성령강림 후 두번째 주일(Pentecost+2) - 6월 14일 주일 다른 본문 바로가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2장에서 자손의 번성과 축복의 약속을 주신 이후, 25년 동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온 그에게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하여 약속의 성취가 시작될 것임을 알리셨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과정에서 실패하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유지되어 왔고 드디어 직접적인 아들에 대한 말씀을 듣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창세기 18:1-15, 아브라함이 세 천사를 만나다



1. 믿음과 실패 속에서 살아온 평범한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가라는 명령에 따랐고(창 12:4), 여전히 의심과 의혹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려 애썼으며(창 15:6), 사명감 속에서 소돔 땅을 위해 중보하였고(창 18:16-32) 마침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하나님의 인정(창 22:12)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역동적인 과정 속에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실패가 뒤섞였던 그의 인생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1-8절에는 아브라함과 세 명의 방문객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9절-15절에는 사라가 아들에 대한 약속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1-8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세 사람이 방문하고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필 '세 사람'이라는 부분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아니신가 해석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 아니며 천사도 아니며 하나님 자신이 직접 아브라함에게 오셔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세 천사가 하나님이심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세 사람이 전한 말씀을 듣고서야 그들이 하나님의 천사 혹은 하나님 자신이심을 알았습니다. 왜 하나님이심을 아브라함은 처음에 알지 못했을까요?



2.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난 하나님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일상적인 삶 속에서 찾아 오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지나가는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은 선행을 베푸는 일과 함께 장차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을 위한 보험을 드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즉, 손님 대접은 일상이었고, 그 일상 속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셨습니다.

어쩌면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혹은 지진 가운데 나타나시고 말씀하셨다면 아브라함은 금방 하나님이심을 알았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 가운데 찾아 오셨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으로 찾아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빛이 나거나 천사와 같은 초자연적인 형태로, 불꽃이나 번개의 모습으로 찾아 오지 않으셨습니다. 

단순한 사람의 형태로 평범하게 오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확인 시키셨습니다.



3. 아들에 대한 약속이 사라에게로 연결되다


두번째 큰 단락은, 아브라함에게서 사라로 초점이 옮겨져 갑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의 전반부에서 사라의 역할은 매우 미미하였으며, 또한 자녀를 낳지 못했던 것은 사라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실질적으로 실행시켜 나가는 인물로 나타납니다. 그의 웃음 때문에 아들 이름이 '이삭'으로 정해진 것도,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름을 정하던 당시의 시대에서는 독특한 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세 사람은 25년 전의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확인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제 그 약속이 실행될 것임을 말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막연하게 자손에 대한 복을 약속하셨지만, 이제는 구체적인 시간을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1년 뒤라고 말입니다. 1년 뒤에 드디어 아들을 가지게 될 것이라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주의 말씀에 문 뒤의 사라가 웃다



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그것을 몰래 듣던 사라는 웃고 맙니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은 비난의 웃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웃음입니다. 누구나 99세와 89세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1년 뒤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웃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25년 전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금은 출산이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그녀의 선택은 그저 웃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세 사람에서 주님(13절)으로 밝혀진 한 사람은, 14절에서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지금껏 사람의 생각과 관습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떤 대답을 해야만 할까요? 본문에서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14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라의 선택은, 자신이 웃지 않았다며 변명을 할 뿐입니다.

아직 그들에게는 믿음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할 자세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사라가 잉태하고 배가 점점 불러 오며 이삭을 낳게 되면서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심을 몸소 체험하고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본문의 대답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입니다.


본문을 통해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우리의 대답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사는 합리적인 세상 속에서는 이해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인간의 모든 논리와 경험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일은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사라도 우리와 똑같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배운 지식과 경험에 의하면 당연한 반응입니다. 사라의 웃음은 또한 매우 현실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웃음이 아닌,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가질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세상 속에서 어떤 대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우리의 웃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능력이 일하시는 것을 우리가 얼마나 믿고 확신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 사회는, 혼란스럽고 비극적이며 실패, 질병, 죽음의 과정 속에서 고통의 연속인 상황입니다. 마치 사라가 자녀가 없는 상태로 살아오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희망 없는 세상에 새로운 가능성을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선포하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해와 생각을 넘어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5. 약속을 분명히 실행하시는 능력의 하나님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약속을 합니다. 그 약속을 통해 내가 인정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함부로 약속하지 않고, 약속할 때에도 신중하게 약속을 해야만 합니다. 그 신중한 태도가 우리로 하여금 실수하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이끌어 줍니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움과 희망을 가져다 주는 존재, 우리를 위해 불가능한 일을 우리와 함께 행하시는 존재, 우리의 황당한 웃음을 기쁨의 진실된 웃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신뢰합시다. 자녀를 낳지 못하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바꾸신 분은 바로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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