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설교/18 욥기 설교

욥기 9장 1절 - 4절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찬405장)

by OTFreak 2020. 5. 27.
반응형

 

욥기 9:1-4, 개역개정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3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4 그는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그를 거슬러 스스로 완악하게 행하고도 형통할 자가 누구이랴

욥기 9:1-4, 우리말 

1 그러자 욥이 대답했습니다.
2 “그 말이 맞는 줄은 나도 물론 아네. 그러나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있겠는가?
3 제 아무리 그분과 따져 보려 해도 천에 하나도 대답할 수 없을 것이네.
4 그 지혜가 심오하고 그 힘이 막강하니 그분을 거역하고도 잘된 사람이 누구겠는가?

 

위대하신 하나님의 은혜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저는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안경을 썼습니다. 벌써 30년이 훨씬 넘게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경을 벗으면, 소위 말해 "뵈는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눈이 나빠서 안경 없이는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면도할 때가 힘듭니다. 왜냐하면, 얼굴에 거품을 묻힌 채 면도를 해야 하는데, 안경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잘 안보이니 때로는 면도날이 얼굴에 상처를 내어 피를 보게 할 때도 있습니다.
     면도날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시력이 좋지 않아서 깨끗하게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면도날을 탓하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올바른 시각을 가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본래부터 자기 자신을 잘 못 본다는 뜻입니다. 나는 잘 하는데 환경이나 상황이, 혹은 다른 사람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기도 하며, 인간이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교만한 생각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과학 문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았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난 해 11월부터 중국에 퍼져 나갔고 그로부터 6개월이 넘게 지났음에도 아직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도 언제 개발될 지 모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코로나 19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해도, 다음에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날 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고 능력이 있으며 의로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개역개정)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귀한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을 수 없는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인생,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교만한 것이 인생입니다.

     본문의 욥도 고백합니다.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욥 9:2, 개역개정)


     제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는 감히 설 수도 없습니다.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에 불과합니다. 오늘 단 하나의 죄도 짓지 않은 분이 여기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3개 이하로 죄를 지었다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개역개정)


     성경은 분명히 이 땅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비록 사람들의 평가에는 "저 사람은 참 정직해", "참 착해", "참 존경스러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하나님만큼 정직해", "하나님만큼 선해", "하나님만큼 능력 있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무지한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 하나님과 논쟁하려 합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무죄라 주장할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단지 하나님 앞에서 항상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6-7, 개역개정)

 

주님께서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를 건져주시다


     풍랑으로 배가 곧 부서질 것 같은 상황일 때, 갈릴리 바다를 건너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로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마 14:27)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만일 주님이시면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하며, 예수님은 "오라" 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자 물에 빠지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의심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자기 생각을 하니 바람과 풍랑이 무서워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을 인정하며 신뢰하며 나의 몸과 마음을 주께 맡깁니다"라는 겸손한 고백이 그에게 없었기 때문에 빠져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 시간에 나와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우리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 그 은혜에 우리를 맡깁시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것을 모두 맡기고 오직 주의 은혜만을 의지하며 나아갑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개역개정)

     오늘 이 밤에, 우리의 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힘 입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내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권능의 팔을 의지하며 나아갑시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인정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