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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삶

[오늘의 삶] 분노에 대하여

by OTFreak 2020.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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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무엇입니까?



분노란, 복수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입니다. 이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 여러 현상들 속에서 내가 분노하는 경우는, '억울'하거나 '내가 손해를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니다.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 생각할 때에는 분노가 거의 생겨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와 관련되어 있으며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느냐에 따라 분노 게이지의 높낮이는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목사인 친구가 선물해 준 "화가 날 때 읽는 책"이라는 책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화가 났을 때는 "이 사건이 내 사건이 아니려니" 하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화가 날만한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 "제3자"나 "관찰자"의 시점을 가지라고 조언하는 책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잠 자기 전에 읽어 주던 책 중에 이런 제목의 책이 있었습니다.


"불 뿜는 용"



아마 그림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너무 적나라하게 잘 묘사한 그림책입니다.





나도 분노하였습니다.



부산에서 오랫동안 운전을 하면서,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이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차량들을 가끔 경험하였습니다(지금은 대구에서 운전을 하는데, 대구는 부산에 비해서 매우 안정적으로 운전하는 운전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운전을 하는 운전자들도 있지만 말입니다. 극히 주관적인 느낌일 뿐입니다). 기본적인 신호를 무시하여 나와 차량에 탑승한 내 가족의 신변에 위협이 되는 경우, 분노를 넘어서서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어떤 상황인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니, 별 일 아닌 일에 분노한다며 핀잔을 줍니다.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데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로 인해 분노의 게이지는 터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운전하면서 분노하게 되면 똑같이 갚아 주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상향등을 키거나 크락션을 누르거나 급히 추월해서 앞으로 끼어 든다든지 말입니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마치 슈퍼 영웅의 마음으로 악당들(내 가족과 나의 안전을 위협한 나쁜 놈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하고자 하는 소망이 생겨 납니다. 될 것 같습니다. 불가능이 없을 것 같은 느낌에, 솟구치는 호르몬의 작용과 이상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복수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입니다. 똑같이 되갚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충만하여, 다른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곧 후회할 일인데, 그 순간에는 오로지 복수! 복수! 복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보복 운전을 했다가 구치소에 수감되거나 벌금을 크게 내는 경우들도, 곧 후회할 "복수에 대한 욕망", 즉 "분노"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분노"에 대해 말씀합니다.




잠언 29장 22절에서는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라고 기록합니다. 어찌 이리 정확한 말씀인지요?

분노가 다툼을 일으키고 화를 주체하지 못하여 범죄하는 우리의 삶에 비수같이 꽂히는 말씀입니다. 최초의 살인도 가인의 "분"으로 인하여 시작되었음을 창세기 4장 4절 - 5절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22절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한 순간의 분노로 인생의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음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도 분노의 잔인함에 대해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분노의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먼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누구든 화를 낼 수 있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감정을 가진 인간은 삶의 위협 속에서 당연히 분노, 복수하고 싶은 욕망이 생깁니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살아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분노하는 방법에 대해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아무 일에도 분노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방법, 정의로운 방법으로 범죄에 대해 분노하라는 것이지요. 운전하다가 생기는 분노에 대해서는, 위반 사례에 대해 국민신문고 등으로 신고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단은 분노를 올바른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을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안 그러면 화병이 생겨 혈압 관리에 좋지 않습니다.

물론 여전히 실천하기 어려운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말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앞서 언급한 마태복음 5장 22절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이 말씀은 분노를 금지하시는 것 같으나, 23-26절 말씀과 함께 보면,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가서 화목하고 사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2절 말씀만을 본다면, 우리 모두는 벌써 심판을 받고 공회에 잡혀가 유죄라 재판 받으며 지옥 불에 들어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약함을 이미 아시기 때문에, 정당하지 않은 분노를 내는 것이 인간의 연약한 모습임을 이해하시고, 분노 후에라도 빨리 사과하고 화해와 회개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분노하는 우리의 연약한 인간의 성정(性情)을 인정하시고 분노로 인한 실수는 즉시 사과하고 회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4장 26절과 27절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분노가 오래 가면, 주변의 가까운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나를 위협한 그 사람에게만 분노해야 하는데, 분노가 지속되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어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지요.

이 일로 인해 가족이 깨어지고 공동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게 되어 귀한 공동체를 깨뜨리는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분노하셨고 그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3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처럼, 예루살렘 성전에서 짐승을 파는 사람이나 돈 바꾸는 사람들을 쫓아 내시고 채찍을 휘두르며 상을 엎고 돈을 쏟으셨습니다. 누군가가 볼 때에는 분노로 가득찬 예수님의 모습에 경악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깨끗케 하신 예수님께 유대인들이 항의하고 책망하자,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세상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실 사건을 말씀하셨습니다. 분노로 가득 차서, 유대인들에게 저주를 쏟으셨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살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성전된 자기 육체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요 2:21-22).

분노하되 그 분노를 오래 지속하지 말고 속히 분노의 불을 꺼야만 합니다. 오래 지속되면 모두가 파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가면서



분노의 순간에, 크게 한 번 더 호흡을 하고 입을 꽉 깨물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순간만 넘기면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잘 되지 않고 불가능해 보여도, 솟구쳐 오르는 분노의 아드레날린을 잠재우고 나의 뒤집힌 눈을 "예수의 말씀"을 기억함으로써 정상으로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내 마음, 내 감정을 나 스스로가 통제하거나 다스리기는 극히 불가능합니다. 내 일에 제3자나 관찰자가 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화를 내며 살아가기도 힘듭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할 수 있는대로 분노를 억누르고자 애를 쓰며, 예수의 말씀으로 훈련하고 또 깨어지고 또 훈련하며 성장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예수를 조금이라도 닮아가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도 모르게 분노했다면 즉시 사과하거나 수습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오늘도 "복수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분노를 극복해 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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