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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삶

누가 산책을 아름답다 했는가?

by OTFreak 2019.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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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은 산책을 힐링의 시간이라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산책이 사색의 시간이라 평가한다.

  칸트와 같은 대철학자는 항상 오후 3시 30분에 산책을 하며 체력도 키우고 사색했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산책도 산책 나름... 나에게 ‘산을 오르는 산책’은 분노를 유발하는 생고생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이제 이 오르막길을 올라가야만 한다. 헐...

 

  올라가는 동안 아이들은

  “언제 도착해요?” “꼭 끝까지 가야해요?” “벌레가 너무 많아요" “엄마야~ 벌레에요. 그냥 내려가요"

“이제 내려 가야하지 않아요?” “왜 산을 오르는 산책을 해야 해요?” 라며 쉴새없이 불평을 쏟아 놓는다.

  산에 오르면 산에 사는 메아리를 불러야지, 온갖 자기들의 마음에 있는 불평불만을 불러 놓는다.

 

  그 불평불만은 치유 불가능한 감기 바이러스와 같이 내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전염시킨다. 

  아이들의 말들에 점령당한 내 마음과 생각은, 나무를 감고 가만히 있는 덩쿨에게 화풀이하게 만든다. 

  ‘니가 나무에 기생해 있으니 나무가 얼마나 힘들겠노! 아 짜증나!’

  “저 덩쿨을 뜯어 버리까? 그럼 나무가 좀 시원하겠제?”

저 나무가 얼마나 갑갑할까? 보기만 해도 짜증난다!

 

  괜스런 생각과 툭툭거리는 말을 중얼거리면서도 막상 길 옆에 쳐 놓은 안전벽을 넘어가 덩쿨을 나무에게서 강제로 분리

시킬 용기가 나지 않는다. 소심하기는...

  이런 와중에 모기도 양팔과 양다리를 물고 피를 빤다.

  “완전 기생하는 것들 천지다! 아, 짜증나!”



  하지만 이런 짜증과 분노도 금방 사라지게 하는 마법의 장소에 도착했다.

  정상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지만, 드디어 돌아갈 중간 지점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 내려 간다.

  이제 기생하는 것들에게서 자유이며 더 이상 분노하지 않아도 된다. 투덜거리는 저 녀석들에게서도 해방이다!

드디어 엄마와 딜(deal)에 성공했다! 정상까지 가지 않고 여기서 돌아서 내려 간다! 다행이다!

 

  내려 가는 길에 내 몸을 맡기니 절로 다리가 움직인다.

  다리와 함께 내 귀와 내 눈과 내 마음과 내 생각도 절로 살아난다.

  “새 소리가 있었어?”

  “계곡에 물소리도 들리네? 벌레 소리도 많이 들린다. 바람도 불어 오니 시원하기도 하다"

언제나 내려가는 길은 즐거워~

 

“어? 꽃 소리도 들린다!!!”

  올라올 땐 보이지 않던 꽃들이, 내려갈 때에는 소리를 내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진짜다! 그 소리가 정말 들린다. 이럴 수가...

 

  나무에 기생하며 붙어 있던 덩쿨도 내려올 때 다시 보니, 둘 사이가 그다지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이제는 조화롭고 친해 보였다. 만난지 일주일 된 죽고 못사는 고딩 커플 같이 달달해 보인다.

  물소리, 새소리, 벌레소리, 꽃들의 소리가 그대에게도 들리는가?

  길에 몸을 맡기니 모든 것이 평화롭게만 느껴졌다.

 

  산을 오르는 산책은, 내가 모든 것에 대해 머리 끝까지 분노하게 만드는 일임에 분명하다.

  동시에, 나의 폐와 마음 속에 쌓인 여러 흙먼지를 완전히 뱉아 내는 긴 호흡과 깊은 생각의 숨쉬기 시간임이 틀림이 없다.

  아~ 시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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