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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삶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by OTFreak 2019.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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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서 자주 느끼는 사실이 있다. 내가 의지가 너무나도 약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작심삼일이라고 했던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권의 책을 완독하리라 작정하고서 책을 손에 집어 들었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몸도 피곤하고 이제는 눈도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조금만 쉬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책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조금이 아닌 며칠을 쉬어 버린다. 한참 후에야 내려 놓은 책이 보이고 또 후회하고 만다.
  이처럼 의지가 약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것 같다.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 하였다. 중고등학교 다니고 대학 다닐 때, 나름 집중력이 있었다. 또 엉덩이도 무거운 편이어서 한 번 앉으면 몇 시간 동안 교과서와 씨름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된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유약하였으며,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더 약해져만 가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처음부터 아셨기에, 구원의 길을 "의지"가 아닌 "은혜"로 허락해 주셨음이 분명하다. 만일 의지를 통한 행위가 구원의 길이었다면, 나 같은 사람은 구원의 'ㄱ'에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분명히 묻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갈 3:2)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혜가 임한 것은, '인간의 의지를 통한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예수가 구원자이시다'라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서인지 말이다. 특히 할례라는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의 증표로써 아브라함이 행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갈 3:6)라고 바울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 이처럼, 구원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선물로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의 의지와 행위를 보시지 않고, 믿음의 고백을 보시겠다는 말씀 자체가 은혜가 아닌가?

  나는, 믿음으로 구원을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 하루 고백하며 붙들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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