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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01 창세기 설교

여호와와 함께 하는 삶

by OTFreak 2019.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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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


 레푸기움...

  레푸기움(Refugium)이라는 라틴어 단어는, 은신처(hideaway)로 쓰이는 단어이다. 단수형인 Refugia의 복수형으로, 고단하고 지친 일상에서 쉼을 얻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피난처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원래 이 단어는 빙하기의 찬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동식물들이 숨어서 생존했던 곳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이후로는 인간의 육신과 정신과 영혼이 생존하기 위해 피할 수 있는 곳을 의미하는 단어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고대 이스라엘에는 전혀 의도하지 않고 실수로 지은 살인죄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피난처로 도피성들(the cities of refuge)이 있었다(수 20:1-8). 아무에게나 열린 피난처가 아닌,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이 도피성들은 요단강 동편에 "베셀", "골란" 그리고 "길르앗 라못"이 있었고 요단강 서편에는 "게데스, 세겜, 헤브론"이 있었다.

  하지만 이 도피성들에도 규칙이 있었는데, 반드시 재판을 통하여 피하는 사람이 의도적이었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그리고 도피성을 벗어난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만 했으며, 당대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의 죄가 사면되기 때문에 보복하는 자가 도피한 사람을 해할 수 없었다.


  현재 내가 거주하고 있는 대구는 1950년대 한국 전쟁 당시 많은 피난민들의 도피처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생존을 위해, 전쟁을 피해,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시대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다른 형태이지만 같은 의미의 피난처가 존재해 왔다.

  그러나 역사의 많은 피난처들 중에서, 끊임 없이 사람들이 찾고 의지하는 피난처가 있으니,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시편 14편의 저자는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시 14:6)라 노래하며 영원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빙하기를 넘기게 해 준 동식물들의 레푸기움도 사라졌고, 이스라엘의 도피성도 무너진지 오래다. 하지만 나에겐 영원한 피난처요 확실한 안전처가 있으니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용납해 주지 못하는 상황도, 하나님께 피하여 가만히 그에게 아뢰면, 그가 들으시고 잘잘못에 대해 알려 주신다.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

  신앙인으로서 생존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완벽한 피난처가 아니겠는가?

  매일의 삶 가운데 타인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또 나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 내가 숨어 들 수 있는 곳, 모든 짐과 생각을 내려 놓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숨어 누울 수 있는 곳, 그 곳이 바로 레푸기움이요, 피난처이며, 주 여호와이시다.

    나 자신이 그 분의 앞에서 더 잠잠이 엎드리며, 그 분께 피하여 요동치 아니하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와 함께 하는"(עם יהוה אלוהי)의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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