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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01 창세기 설교

"덕"과 "예", 그리고 "삶 속에서의 예배"

by OTFreak 2019.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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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이 책을 한 권 읽기 시작했다.

  최진석 교수가 쓴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이 그것이다.

무려 307면을 가진 무시무시한 분량의 책이다.

 

  오래 전 신학과 인문학의 관계에 대해 깊은 고뇌를 하시던 "민"교수님의 말씀이 불현듯 떠올라, 나도 인문학에 대한 책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을까. 도서관의 서고를 뒤적거리다가, "노자"가 눈에 떠올랐다.

  노자의 사상이 쉽게 녹아 있다는 "노자인문학"을 통하여 인문학에 대한 첫 발을 딛고 싶은 마음에, 얼른 대출하여 탐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노자의 철학과 사상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며, 신과 인간의 관계로부터 생각과 철학과 동양학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인간 스스로가 "천명"(天命)으로 받아 들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천명이란, 바로 '초월적 신()이 내리는 불변하는 명령'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인간사는 인간이 아닌,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이 주관하며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절대적인 신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 자세를 "덕"()으로 해석하고, 신에게 나아가는 인간의 자세를 "예"()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덕과 예를 중시하는 동양의 철학, 그리고 노자의 사상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인간이 신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으로써 "덕"과 "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노자가 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오직 나만의 착각일까?

 

  그렇다면, 노자의 "덕"과 "예"가 나에게,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초월적 존재, 일자(一者), 전능자 하나님에 대한 일상 속에서의 나의 마음가짐이 "덕"이요 그 분께 나아가는 나의 준비된 자세가 "예"라고 보면 어떨까?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생각과 마음을 삼가며 살아가는 마음 가짐은 노자가 말하는 "덕"과 연결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덕을 베푸는 것과 사랑을 베푸는 것이 다른 모습이 결코 아닐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나아가는 나의 경건하고도 절제된 자세를 노자가 말하는 "예"라고 표현해 보면 어떨까? 함부로 왕이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왕을 존중하고 충성을 다짐하는 자세로 나아가는 자세는 왕에 대한 예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 24절을 통하여 예배자의 자세를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초월적 왕이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영"(프뉴마, πνεῦμα)과 "진리"(알레떼이아, ἀλήθεια)의 자세가 필요한데, 여기에서 "영"을 "덕"으로 생각해 볼 때 서로가 어울려 보인다. "영"이 바람과 같은 것이며 생명의 호흡과 같은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Thayer's Greek Lexicon), 매일의 삶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마음가짐 혹은 생각이 노자의 "덕"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또한 "진리"가 '사실에 입각한 실체'라고 사전에서 해서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Thayer's Greek Lexicon), 덕의 마음가짐이 겉으로 나타난 "예"가 진리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덕,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 이 둘은 영과 진리와 같이, 곧 예배와 삶 속에서의 양 바퀴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사순절을 지나고 있는 이 때, 예수의 제자로서 그의 뒤를 따라 "영과 진리로" 다시 말해 "덕과 예"로 예배하며 그의 삶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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