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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삶

누가 누구를 진실하게 긍휼히 여길 수 있을까?

by OTFreak 2016.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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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는 "긍휼 사역"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주변을 돌아보고 어려운 이웃들을 살피는 것을 긍휼 사역이라 부르기도 하고,

교회 내에서 문제가 있는 성도들을 살피는 것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누구를 긍휼히 여길 자격이 되는 것일까?

과연 사람이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을까?

사람 자체가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인데, 누구를 긍휼히 여길 수 있다는 것인가?

누구를 공감하고 누구를 이해하며 누구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인가?


그 누구도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자신의 이해함으로 타인을 긍휼히 여기기는 불가능하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알 지 않는가? 순수함과 진실함으로 타인을 긍휼히 여길 수 있었는가?

답은 긍정적이라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리스도께서 눈먼 사람을 고치시다', 엘 그레코(1578년)


마태복음 20장 29일부터 34절에 따르면,

예수께서 여리고를 떠나 가실 때(누가복음에서는 여리고를 향하여 가시던 중, 여리고 가까이에서),

두 맹인이 예수께 소리 질러 "불쌍히 여겨 주실 것"을 요청했다.

예수를 따르던 주변 사람들이 방해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예수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실 것을 "더욱 소리 질러" 알렸다.

이들의 외침에 예수께서는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고 고쳐 주셨음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두 맹인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예수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치는 두 맹인들의 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רחם עלינו

직역하자면, "우리 위에 긍휼을 두소서" 정도로 해 두자.

이들의 외침에 대하여, 34절에서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 차셔서 맹인을 고치셨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נתמלא ישוע רחמים

직역해 보자면, "예수께서는 긍휼하심으로 가득 차셨다" 정도가 될 것이다.

작은 긍휼, 부스러기 긍휼이라도 원했던 두 맹인에게, 예수께서는 마음 가득 찬 긍휼로 답하셨다.

그 분의 긍휼만이 진정한 긍휼이며, 우리가 소망하는 것 이상의 차고 넘치는 긍휼임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를 진실로 긍휼히 여기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아니신가? 긍휼이 필요한가? 긍휼 사역을 해야만 하는가?


예수만이 해답이다.

예수만이 정확한 표본이다.


늘 듣던 이야기이며 뻔한 결론이지만, 유일한 결론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예수만이 인간을 진실하게 여기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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