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설교/18 욥기 설교

욥기 23:8-12 하나님은 앞에도 뒤에도 계시지 않고

by OTFreak 2020. 10. 21.
반응형

   욥은 친구 엘리바스의 말을 듣고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하나님을 찾아도 얼굴을 볼 수가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습니다. 괴로움과 답답함 속에서 욥은 말을 이어갑니다.

목차

     

     

    욥기 23:8-12, 개역개정 성경

    •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 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 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하나님은 앞에도 뒤에도 계시지 않고

    하나님은 앞에도 뒤에도 계시지 않고, 교통위반에서 억울할 때
    정말 억울한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을 해 보셨습니까?

       운전을 하다 보면, 가끔씩 나는 정상적으로 내 차선 안에서 천천히 가는데, 옆에서 오던 차가 클락션을 신경질적으로 울릴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나는 잘못이 없고, 자기가 방향 지시등도 켜지 않고 내 차선에 들어와서는 제가 잘못한 것처럼 대할 때 화가 납니다.

       나는 그냥 내 차선을 갈 뿐인데 말입니다. 이럴 때 정말 억울합니다. 블랙박스 영상을 컴퓨터에 옮겨서 국민 신문고에 올려야지 하고 생각하고는, 집에 오면 잊어버려서 그냥 넘어갈 때가 있습니다.

       나는 분명히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잘못한 사람이 더 화를 내고 나의 잘못으로 몰아갈 때, 우리는 큰 절망감과 분노와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답답한 욥

       욥은 22장 말씀을 통하여, 엘리바스가 하나님과 화목하라, 즉 하나님께 모든 죄를 회개하고 납작 엎드리라는 말을 듣고 매우 화가 났습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오셔서 증인이 되어 주시면 모든 억울함이 풀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답답한 사실은, 욥이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어 주시길 바라며 앞뒤를 둘러 보고 하나님을 찾아도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뵐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욥은 공의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 주시면 좋겠는데, 아무리 하나님을 찾아도 숨어 계신 것 같아서 절망감을 느낍니다. 나타나시지 않으셔도 모두가 듣도록 욥은 죄가 없다라고 한 말씀만 들려 주셔도 되겠는데 말씀조차 없으십니다.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중에도 욥과 같이 절망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할 때인데, 하나님은 여전히 숨어 계시고 침묵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짠!하고 나타나시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데, 하나님은 여전히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습니다. 홀로 버려진 것 같고, 하나님은 무능력해 보이기까지 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절망적인 순간입니까?

     

    믿음의 사람 욥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찾을 수도 만날 수도 들을 수도 없지만, 10절과 같이 믿음을 고백합니다.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은 순간적으로는 절망감에 빠졌다고 할지라도, 금방 다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의지합니다. 분명히 자신의 길을 하나님께서는 아시니, 이 단련의 시간이 지나면 영광의 역전을 하게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에서,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신다의 원래 의미는 왜냐하면 나와 함께 계시는 길을 그가 아신다(  )이라는 뜻입니다. 즉, 지금 당장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그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내가 걷고 있는 지금 이 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계시는 길이시며, 그 길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고 인도하고 계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앞에도 뒤에도 계시지 않고, 엘리바스에게 분노하는 욥
    엘리바스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하는 욥

     

    우리의 눈이 그분을 볼 수 없어도 그분은 우리를 보신다. 

       욥은 정직하고 순전하며 모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직접 자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볼 수는 없습니다. 들을 수도 없고 느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주야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보고 계심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니, 어려울 때라도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보시고 반드시 적절한 때에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를 보고 계시니, 항상 정직하고 바른 길을 걸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항상 우리를 살피고 계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나 아픔도 하나님의 눈은 모두 보고 계십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들과 환경들도 하나님은 모두 보고 계시며 알고 계시니, 하나님께 맡깁시다.

     

    우리의 지혜가 그분의 길을 알 수 없어도, 그분은 우리의 길을 아신다. 

       사람들은 모든 지혜와 지식을 총동원하여 고민하고 연구하여도 하나님의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1:33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알고 계십니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현재 고통스러운 일을 만났다 할지라도 선을 이루기 위한 그분의 섭리임을 알아 순종하고 따르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고난과 어려움은, 나를 단련하시는 과정임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형통한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내 인생이 걸어갈 길, 우리 가정이 나아갈 길, 우리 교회가 해야만 할 일들을 모두 하나님을 신뢰하며 갈 길을 아시는 하나님께 맡깁시다.

     

    나가면서

       우리의 가장 힘든 순간에, 의지하던 친구나 가족이 나몰라라 하고 나를 내버려 둔다면, 혹은 무관심하다면 얼마나 배신감이 들겠습니까? 하물며, 우리를 지키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제일 힘든 순간에 숨으시고 침묵하신다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홀로 형을 피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하란으로 도망가던 야곱은, 한밤중에 벧엘이라는 들판에서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홀로 누웠지만, 그는 잠을 자는 사이에 자신을 하늘에서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천사들이 분주하게 사닥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들판에 혼자 누웠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욥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제일 힘들고 억울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숨으시거나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여전히 나와 함께 그 고통의 길에 계시다는 사실을 욥은 확신하였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훈련과 단련의 길이고 이 길을 믿음으로 잘 이겨내면 순금과 같은 믿음으로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임을 욥은 확신하였습니다. 욥의 이러한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업은 아기 삼면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등에 아기를 업고서도 아기가 없는 줄 알고 두리번 거린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이러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하나님은 앞에도 뒤에도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계시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바로 여기에 계십니다.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 고통의 길에 계시다는 사실, 나를 단련하신 후에 순금과 같이 귀하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사실, 이 사실들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