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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신구약성경 주석 내용요약

27. 다니엘서 내용요약 설교자료 주석, 묵상가이드

by OTFreak 2020.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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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굶주린 사자, 타는 풀무불,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의 왕들, 꿈과 이상들, 국가 간의 묵시적인 전투, 믿기 어려운 장소에서의 죽음과 구원 등 다니엘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익숙하면서도 기이하다. 벨사살 왕처럼(5장) 우리도 벽에 쓴 글씨나(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용어다) 최소한 성경에 나오는 글씨를 보았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목차

     

     27. 다니엘서 내용 요약 설교자료 주석, 묵상 가이드 

    벽에 나타난 글씨,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1. 들어가며

       실제로 다니엘서는 신비로 가득 차 있다. 누가 언제 이 책을 썼는지는 모른다. 다만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바벨론 포로들로 묘사한 것으로 보아 BC 167년 성전이 훼파되기 시작한 안티오쿠스 4세인 에피파네스 때에 부분적으로 쓰였다는 견해도 있다. 다니엘서는 히브리어와(1:1-2:4상, 8:1-12:13) 아람어로 쓰였다는 것(2:4하 -7:18), 장르조차도 반은 이야기요, 반은 이상(vision)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매우 독특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다니엘서는 기독교 예배에 잘 나타나지 않으며, 이해를 위한 적절한 지침도 발견되지 않고, 천주교의 많은 회중들이 따르는 예배 예식서에도 3년에 한 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모든 성인의 축일).

       그러니 어떻게 다니엘서를 의미 있게 읽을 수 있겠는가? 이 책에서 우리는 신앙을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믿음을 실천하는 사례의 책으로 다니엘서를 다룰 것이다. 각 장마다 새로운 위기 상황에 처하는데, 포로살이는 위기의 뿌리이며 이야기 전체의 중심이 된다. 바벨론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서는 것을 어렵게 하며, 다른 신들을 섬기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어떤 위기와 유혹에서도 다니엘과 친구들은 하나님을 붙잡고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사자굴이나 풀무불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음식을 먹고 진리를 말하고 자비를 베푸는 소소한 일상생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에 보상하시고 그 신앙이 전파되도록 하시되, 때로는 그들을 포로로 삼은 왕들에게까지 전파되도록 하신다.

     

    믿음과 소망을 가질 때, 밝은 내일이 있다

     

    2. 본문

      다니엘서에서 반복되는 복음 또는 '좋은 소식'은 하나님이 모든 세계를 다스리시는 주권자라는 것이다. 심지어 포로 기간에도 개인적인 영성 개발 훈련은 공적이면서 정치적으로 재형성된다. 이러한 훈련을 통하여 다니엘은 인격이 형성되고, 자신 앞에 놓인 모든 도전에 응답하리라는 신뢰감을 주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영성 훈련은 내적인 삶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변화된 삶을 살게 한다.

       (1) 먼저 하나님을 신뢰하라

       1장에서의 위기는 다니엘이 왕이 배급한 양식을 거절하면서 시작된다. 거절로 인하여 다니엘의 삶은 위태로워지나 인간이 제공하는 것 이상의 것에 의존하는 존재임을 확인시켜 준다. 성경 시대에 어떤 사람의 밥상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밥상을 차린 주인의 보호 아래 자신을 맡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왕의 밥상에서 나오는 진미 대신 하나님의 땅에서 나오는 소박한 채소를 먹음으로써, 다니엘은 자신이 구원받고 보호받으며 삶의 일상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그가 신뢰하고 있는 주인이 어떤 '주인'인지 보여 주고 있다.

       음식에 기초한 영성 훈련은, 적어도 이스라엘 민족들이 광야에서 얻는 만나를 위하여 바로의 고기 가마 옆에서 먹던 빵을 포기한 이후부터 계속 존재해 왔다. 정결한 음식을 먹는 유대인의 음식법이나 이슬람 교인들의 라마단 금식, 그리스도인들의 성만찬은 모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만 의존한다는 데에 공통된 훈련이다.

       그러나 신앙인의 훈련이 반드시 음식과 관계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 자신을 단순한 소비자로 정의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도록 돕는다. 현대적인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암만파(Ammann)나 '순결과 청빈과 순종'을 서약하는 로마 천주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초점을 맞춘다. 십일조도 무절제를 감소시키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영성 훈련이라고 볼 수 있다.

       (2) 진리를 말하라

       표면상 2장은 꿈의 해석에 관심이 있다. 물론, 성경에서 꿈은 단순한 꿈이 아니다. 꿈은 바로 계시를 드러내는 통로다(창 28:10-22; 마 2:19-22). 따라서 2장에 나오는 위기는 진리(꿈)를 말하지 않겠다는 왕과 진리를 말할 수 없는(꿈을 알지 못하는 왕의 술사들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통치 계급 가운데 있는 이러한 진리의 은폐는 본문에서나 현실에서나 잔인 한 협박으로 이어진다. 왕은 자신의 통치권 아래 있는 모든 박사들, 곧 학식 있는 자들을 죽이겠다고 단언한다(단 2:5, 12). 오직 다니엘이 꿈을 드러냄으로써 진리를 말하는 그때만 폭력이 저지된다.

       진리를 말하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 영성 훈련이 되는가? 우선 진리는 아무 때나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훈련과 마찬가지로, 진리는 인내와 시간을 필요로 한다(2:16). 둘째로 진리를 말하려던 다니엘이 친구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함께 기도했던 것처럼 '소그룹 안에서의 나눔'이 필요하다(2:17-18). 셋째로, 다니엘이 말한 진리는 다른 모든 통치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2:44). 전체적으로, 왕은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2:1) 영적 삶에 기초한 다니엘은 고난 중에도 평화롭게 잠을 잘 수 있었다(2:19)

       (3)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3장에서 다니엘은 더 이상 위기의 중심에 있지 않다. 함께 포로로 끌려온 친구들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거대한 신상에 절하라는 왕의 명령을 받지만, 명령에 거절하여 왕의 풀무불에서 죽음을 당할 위기에 놓인다.

       그러나 이 세 친구들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영성 훈련을 실천하지 않는다. 그들이 신으로부터 원하는 것이 단순히 보호를 받는 것이었다면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에 절함으로써, 하나님이 구해 주신 것처럼 풀무 불로부터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생명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하나님의 첫 계명을 지키는 것이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 신 5:7).

       이 계명을 영성 훈련으로 지킨다는 것은 기도에 응답하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이상을 의미한다. 기도가 응답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그들의 생명이 보호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한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능히 건져 내시 겠고...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단 3:17 - 18).

       그들의 하나님은 생명과 죽음을 뛰어넘는 하나님이셨다. 실제로 그들의 신앙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부활 신앙이었다. 후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곧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 14:8).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신앙은 풀무불에서의 구원에 연연하는 신앙이 아니다. 그들의 구원은 느부갓네살을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자기가 섬기는 신을 섬기지 않으면 죽인다고 하던 바로 그 왕이 세 친구의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명령하고 있다.

       (4) 의와 은혜를 행하라

       4장에서 다시 위기가 발생한다. 이번에는 포로로 끌려온 자들이 아닌, 권력과 특권의 절정에 서 있는 바벨론 왕에게 그 영향력이 미친다.

       느부갓네살 왕은 왕궁의 지붕에서 자신의 능력과 권세로 그가 내려다보고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교만한 생각을 한다(단 4:29-30). 그러나 모든 세계가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상상하지만 얼마 후 그는 자기 자신조차도 지킬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4: 32-33).

       다니엘은 왕에게 왕의 생명을 다시 되돌리는 방법을 제안한다.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 하리이다 하니라”(단 4:27)

       다니엘은 한 인간의 평안함이 다른 사람들의 평안함에도 달려 있음을 알려 준다. 누구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여기서의 공의(righteousness)는 추상적인 경건과는 관계가 없다. 의는 압제받는 자에 대한 자비와 관계있다. 의와 자비는 궁핍한 사람들을 향한 정의와 관대함이라는 구체적인 행위를 요구한다. 실제로, 다니엘은 왕에게 왕궁에서 내려와 사람의 필요를 알 수 있는 거리로 나가라고 요청한다. 4장에서 그려지는 영성 훈련은 다른 사람을 위한 선교와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의 말을 실천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느부네갓네살 왕이 그 메시지를 통해 그것을 실천할 동기부여를 충분히 받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4장의 마지막에서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단 4:37).

       (5) 잘못을 지적하라

       5장에서의 영성 훈련은 벨사살의 식탁에서 드러난 훈련(영적이든 다른 차원에서든)의 부족과 대조해 봄으로써 발견할 수 있다. 이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왕(역사적으로 존재했지만, 상세한 기록은 서로 불일치한다)은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열고, 술 취한 상태에서 금, 은, 동, 철, 나무, 돌로 만든 신을 찬양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 져온(1:2) 그릇들을 사용한다(5:2-3). 이때 이상한 손이 나타나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궁전 벽에 글을 쓴다. 왕이 이 글을 해석하는 자는 누구든지 상을 주겠다고 하자, 다니엘이 벽에 쓰인 글은 어리석은 왕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해석한다.

       다니엘의 정죄는 세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로, 그는 1장에서 느부갓네살의 진미를 거부한 것처럼, 벨사살의 큰 보상을 거부한다(5:17). 또한 다니엘은 정복자나 세상의 어떠한 힘에도 사로잡히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인 이익에 대해 거절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큰 영적 능력이며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임을 말해 주고 있다.

       둘째로, 다니엘은 벨사살이 하나님을 알고 경배했던 아버지 느부갓네살에게서(4장)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질책한다(5:18-22). 결과적으로 벨사살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위반했다(출 20:12; 신 5:16). 이 계명은 자신의 직계 가족에 대한 헌신 이상을 요구한다. 곧 부모를 포함한 조상들의 지혜, 전통, 가치 그리고 경험들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는 것이다. 벨사살은 이를 무시했다.

       셋째로, 다니엘은 한 종교의 거룩한 그릇을 가져다가 다른 신을 경배하기 위해(단 5:23) 사용한 것에 대하여 심각하게 질책한다. 성전 그릇을 잘못 사용함으로써 왕의 몰락은 가속화된다. 다니엘은 왕의 나라가 끝났고, 그의 왕국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선포한다(5:24-28). 참된 하나님 한 분을 예배하는 믿음과 원칙을 위배하며, 신앙의 거룩한 기물들을 더럽히는 행위는 명백히 죄다.

       (6) 흠 없이 살기를 추구하라

       6장에 나오는 마지막 이야기에서 다시금 다니엘이라는 이름이 중심에 나타난다. 우리가 어렸을 때 어떻게 배웠는지, 본문에서 다니엘이 당한 위기는 굶주린 사자가 아니라 거짓말하는 동료들과 관련된 것이다. 들짐승은 그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며 해를 끼치지 못했다(6:23). 그러나 시기하고 속이는 동료들은 그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다.

       이러한 ‘총리와 고관들'은 다니엘이 위반할 법을 제정하여 왕이 어인을 찍게 함으로써 왕을 곤경에 빠뜨린 뒤, 왕의 궁정에서 다니엘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법을 범하게 된다(출 20:16; 신 5:20).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지지만, 하나님과 왕 앞에서 흠이 없었기에 살아남는다(단 6:22). 그의 공적인 온전함과(6:3-4) 사적인 온전함으로(6:10) 인해, 결국 그는 사자굴과 거짓말하는 자들로부터(6:22) 구원받는다. 그러나 다니엘의 적들은 온전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며(6:26-27) 다니엘이 영화롭게 되는 6:28) 반면에, 그들은 사자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6:24).

       다니엘의 순전함이 현실성 없는 이상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을 받는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흠없이 살기를 추구하는 것은 훌륭한 영적 실천이다.

       (7) 구체적으로 희망하라

       다니엘서의 후반부는 묵시적인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니엘은 이상을 보고 해석하는 자로 나타나지만, 앞에서(1-6장) 보여준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국가들 간에 다툼과 전쟁 등의 정치적인 변혁을 보여 주기도 한다. 후반부의(7-12장) 메시지 역시 앞의 이야기들과 유사하다. 하나님이 개인의 삶을 다스리듯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과 동행하신 그 하나님이 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모든 사람을 의와 평화로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3. 나가면서

       이 장들에서 희망이란 추상적으로 나타나는 달콤한 미래 같은 것이 아닌 구체적인 것이다. 희망은 말하는 내용에 있어 혹은 그것을 전해 듣는 사람들에게 있어 정치적이고, 우주적이며, 실질적인 것이다. 희망은 포로생활을 하던 사람, 특별히 다니엘같이 왕궁과 왕의 권력에 접근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말을 건넨다. 희망은 그들에게 그들의 영 적인 실천이 쓸데없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영성 훈련 그 자체는 구원을 가져올 수 없지만, 훈련을 통하여 만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다. 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바르게 하실 분으로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 왕은 세워졌다가 폐위되며 왕국은 망하고 흥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계신다.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 제임스 M. 랜드(James M. Rand)

    은혜 속에서 회복될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라.

     

    4. 다니엘서 연대기

    • BC 605년 : 바벨론의 1차 침입(1차 포로),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감
    • BC 598년 : 바벨론의 2차 침입(2차 포로)
    • BC 586년 : 유다의 멸망, 예루살렘의 함락
    • BC 580년 : 다니엘의 풀무 불 위기(단 3:19-25)
    • BC 562년 : 느부갓네살의 사망
    • BC 559년 : 바사의 고레스 즉위
    • BC 550년 : 다니엘의 네 짐승 환상(단 7:1-8)
    • BC 539년 : 고레스의 바벨론 점령(단 5:30)
    • BC 538년 : 다니엘의 사자굴 위기(단 6:16~24)
    • BC 530년 : 다니엘의 사망

     

    5. 더 읽으면 좋은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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