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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신구약성경 주석 내용요약

26. 에스겔서 내용요약 설교자료 주석, 묵상 가이드

by OTFreak 202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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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6. 에스겔서 내용 요약 설교자료 - 주석, 묵상 가이드 

    에스겔의 환상

     

    1. 들어가며

       에스겔은 BC 586년의 대변동 시기를 겪었다. 당시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은 바벨론 사람들에게 완전히 파괴당했고 그 주민들은 유배되었다. 제사장 에스겔은 BC 598년 예루살렘이 처음으로 점령당한 직후 2차 포로 이송 때 바벨론으로 잡혀갔다. 그는 억류자 보호 구역인 그발강 가에서 유배자들의 선지자가 되었다.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했고 학살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다. 그들은 전쟁에 상처 입은 도망자들이 되어, 자신들의 평범한 삶을 덮친 공포에 멍하니 넋을 잃고 있었다. 에스겔이 생생하게 묘사한 폭력 장면은 상대적으로 안락하게 사는 오늘날의 신자들을 심란하게 만든다. 하지만 공포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지울 수 없는 그들로서는 이러한 묘사가 우리가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보다 더 생생하면서도 끔찍하게 다가왔다.

     

    2. 본문

       이스라엘 백성은 유배지에서 ‘그 성이 함락'(33:21, 직역하면 ‘그 도시는 때려눕혀지다' 혹은 '강타당하다'이다)된 뒤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신학적인 문제로 씨름했다. 예루살렘의 종말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의 파괴로 이어졌다. 영적 삶의 훈련에는 성전이 필요했다. 성전 없이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러한 재난을 맞아 바벨론 유배 공동체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포기하고 그들을 사로잡은 바벨론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라는 유혹을 받았다. 에스겔은 그것이 답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보았다. 우리는 에스겔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세상이 설령 큰 재난으로 파괴되고 익숙한 것들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더라도,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미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영적인 일이다.

       설명할 수 없는 사건에 직면한 에스겔은 그가 물려받은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그 이야기가 끝에 이르렀다는 증거를 보자 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셨다는 익숙한 이야기를 다시 찾아냈다. 하지만 에스겔이 그 옛이야기를 다시 했을 때, 그는 전과 다른 기조로 이것을 다룬다. 그가 다시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발견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업적들에 대한 장황한 나열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반역적인 행동들이다(16장; 20장; 23장). 새로운 상황에 직면한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읽으면서 전에 들어 보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발견했다. 회당(synagogue, 직역하면 '모임' 혹은 '회중')의 관습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유배자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성경을 자세히 읽는 모임만큼 가까이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도 삶의 막다른 곳에 이를 때, 유배자들처럼 영성 훈련을 실천하기 위에 그 지나쳐 버린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발견하기 위해 모이게 된다.

       에스겔은 성경을 먹었다(3:1-3).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읽는 것은 육체적인 일인 동시에 영적인 일이었다. 성경은 그의 몸과 영혼의 한 부분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화함으로써 에스겔은 변화되었다. 그의 눈과 귀는 말씀의 영양분으로 새롭게 되어, 자신이 살고 있는 시공간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에스겔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을(2:10) 삼킴으로써, 하나님과 함께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무너진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님을 발견했다. 이는 오래전부터 다가오던 일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배반하고 조롱하여,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 치명적인 종말을 고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방탕했는지 하나님이 나라와 성읍과 성전을 파괴하실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2) 예언 분별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에스겔의 직설적인 말은 그의 동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은 위로가 되는 설교를 원했고 낙관적인 말에 익숙해져 있었다. 에스겔은 이렇게 무리를 즐겁게 하려는 자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처럼 가장하는 자들을 거짓 선지자라 불렀다(13:1-16).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고(겔 13:10-12) 말한다. 유배자들 사이에서는 현실을 부정하려는 마음이 퍼져 있어서 에스겔이 말하는, 이스라엘의 현실과 고통스러운 진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다. 에스겔은 이 두터운 부인(否認)의 벽을 깨뜨리기 위해 극적인 표식들과(4:1-17; 5:1-4; 12:1-16; 21:1-7; 24:15-24) 놀라운 비유들을(23장) 사용했다.

       바벨론 유배 공동체는 가장 어려운 딜레마, 곧 거짓 예언으로부터 진실을 분별해 내야 하는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에스겔의 예언적인 목소리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그의 예언은 모욕적이고 소름이 끼칠 정도여서, 초기에는 어리석은 소리로 취급당하고 거부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포로 시대는 오래 지속되었고 선지자는 사람들 가운데 머무르면서 목숨을 걸고 하나님이 무서운 심판 저편에서 그분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심을 선포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유배자들은 마음을 바꾸어 에스겔의 증언이 진실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영성 훈련에 바탕을 둔 공동체적 통찰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인내해야 하고, 예기치 못했거나 원하지 않은 예언이라 하더라도 열린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

       (3) 어두움은 부흥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에스겔이 직면한 이스라엘의 가장 큰 영적 문제는 진실을 부인하는 것이었다(1-24장). 유배 공동체는 하나님의 의로운 분노에 담긴 진실을 볼 수 없었다. 이후에 자신들의 문제의 근원에 눈을 뜨게 되지만, 이제는 절망 때문에 귀가 멀어 버리게 된다(33-48장). 유배된 하나님의 백성은 다음과 같이 말할 때에야 비로소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쇠퇴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겔 33:10)

       진실을 말하는 것은 언제나 치유의 여정을 걷는 첫 걸음이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엄청난 잘못을 깨닫기는 했지만, 이를 만회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에스겔은 다른 것을 보았다. 그는 주의 길로 돌이키는 순간 하나님과의 새로운 삶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다. 성전도 없이 희생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체제에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또 이웃과 더불어 바르게 살겠다는 개인적, 공동체적 결단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순종으로 돌아서는 백성이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 18:32)

       바벨론 유배 기간 중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백성은 하나님을 부인함으로써 숨막히는 절망을 경험해야만 했다. 이 처절한 상황이 에스겔서와 영성 훈련의 핵심인 '거듭남'을 위한 놀라운 반전의 조건이 된다. 이곳에서 교회 의식 가운데 깊이 뿌리 박힌 '십자가식’ (cruciform pattern)의 변화가 일어난다. 예배는 하나님을 부인했던 백성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실한 고백으로 시작된다. “퀴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주여 자비를 내리소서")을 부를 때, 유배의 절망감을 담은 개인적, 공동체적 부르짖음이 필요하다. 그때 놀랍고 예기치 못한 말씀이 전해진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6, 28)

       이처럼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의 말씀은 유배 공동체에게는 심판의 말씀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었다. 그들은 생명이나 활력의 원천을 갖지 못했다. 부흥을 위한 어떤 방법이나 개선을 위한 어떤 기법도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그들이 말한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는(겔 37:11) 고백은 진실이었다. 새로운 미래는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선물을 통해서만 가능할 뿐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 37:5)

       신비롭게도, 부활에 대한 예언적 환상은 그 자체가 유배된 백성의 마른 뼈에 생기를 주는 첫 호흡이었다. 새로운 미래는 사망의 위세 앞에서 과감하게 대안을 제시한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4) 하나님 임재에는 거룩하심의 위험과 경이로움이 있다

       에스겔의 제사장다운 환상을 주목하지 않고 에스겔서를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임재는 거의 육체적인 실재였다. 그는 성전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 (히브리어로 ‘카보드’, kavod, כבוד)을 눈과 귀를 멀게 할 것 같은 힘으로 표현했다(1:4-28). 에스겔이 예루살렘 함락이라는 참사를 그릴 때,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것과 하나님께 서 자기 백성의 거룩한 곳을 버리시는 것으로 묘사했다(8:6; 10:18-19; 11:22-25). 에스겔이 미래를 보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돌아와(43:1-5) 대지를 적셔(47:1-12) 그 도시가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 라고(겔 48:35) 불리는 날을 어렴풋이 보았다.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에스겔에게 있어 경이롭고 압도당할 만한 경험이었다(1:28; 43:3).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가깝게 살고 그분의 거룩한 실재를 다루는 것에 익숙했다.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거룩하심을 안전하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고압의 전류나 핵방사선같이 하나님의 임재와 인격의 징후였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들은 반드시 회선에 과부하가 되거나 치명적인 오염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에 내린 심판과 성전의 파괴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무시한 결과임을 알았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사로 여겼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와 같은 슬로건 정도로 하나님을 격하시켰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유를 주셨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경외심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하나님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판단해 버린 성품들 외에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마치 그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통제하거나 조종할 수 있는 소유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에스겔은 이를 우상숭배라고 칭하며 혐오스러운 짓이라고 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은 에스겔의 제사장적인 언어가 시대에 뒤떨어진다며 보다 나은 신학으로 대체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삶의 영성 훈련들, 곧 기도, 말씀, 예배, 금식, 접대 등은 우상숭배적인 과학 기술에 유혹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통제할 수 없고,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거듭 생각나게 한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죽음 너머의 새 삶을 주신다고 선언한 다. 이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이름과 거룩한 명성을 지키시기 때문이다(36:22-32). 결국 하나님의 백성의 부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결과다.

     

    에스겔은 암흑의 시대 속에서 성경이라는 등불을 다시 발견했다

     

    3. 나가면서

       다음은 에스겔서에서 '현대의 유배'를 발견한 미국 흑인 영가의 고백이다. 그 영가는 “하늘 가운데에 굴러가는 바퀴 안에 바퀴”(wheel within a wheel a-rolling way in the middle of the sky)로, 그들은 고향을 멀리 떠나 노예가 된 백성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믿음과 은혜의 원천'(믿음으로 굴러가는 큰 바퀴, 하나님의 은혜로 굴러가는 작은 바퀴)이라고 노래한다. 그들은 “그 쓸모없는 뼈들이 다시 일어날 것이다”라는 놀라운 확신 속에서 살고 있다. 이 노래에서 우리는 포로기 시대에 외친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형성된 유다인과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영적 자아를 살펴볼 수 있다. 교회는 언제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고난의 끔찍한 금요일(Good Friday)과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일(Easter's Sunday)의 경이로운 아침 사이에 있다. 이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포로 시대에 진리와 부인(否認), 소망과 절망 사이에서 긴 거룩한 토요일(Holy Saturday)을 보냈던 백성이 떠오른다. 하나님의 영광이 멀리, 아주 멀리 떠난 상실의 계절에 하나님의 백성은 에스겔처럼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부름을 받는다. 거기 담긴 진리를 소화하고, 그것으로부터 얻는 영양가 있는 소망으로 기운을 낼 수 있도록 말이다.

     

    4. 에스겔 연대기

    • BC 609년 : 여호야긴 왕의 즉위
    • BC 605년 : 바벨론의 1차 침입(1차 포로)
    • BC 598년 : 바벨론의 2차 침입(2차 포로)
    • BC 597년 : 여호야긴, 에스겔이 포로로 끌려감
    • BC 593년 : 에스겔의 예언 시작
    • BC 586년 : 유다의 멸망, 예루살렘의 함락
    • BC 570년 : 에스겔의 사역 종결

     

    5. 더 읽으면 좋은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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