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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신구약성경 주석 내용요약

24. 예레미야서 내용요약 설교자료 - 주석, 묵상가이드

by OTFreak 202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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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4. 예레미야서 내용 요약 설교자료 - 주석, 묵상 가이드 

     

    1. 들어가며

       고통의 시기에는 한숨이 나오고 답답한 말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공동체는 뜻하지 않은 타격을 입고 고통받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왜?”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만일 그 공동체가 신앙 공동체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속에서 어떠한 일을 행하시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것이다. 이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믿음의 공동체가 가질 수 있는 아주 근본적인 목회적 질문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삶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예상치 못한 전쟁과 테러 그리고 천재지변으로 인 한 고통, 혹은 소외와 박탈이 난무하는 상황 가운데 살고 있는 교회라면,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입에 쓰고, 귀에 거슬리는 말일지라도 흘려버려서는 안 된다.

       첫 구절에도 나와 있듯이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의 말들', 곧 성경 가운데 가장 감명 깊고 비통한 말들을 담고 있다(물론 예레미야의 말들'이라는 표현이 결국 예레미야가 말하도록 만든 '여호와의 말씀'이다). 예레미야의 말들에는 많은 상징과 은유, 예언이 담겨 있다. 이는 매우 격양되고 감성적인 말들이다. 예레미야와 같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사회 개혁가들, 미래의 예견자들 또는 급진적인 좌파들로 구분짓곤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그들은 시인이었다. 말과 생생한 은유 그리고 시적인 직유를 통한 심오한 희망과 극한 공포 그리고 울부짖는 신앙이 우리 마음을 울리게끔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유다의 마지막 네 왕들의 통치기에 일어났다(1:1-3). 그러므로 예레미야서는 마지막에 관한 책이다. 옛 시대는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아직 임하지 않은 때에 신앙 공동체가 생각하는 바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책 안에는 유다 백성이 종말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좌절하고 포기하며 내뱉는 한탄과 비탄이 짙게 배어 있다. 한편 예레미야서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유다의 상처가 또한 가득하다. 오래전부터 예언하고, 또 여러 차례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크셨던 것이다. 우리 역시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예레미야서는 상실과 비탄에 잠겨 있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 시대는 포기와 혼란의 시대다. 거짓 신들이 우리의 상상력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고 있다. 잘못된 우리의 희망들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암울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붙잡을 수 있는가?

     

    2. 본문

       (1) 예레미야 시대의 위기와 비극을 이해하기 위한 책

       예레미야 시절, 신앙 공동체가 얼마나 큰 위기에 직면해 있었는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매우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시기였음은 알고 있다. 유다는 '북방의 적'인 바벨론 제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았다. 그리하여 BC 597년에 예루살렘은 함락되었으며, 586년에는 나라가 초토화되었다. 성읍들은 훼파되었고 국가로 다시 서리라는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유다 백성의 신앙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감으로써 위기를 맞았다. 이러한 총체적인 비극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는가?

       예레미야서는 포로들, 곧 자신들의 고향과 미래를 잃은 백성 그리고 그들이 처한 그 당시의 시대를 이해해 보려는 백성들이 쓴 문헌(literature)이다. 그 신앙 공동체는 그들이 경험한 비극을 이해하기 위하여 현 상황에 대한 예레미야의 해석뿐만 아니라 그가 퍼부었던 비판들도 활용했다. 예레미야 4:13-18과 26:1-6과 같은 본문은 예레미야가 공동체의 슬픈 현실을 신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했는지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가장 올바른 교회란 끊임없이 하나님께 질문을 제기하면서 신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공동체다. 따라서 우리 는 단순히 “이 일이 왜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을 하기보다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은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라고 물어야 한다.

       예레미야는 우리의 현시대와 놀라우리만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고향의 상실(homelessness)은 우리 시대에 대한 일종의 은유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뿌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미래는 불확실하고, 현재는 두려우며 과거의 죄악들에 여전히 매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때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교회는 이제 한 귀퉁이로 내몰린 실정이다. 예레미야 당시의 사건들을 이해시키려는 예레미야의 말들을 통해 오늘날의 신앙 공동체는 우리 시대의 신앙적인 도전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텅빈 거리와 같이 우리의 영혼도 비어 있는 것은 아닌가?

     

       (2) 다양한 글의 양식으로 결합된 책

       예레미야서가 구약성경 가운데 가장 감명적인 문헌(literature)이라 하더라도, 예레미야서를 읽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예레미야서는 때때로 시문에서 전기문으로, 역사에서 기이한 환상들로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무질서해서 쉽게 분간할 수 있는 구성이나 줄거리가 보이지 않아 보인다. 계시와 탄원, 설교, 전기, 편지 등의 다양한 글의 양식이 서로 결합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서는 마치 청중에게 이야기하듯 의도적으로 기록한 부분도 있다. 왜냐하면 선지자는 때로 왕들에게, 때로 다른 이방 민족들에게, 때로 하나님께, 때로 온 백성들에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시간과 공간 안에서 대화의 일부인 구성원이 될 수도 있다.

    예레미야서는 일단 산문으로 시작한다(1:1-3), 이름들과 연대가 포함된, 일종의 전기문을 읽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하지만 이후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는(렘 1:4) 말로 산문은 끝나고 시문으로 전환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생생한 말씀 안에서 하나님이 엄습하시는 극적이고, 격동적인 세계로 유영(遊泳)하듯이 빠져든다. 예레미야서 대부분의 시문들은 1-25장과 46-51장 안에 모여 있다. 그리고 그 시문의 대부분은 하나님이 신앙 공동체에게 직접 '나는...'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언적인 계시와 시문의 형태로 되어 있다. 이 계시들은 대부분 법정에서 밝혀지는 고발 내용과 비슷하다.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불만을 품으시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그 불만을 공포하신다.

       예레미야서 안의 대부분의 연설들은 거칠고, 솔직하고, 비판적이다(오늘날에는 맹렬하고 비판적인 연설을 jeremiad 〈비탄/하소연>라고 한다). 현대 교회에서 예레미야와 같이 말하는 목자를 만나기란 어렵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좀 더 부드럽고 위로를 주는 잔잔한 설교를 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레미야서 안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품고 계신지에 대해 말씀하시는 놀랄 만한 아름다운 부분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예레미야서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가혹한 심판과 비난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스라엘을 판결하시는 하나님은 과거에 맺은 언약 공동체에게 위대한 일을 행하셨고, 지금도 그 일을 지속하길 원하신다. 예레미야 또한 백성들에게 복된 말을 선포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나무라시는것은 다시 승리케 하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다.

       많은 사람들은 예레미야서가 일관성이 없이 불협화음을 낸다고 주장해 왔다. 사실 예레미야서 안에는 상이한 목소리들이 존재한다. 시문은 산문과 상충된다. 어떤 부분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구성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어둡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만들어진 문헌(literature) 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예레미야가 희망과 절망 사이를 왔다 갔다 했듯이, 우리도 마치 국가적인 충격에 직접 반응하는 것과 같이 읽어 내려가야 할 것이다. 우왕좌왕하는 이러한 서사(敍事, narrative) 형식은 백성들이 얼마나 심하게 동요했는지 보여 주는 정확한 묘사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난 말씀과 하나님께로 향한 말씀들이 있는데, 교회에서 그대로 사용해도 될 만큼 말이 정제된 것들은 아니다. 좀 더 강한 억양으로 표현한 말씀들도 있는데, 이는 고상한 종교적인 감정보다는 마음속 깊은데서 우러나오는 느낌을 정직하게 표현했다고 본다.

       예레미야는 완전한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순종과 강한 항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그는 때때로 희망을 포기하고, 다시 그 포기를 취소하고, 또다시 그 대화를 황급히 끝내곤 한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구절에서 대화를 다시 시작하고 논쟁을 하며 다시 선포하기 시작한다. 예레미야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하루는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희망과 확신이 넘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다른 날은 고독과 절망을 느끼곤 한다. 예레미야서는 성경 가운데 가장 정직하고 우리에게 계시하는 바가 큰 책이다. 예레미야서는 세련된 피상적인 연설도, 만인을 웃기고 긍정하게 하고 격상시키고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는 내용도 아니다. 신앙 공동체를 사랑과 희망 뿐만 아니라 진리와 현실주의의 공동체로 부르시는 하나님과 정열적이고 정직한 관계를 맺도록 초대한다. 예레미야서는 진정한 영성 개발 작업에서 핵심 역할을 할 만한 책이다.

     

       (3) 위대한 소명, 어려운 책임을 일깨우는 책

       예레미야서 안에 나타난 고통과 비극의 신학은 현재 우리의 신학적인 상황 안에서도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는 사회적인 비극에 직면할 때면 언제나 이렇게 묻는다. “왜, (우리 같은)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는 스스로를 죄 없는 희생자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신체적인 아픔이나 건강의 위기 그리고 개인적인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 종종 그러하다. “하나님, 왜 나입니까?

       예레미야는 고통받고 굶주린 포로 이스라엘에게 반복적인 후렴구로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현재 받는 고난은 당신들이 과거에 신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하나님은 당신들에게 열방을 향한 위대한 사명을 부여하셨다. 위대한 소명에는 위대한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사명을 저버리고 거짓 신들을 좇음으로 그 사명을 가벼이 여겼기 때문에 파멸할 것이다. 당신들이 받는 고통은 마음 상하시고 분노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형벌이다. 당신들이 정직하게 책임을 지고 회개로써 변화하고 당신들을 사랑하고 창조하신 하나님께 사랑과 섬김으로 돌이키기 전까지 회복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오늘날 많은 교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번영의 복음'(prosperity gospel)과는 진정 거리가 멀다. 예레미야의 선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요구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임을 기억나게 한다. 또한 우리의 공동체가 이스라엘을 계승, 곧 하나님과 대화하며 그분에게 봉사하는 위대한 백성을 계승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예레미야와 하나님이 나누는 대화는 때로는 뜨겁고 정열적이고, 때로는 적대적이고 비난조이고, 때로는 감동적일 만큼 아름답다. 여기서 하나님은 신앙공동체를 위해서 정열적으로 일하시고 또한 그 공동체의 배신으로 인해 심하게 상처받으신다. 그분은 그저 규칙대로 처리하고, 이스라엘을 열방들과 동급으로 여기시는, 냉담하고 객관적인 천상의 정치가가 아니다. 그분은 언약 공동체를 애굽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시고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수여하시고 열방의 빛이 되라는 사명을 맡기시는,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한 공동체에게 심판이라는 어려운 말을 하기에는 너무나 어린 선지자 한 사람이 등장한다. 예레미야는 권고를 받고 사명을 받아 말하도록 부름을 받았기에 선포한다. 그는 자신이 하고픈 말을 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이 그 공동체에게 하시고자 하는 바를 선포했다. 자, 그렇다면 이러한 신실한 하나님의 선포에 대하여 신앙 공동체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대부분 거절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요구와 신실하지 못한 공동체의 회피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끼인 상황이었다. 예레미야는 신앙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며, 그가 들은 바를 선포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그는 공동체로부터 무시당하고 고통을 받았다. 만약 오늘날의 신앙 공동체에서 예레미야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 있다면, 예레미야의 삶을 통해 현재의 분투에 대해 큰 위로를 받을 것이다.

     

    3. 나가면서

       자, 이제 스스로에게 몇 가지 물어 보자. 당신은 현대 신앙 공동체가 예레미야가 전했던 진리의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대언자(代言者)들이 정직하게 말하는가? 자신은 그저 무죄한 희생자로 뜻밖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자기 연민으로부터 벗어나서, 스스로를 엄청난 위기로 몰아넣은 도덕적인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

    - 윌리엄 H. 윌리몬(William H. Willimon)

     

    4. 예레미야 연대기

    • BC 640년 : 요시야의 즉위(왕하 22:1)
    • BC 627년 : 예레미야의 사역 시작(렘 1:1)
    • BC 622년 : 요시야의 종교 개혁
    • BC 602년 : 여호야김의 반바벨론 정책
    • BC 601년 : 애굽과의 재동맹(렘 2213-17)
    • EC 597년 : 시드기야의 즉위(대하 36:11)
    • BC 586년 : 유다의 멸망(왕하 258), 예레미야의 사역 종결(렘 39:118)

     

    5. 더 읽으면 좋은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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