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공부/신구약성경 주석 내용요약

9. 이스라엘을 초월하여 일하시다 ②

by OTFreak 2020. 9. 19.
반응형

9. 이스라엘을 초월하여 일하시다 ②

목차

     

    9. 이스라엘을 초월하여 일하시다 ② 

    왕에서부터 백성까지, 모두가 우상숭배하다

    (앞의 글에 이어서 계속)

     

    9. 이스라엘을 초월하여 일하시다 ①

    목차 9. 이스라엘을 초월하여 일하시다 ① 1. 성경 본문  열왕기상 12장-열왕기하 25:10, 역대하 10장~36:19, 이사야, 예레미야 1~36장, 호세아, 요엘, 아모스,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2. 들어�

    otfreak.tistory.com

     

    (3) 하나님이 온 세상을 품으시다.

       이스라엘의 국가적 연속성과 정체성에 도전하는 외세의 침입을 통해 우리는 개인과 가족, 지파, 국가를 초월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민족과 국가 그리고 이방인들을 통해서도 일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고 징계하시기 위해 이방 나라들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의 방망이가 이스라엘과 유다를 괴롭히는 나라들의 손에 들려 이스라엘 백성에게 휘둘려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테두리를 넘어 모든 열방을 포함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시고 새롭게 정의하셨다. 실로 하나님은 모든 곳에서 일하신다.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이시며 땅의 하나님 이시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숙한 인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특정 문화나 민족에 지나치게 유착된 종교와 윤리는 거부해야 한다. 당시에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복이었다. 구약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등장인물들 가운데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들이면서 민감한 영적 감수성을 보이는 선한 사람들이 있다.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요나 3:6-8, 개역개정 성경).

       니느웨 사람들은 왕으로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회개함으로 용서를 받고 파멸의 위기에서 구원받았다. 그러나 요나의 불평이 입증하듯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모든 민족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흐름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들을 구별하고 있다. 심지어 다윗이 세운 신정국가와 뒤이은 왕조도 하나님의 나라와는 구별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대해 신실한 사람들 모두에게 주시는 아주 특별한 혜택이다. 나중에 예수님의 사역으로 분명하게 밝혀지겠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 정치와 종교적인 제도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요 18:36)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 등을 돌린 반역의 시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개념이었다.

       하나님은 고독한 선지자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이라는(겔 18:27)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하셨다. 심지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세우심으로써 하나님의 임재가 계속 중재되고 있음을 밝히셨다. 성전과 이곳에 상주하는 성직자, 이를 후원하는 왕정(王政)은 이스라엘의 민족 공동체가 포괄적인 공동체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어 필수 구성 요소들이다. 그러나 태초부터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했던 각각의 사람들은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 가운데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왕국의 안전이 위협받던 시기에 주신 또 하나의 복은 여러 세대에 걸친 율법에 대한 연 구와 순종으로 영성을 개발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연구와 순종을 통해 많은 개개인이 진정한 신자들과 남은 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인 격으로 성숙되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체계적인 영적 훈련이 대중화되었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특정한 지파, 성전에서의 직위 혹은 특정 사회계층에 제한되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보잘것없는 목자이면서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인 드고아의 아모스를 부르셔서 이스라엘과 그 제사장들에게 임할 임박한 심판을 선포하게 하셨다(암 1:1; 7:14). 또한 제사장 반열(班列)의 예레미야를 부르셔서 유다와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과 함께 회복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

    “보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며 네 자손을 포로 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평안하며 걱정 없이 살게 될 것이라 그를 두렵게 할 자 없으리라”(예레미야 46:27, 개역개정 성경)

       하나님과 함께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

     

    (4) 듣지 않는 자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경멸과 거절, 무시와 침묵 그리고 결국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보게 된다. 점점 더 열악해지는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상황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파송된 사자(使者)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부랑자나 매국노, 심지어 원수라고 비난받았다. 사람들에게 열렬히 환영받고 사랑받았던 거짓 선지자들과는 반대로 하나님의 사자들은 후원은커녕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외톨이였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거짓 위안에 솔깃했다. 그러나 호세아나 아모스 같은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처한 국가적, 종교적인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한다.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호세아 10:13, 개역개정 성경).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아모스 5:21-22, 개역개정 성경). 사람들은 선지자들이 선포하는 가혹한 예언의 말씀에 직면하기보다는 기분 좋게 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로 위로받기를 택했다. 정도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도(引導)와 훈육 (訓育)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선지자들의 말씀을 경청하기보다는 그들의 입을 막음으로써 잘못을 바로잡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키려고 한다. 그러는 동안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기득권층은 거짓 선지자들을 지지함으로써 진정한 예언을 막으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외로운 선지자들이 선포한 메시지는 무시되고 왜곡되었다. 수 없이 반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오히려 권위만 실추될 뿐이었다. 미가야가 길르앗 라못에서 아합의 죽음을 예언했을 때 아합은 그를 감옥에 가둬 버렸다.

    “이놈을 옥에 가 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이라”(열왕기상 22:27-28, 개역개정 성경)

       또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거짓 선지자들까지도 반박했다. 이제 선지자들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연장선에서 장차 오실 메시아로 그 중심을 옮기고 있다. 이사야, 예레미야, 요엘, 아모스, 미가 나훔, 스가랴 말라기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선지자들은 포로기의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신앙의 모범을 제시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미래를 내다보며 “손대지 아니한 돌이...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라고(단 2:31-35) 말한다.

     

    (5) 진정한 영성 개발을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당시 선지자들의 상황이 지금과 비슷하기 때문에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우리의 영성 개발을 위한 좋은 예가 된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했고, 사회의 주류 문화가 선지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원치 않았을 때에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올바른 지침을 제시했다.

       첫째, 의(義)란 의식적(儀式的)이고 기계적인 율법의 준수가 아니라 믿음으로 새롭게 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형식적인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언약의 갱신(更新) 에로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은 외형적인 희생 제사나 형식적인 순종이 아니라 정의와 자비 그리고 사랑을 요구하신다.

       둘째,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께 저항할지라도 그분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기로 작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을 잊기로 한 사람들에게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전달했다. 이제 하나님은 강력하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멸시받고 천대받는 종의 모습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오시기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다.

       셋째,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실 때에도 그리고 이스라엘이 주변 강대국에게 정복되어 고국에서 추방되었을 때에도 그들과 함께하셨다. 또한 선지자들이 심판과 구속을 선포하며 형식적인 예배와 불의한 행위를 비판할 때도, 백성의 악행과 불신앙의 죄를 규탄하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며 살육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를 선언할 때도 언제나 함께하셨다.

     

    4. 나가면서 

       진정한 선함은 체계적으로 정돈된 내적인 생활에서부터 나온다. 인격의 성숙은 굳이 나타내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난다. 본문에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동안 드러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과 사악함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그 모습에 낙담하기보다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인격의 성숙과 변화의 필요성을 우리가 얼마나 빨리 그리고 쉽게 잊어버리는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5. 더 읽어보면 좋은 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