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공부/신구약성경 주석 내용요약

23. 이사야서 내용요약 설교자료 주석

by OTFreak 2020. 9. 18.
반응형

23. 이사야서 내용요약 설교자료 주석

목차

    23. 이사야서 내용 요약 설교자료 주석 

     

    1. 들어가며 

       이사야서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와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 더 나아가 우리들의 신앙에 대해 선지자의 입장에서 묵상(默想)한 책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서를 읽을 때는 예루살렘의 중요성을 신앙적으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거주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성전이 있는 곳이며, 하나님의 약속과 계명들을 부여받은 다윗 왕조의 근거지다. 이스라엘의 상상력과 우리의 믿음 안에서 볼 때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는 심오한 신학적 깊이와 중요성으로 채색되어 있다.

     

    2. 본문 

      예루살렘은 현실 정치들이 집행되며, 국제적인 분규의 원인으로 간주되고, 군사 적 모험주의의 유혹에 휘둘린 도시 문명의 중심지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계속 위험에 노출되었고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항상 위협을 받았다. 이사야서에서 다뤄지는 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차례로 앗수르 제국(BC 745-712년), 바벨론 제국(BC 615-540년) 그리고 바사 제국 (BC 540-333년)의 영향을 받는다. | 이사야서를 읽을 때 분명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예루살렘의 신학적인 현실과 정치적 현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이 예언 전승(傳承)은 이사야 시대 훨씬 이전부터 이스라엘의 기억 속에 존재해 오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관련하여, 도시적 삶의 현실을 상상력이 넘치는 시적인 방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사야는 우리로 하여금 결코 쉽지도 않고 명백하지도 않은 삶과 믿음의 상 호 관계를 연구하게 한다.

    이사야 6장, 이 숯불을...

     

    (1) 약속과 심판의 책

       시적이며 상상력이 넘치는 이사야의 예언 전승은 어떻게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예루살렘의 운명을 재해석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이사야서에서는 두 가지의 신학적 어조(語調), 곧 약속과 심판의 어조가 서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성전과 다윗 왕조를 위해 예루살렘을 보호하고 지키실 것이라는 깊고 영속적인 언약을 하셨다. 이 언약의 주제는 이사야서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심오하며 무조건적인 언약으로 이해되고 있다(2:2-4를 보라). 일부는 다윗 왕조 때에 실현되었다(9:2-7; 11:1-9에서처럼). 그러나 다윗 왕조가 끝난 후에는, 여호와께서 직접 개입하심으로써(65:17-25에서처럼) 혹은 유다인이 아닌 바사인 고레스를(45:1) 통하여 실현하기로 예정된 약속들을 이루어 주신다.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언약 성취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며 그 어떤 역사적 변동도 이 거룩한 언약의 궁극적 성취를 좌절시키거나 파기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예루살렘은 BC 701년에 앗수르 군대의 위협에서 실로 '기적적으로' 구출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들이 확증된 것처럼 보였다(37:33-38).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경외심을 느끼고, 경탄할 따름이다.

       이사야서에는 또 하나의 주제가 담겨 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채 여호와의 심판으로 끊임없이 위험 속에 내던져진 도시였다는 의식(意 識)이다. BC 701년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있은지 100년 후, 예루살렘은 바벨론에게 처절하게 유린당하고 예루살렘의 지도층 거민들은 국외로 추방당했다. BC 598년과 BC 586년에 일어난 바벨론의 침략 이후,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성읍의 모든 흔적을 잃어버린 채 초라하고 불안정한 공동체로 전락했다. 그 초라한 영락(零落)과 실패의 시기에, 이사야서는 예루살렘에 대해 깊이 생각하되 예루살렘의 쇠락을 슬퍼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사야서는 다시 부흥하고 재건되어 소생의 활력이 넘치는 예루살렘을 예견한다.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이사야서의 낙관적인 기대는 현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신뢰할 수 있으며 항상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약속들에 근거한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

    (2) 이사야서의 구조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과 약속이라는 주제는 이사야서 전체에 나타난다. 이 주제들은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을 제시해 준다. 이와 같이 우리의 가장 깊은 믿음의 확신은 삶에서 경험한 현실과 끊임없이 연결된다. 크게 보면 이사야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 1-39장은(그중에서도 1-12장; 28-31장: 36-39장) '상실'(loss)에 관한 내용으로 BC 8세기 선지자 이사야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장들에서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불신앙으로 비롯된 경제적, 군사적 정책들을 심판하실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 주제를 생각하면서 세상에서 즐겨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알 수 있다.

    40-66장은 '희망' (hope)을 선포한다. 이 희망은 BC 6세기에 시작된 바벨론 포로살이가 곧 끝날 것과 예루살렘의 빠른 회복이 영화롭게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래서 이사야 40-55장은 바벨론 포로들의 영예로운 귀환을 예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희망을 다루는 56-66장은 귀환한 포로들이 예루살렘을 신실하게 재건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갈등과 분투(奮)를 반영한다. 특히 56장에서 촉구한 이방인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여호와의 총회 안에 포용하자는 포용주의와 58장에서 주창(主唱)된 이웃 사랑의 도(道)는 믿음이 요구하는 도덕적 요구들과 믿음 안에서 허용되는 것들에 대한 중요한 비전 (vision)을 보여 준다. 이러한 자료에 대한 연구는 우리에게 희망의 근거를 제공한다.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언젠가 우리에게 주실 영광스러운 미래를 기대해 보자.

     

    (3) 1-39장과 40-66장 사이의 간격 이해

       이사야서를 1-39장과 40-66장,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은 39: 8과 40:1 사이에 어떤 간격(gap)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바로 예루살렘이 무너져 있었던 200년이라는 역사적 간격이다. 또한 구두(口頭)로 선포된 예언을 새로운 형식의 화법, 곧 문어체적 강론으로 바꾸는 문학적 간격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도해 주는 신학적 간격이다.

       1-39장과 40-66장의 대부분을 각각 차지하고 있는 '심판'(judgement)과 '희망'(hope)이라는 주제는 이사야서 전체에 걸쳐 보다 적은 범례들 안에서 반복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사야서 본문을 통해 우리의 일상적 삶을 읽다 보면 '심판'과 '희망'은 우리에게 큰 중심축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1-12장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집요한 심판 메시지가 2:2-4; 4:2-6; 9:2-7에 나오는 반면, 11:1-9에서는 하나님의 약속들에 의하여 심판의 메시지가 중단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최후 말씀은 항상 약속의 말씀이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그 약속의 말씀은 심판을 대신하는 말씀이 아니라 심판 이후에 오는 말씀이라는 점이다.

       초대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이사야서의 특별한 중요성과 유익을 발견한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통해 이사야서를 읽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 신앙이 이사야 본문들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알 수 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감동하심 아래 해석하여 이사야서의 예언 전승이 예수님을 증거 하는데 특별히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두 가지 주요 논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이사야 9:2-6의 왕을 위한 계시(oracle)'는 기독교적으로 쉽게 읽히며 따라서 그 시에 나오는 '우리에게 주신 바 된 아들은 바로 앞으로 오실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 (Son of God)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로 읽힌다(마 4:15-16을 보라).

       둘째, 52:13-53:12에 나오는 '종의 노래' (the Song of the Servant)는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고난 받는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행 8:32-33을 보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특정한 본문들을 넘어서 이사야 1-39장과 40-66장이라는 이중적인 구조에 반영되어 있듯이 심판과 희망, 유배와 귀향이라는 이중적 메시지는 기독교적으로 읽힌다. 심판과 희망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豫表)하는 역사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 이야기는 예루살렘 이야기를 되풀이 하는 셈이다. 기독교 신앙과 예배에서도 먼저 '상실'(loss, 성 금요일의 십자가 처형)에 초점을 맞추고, 그다음에 새 일' (newness, 부활절 아침의 부활)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이사야서에서 기술된 예루살렘의 구체적 현실을 기독교적으로 나사렛 예수를 위한 예표라고 읽는 것은 쉽다. 이렇게 읽으면, 예루살렘은 구체적 현실을 빼앗기지 않으면서도 은유적인 방법으로 기능하게 된다. 단지 문자적 해석으로부터 은유적 해석으로 전환한다면 우리 같은 신앙인들은 예루살렘의 이미지를 더욱 확장시킬 수 있다. 마침내 '예루살렘'이라 는 암호(cipher)는 단지 이스라엘의 고대 도시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요, 이차적으로 예수님의 인격을 표상하는 것만도 아니며, 한 단계 더 추론하여 '예루살렘'이라는 암호는 어떤 중심적 상징의 체제, 곧 정치적, 경제적, 심리적 혹은 종교적 체제를 표상하는 은유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해석적인 유추의 관점에서 보면, 예루살렘에 초점을 맞춘 이사야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의 신앙에 목회자와 같은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가장 좋은 역사적 보물들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사실과 신실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됨으로써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되돌려 받고자 이러한 보화들을 마땅히 포기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이사야는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일들에 강력하고 단호하게(비록 비밀스러운 방식이라 할지라도) 관여하심을 보여 준다. 우리가 이것을 수용한다면 개인적 그리고 공적인 삶에서 공히 하나님의 임재와 목적을 반대하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우리 능력으로 해낼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이사야서를 해석하면서 여호와의 '종'에(42:1-9; 49:1-7; 50:4-11; 52:13-53:12) 대해 말하는 네 편의 예언시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는 이 예언시들이 말하는 ‘종'(servant)이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종인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할지라도 이 예언시들이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았다. 한편 상실과 희망을 다루는 이 시들은 우리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시들에 등장하는 종처럼 우리는 상실과 희망의 한복판에서 세상을 변혁시키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실행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미래는 단지 하나님의 선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부여된 과업이기도 하다. 이사야의 예언 전승은 다윗과 같은 왕(Davidic king)의 인간적인 업적과 바사 왕의 업적 그리고 연약한 자와 소외된 자들까지 포용하려는 공동체적 포용성(包 容性)과 이웃 사랑으로 운영되는 공동체를 꾸려 가야 하는 인간적 책임에 대해 다양한 성찰(省察)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사야서를 읽으면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부여된 일이 무엇인지 숙고하게 된다. 이사야서는 우리의 사명과 임무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사야서는 우리의 사명과 임무를 '열방을 향한 빛’과 ‘백성들에게 언약하심’(42:6; 49:6을 보라), 사회적 관계들을 변혁시킬 '기름 부음을 받은 자'(61:1-4), 하나님이 주실 새로운 질서에서 '죄를 속하는 힘'이라고 규정한다. 이사야서는 세상 한복판에서 이러한 부르심에 순종하도록 우리를 초청하고 있다.

     

    3. 나가면서 

        이사야서는 자비로운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세상 속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사 43:1에서처럼) 명령을 받고 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부과된 목회적인 현실 둘 다를 증거 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 세상은 '새 일'(new thing)을 행하실 하나님께 속하기 때문이다(43:18-19). 부디 이사야서가 우리가 소명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우리를 능하게 해 주기를! 

    -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4. 이사야서 연대기 

    • BC 790년 : 웃시야의 즉위(대하 26:1)
    • BC 751년 : 요담의 즉위
    • BC 733년 : 르신과 베가의 침입(사 7:1)
    • BC 728년 :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왕하 18:4)
    • BC 722년 : 북이스라엘의 멸망(왕하 17:6)
    • BC 714년 :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입(대하 32:1)
    • BC 697년 : 므낫세의 즉위(대하 33:1) |
    • BC 680년 : 이사야의 사역 종결

     

    5. 더 읽어보면 좋은 글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