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공부/01 창세기 주석및해설

창세기 44장 주석, 설교를 위한 자료

by OTFreak 2020. 9. 12.
반응형

창세기 44장 주석, 설교를 위한 자료

목차

     

    1. 들어가며   

          창세기 44장은 극적인 반전이 시작되는 본문입니다. 베냐민의 자루에 자신의 잔을 의도적으로 넣게 함으로써, 형들의 마음을 요셉은 확인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다는 베냐민에 대한 변호와 담보가 되려고 합니다. 형제들의 고결한 희생과 뜨거운 형제애는 모든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오늘 본문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2. 주석   

     

    (1) 마지막 시험(창 44:1-10)   

       본문은 요셉이 그 형제들을 마지막으로 시험하고 있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1) 시험하는 요셉 

       요셉은 자신이 꾸민 전략대로 형제들의 진실성을 다시 시험해 봅니다. 그는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넣게 했습니다(2절). 베냐민은 요셉과 마찬가지로 한 어머니 라헬에게서 태어났고 요셉이 떠난 후에 야곱의 총애를 받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함으로써 형들의 시기심, 우애, 책임감등을 시험해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 결백을 증명하려는 형들 

       청지기는 요셉의 형제들에게 '어찌하여 악으로 선을 갚느냐?'(4절)라고 문책하였습니다. 이에 그들은 '뉘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우리 주의 종이 되리이다'(9절)라고 하면서 그들은 결백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물론 그 상황이 애매하게 죄인 취급을 당하고도 변명할 여지조차 없게 되어버린 상황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작은 돈 몇 푼에 자기들의 생명과 자유를 쉽게 포기하고 노예의 자리를 택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은 좋으나, 자신의 생명이나 자유를 포기해 가면서까지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 

       결과적으로 요셉의 형들은 애매하게 '악으로 선을 갚는다'는 오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른 길로 가게 하시려고 종종 시험을 주십니다. 그리하여 그 시험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돈(은잔)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밝혔습니다(43:23).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 가운데서도 피할 길을 주시며 은밀한 중에 은혜를 채워주시는 것입니다(고전 10:13).

    유다가 요셉에게 용서를 간청하다

     

    (2) 형제애(창 44:11-17)   

       베냐민의 자루에서 잔이 발견되었을 때(12절) 형제들이 보여준 태도와 반응에서 우리는 그들이 요셉에게 살의를 가지고 그를 팔 때와는 전혀 다른 뜨거운 형제애를 가지고 있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옷을 찢는 형제들(13절) 

       요셉의 형제들은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상황에 직면하여 몹시 놀라며 슬퍼하였습니다. 옷을 찢는 것은 그 당시 근동 지방에서 자신의 극한 슬픔과 절망감을 표현하는 행위였습니다(37:34, 왕상 21:27). 그들이 베냐민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이처럼 절망적인 비통감에 사로 잡힌 것은 그들이 베냐민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나타내 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2) 돌아오는 형제들(13절) 

       요셉의 형제들은 옷을 찢는 감정적 비통에만 그치지 않고 모두 다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요셉의 청지기의 제안(10절)에 따라 베냐민만 버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자루에서는 잔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책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베냐민을 희생시킴으로써 자신들이 살고자 하는 꾀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시 짐을 꾸려 베냐민을 위하여 돌아옴으로 자신들의 자유와 생명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사랑이 있음을 행동으로 증명한 것입니다(고후 2:8, 8:8, 요일 3:1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고린도후서 8:8, 개역개정 성경)

    3) 연대 책임을 말하는 유다(16절) 

       유다는 재차 애굽을 방문할 때 형제들의 인솔자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험을 위해 꾸며진 일이지만 베냐민을 제외한 다른 형제들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정직을 주장하면서도 과거에 그들이 요셉에게 행한 죄를 드러내면서 베냐민을 살리는 대신 그들이 모두 종이 되겠다고 하여 형제애를 입증하였습니다. 

    요셉과 베냐민

    (3) 회개에 합당한 열매(창 44:14-34)   

       본문에서 유다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변명과 술수로 그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지 않고 자신과 형제들의 현재까지의 상황을 회고하며 자기들의 과거에 범한 죄를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회개하였다는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죄를 솔직하게 고백함(16절) 

       유다는 자기들이 지은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를 적발하셨다는 유다의 고백은 과거 그들이 지은 죄를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입니다(42:21, 22, 28). 어떤 사람이 진실로 회개하였느냐의 여부는 그에게 자신의 죄에 대한 입술의 고백이 있느냐, 없느냐로 증명되어질 수 있습니다. 

    2) 아버지를 염려함(18-31절) 

       유다와 형제들은 베냐민의 죽음으로 인해서 아버지 야곱에게 미칠지도 모르는 무서운 결과에 대해서 심히 염려하였습니다. 유다는 자기의 탄원 속에서 아버지의 형편에 대해 애절한 모습으로 실감 있게 묘사하면서(22, 31절) 아버지에 대한 극진한 효도를 보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요셉을 애굽으로 팔아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은 과거의 죄를 회개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3) 자신의 희생을 제안함(32-34절) 

       유다는 베냐민을 위해서 자신이 희생을 감수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33절). 자신이 죄의 대가를 감당하고 베냐민을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유다의 행동은 아버지와의 약속 때문이기도 했지만 참된 회개 없이는 불가능한 행동이었습니다. 회개는 슬퍼하고 뉘우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행동은 참으로 의로운 것이었습니다. 

     

    (4) 유다의 탄원(창 44:18-34)   

       유다는 베냐민을 살리기 위해서 요셉에게 격조 높은 탄원을 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훌륭한 간청으로서 성경 역사상 그 의의가 빛나고 있습니다. 

     

    1) 지극히 겸손한 것이었다(18절) 

       유다는 요셉은 '내 주여'라고 칭하면서 자신은 종의 위치에서 상전에게 말할 때처럼 겸허한 자세로 간청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말보다도 더 예의 바르고 겸손한 말을 생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의 모든 말이 겸손하고 예의가 바르기에 요셉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듣는 사람이 전혀 화를 낼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2) 거짓이 없이 진실하였다(19-26절) 

       유다의 탄원은 변명이나 꾸밈이 없는 솔직하고 진실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궤변적인 방법이나 논쟁적인 설득을 하려 들지 않고 그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설명하였습니다. 거짓 없는 진실한 말은 어떤 논리적이고 수사적인 말 보다도 더욱 힘이 있는 것입니다. 

    3) 비통함을 표시하였다(27-32절) 

       유다는 베냐민을 그 아비가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베냐민의 어미가 죽었고 그 형제가 죽었다는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아니하면 그 아비가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된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유다의 애끓는 심정이 매우 감동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4) 자기희생을 보여주었다(33, 34절) 

       유다는 베냐민 대신에 자기가 종신토록 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탄원은 자기 자신의 생명과 이익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부친과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자기희생적인 간청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의 모형인 것입니다. 



    3. 나가면서   

       유다의 희생적인 사랑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한 그의 결정은 극적인 반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사랑이 결국 모든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는 말씀처럼, 우리의 희생적 사랑 역시 우리 삶에 찾아오는 고난을 극복할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유다를 기억 하며 우리가 함께 사랑을 베풀며 살아갈 때 여전히 이 땅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4. 더 읽으면 좋은 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