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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이스라엘 성지순례

간추린 이스라엘 역사

by OTFreak 2020.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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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이스라엘 역사,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시작

 

목차

     

    들어가며

       역사를 살펴본다는 것은, 엄청난 자료들을 공부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역사는 짧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긴 역사를 세세하게 살펴본다는 것은, 그만큼 긴 시간이 필요하며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인인 우리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다른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아마도 더 큰 수고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정리된 역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역사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선사시대로부터 이스라엘의 독립까지의 내용에는 성경에 언급된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것의 역사도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책으로서의 이스라엘 역사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가장 오래된 도시, 여리고

    간추린 이스라엘 역사

     

    선사시대(주전 8,000년 - 5,000년)

      신석기 혁명으로 인해 구석기 시대가 끝이 나는 시대입니다. 유목생활도 하지만,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부터 이집트의 나일강 계곡까지 농업과 가축 사육이 정착지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갑니다. 이때 도시 여리고(Jericho, יריחו)가 세워집니다.

     

    가나안의 머리이자 맹주도시국가였던 하솔의 유적지

    고대 성경시대(주전 5,000년 - 1,200년)

      도시 국가들이 나타나고, 무역을 위한 길들이 개발되며 제국이 부흥해 나가던 시기입니다.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던 우르로부터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온 시대입니다. 큰 기근으로 인해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어쩔 수 없이 이집트로 내려가야만 했습니다. 청동기 시대 이집트는 가나안의 도시들을 더 확실하게 통치하기 위해 북쪽으로 그 세력을 팽창시키던 때입니다.

     

    시내 광야의 이집트 군인과 장갑차

    이스라엘 민족 시대(주전 1,200년 - 900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이집트로부터 탈출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약속의 땅을 정복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왕을 요구할 때까지 사사들이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립니다. 다윗 왕은 철기 시대에 성장하는 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합니다. 그리고 "해양 민족(sea people)"이라 불리는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수도로 삼습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은 1차 성전을 완공합니다.

     

    헤롯대왕의 건축품인, 지중해변의 가이사랴 유적지

    앗시리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 시대(주전 900년 - 63년)

      솔로몬이 죽은 후, 이스라엘 왕국은 둘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성전과 예루살렘 성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파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키루스 왕(성경의 고레스, Cyrus)이 포로들의 귀환을 허락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다시 짓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그리스 문화가 퍼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각 지역의 종교들은 여전히 존중되고 유지됩니다. 셀류코스 왕조(Seleucid)가 마카비 혁명에 불을 붙이게 되고 하스모니안 왕조가 통치하는 독립적인 유대인 국가가 다시 세워지게 됩니다. 폼페이가 유대 지방을 로마를 위한 완충 지대로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의 헤롯 성전

    헤롯, 예수 그리고 예루살렘의 파괴(주전 63년 - 주후 200년)

      헤롯 대왕이 두 번째 성전을 재건하였으나 그의 아들들은 왕국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나누어진 유대 지역은 로마의 속주들이 되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대격변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을 경멸하던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가 유대 지역의 총독이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사마리아인들을 학살하였습니다. 빌라도는 불명예스럽게 고향으로 쫓겨 가듯이 돌아갔으나, 여전히 유대 지방은 불안이 계속되었습니다. 폭동이 일어나며 유대 국가 지역에 광범위하게 반란이 지속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사다(Masada)와 예루살렘(Jerusalem)에서 결사 항전을 벌였습니다. 50,000명의 로마 군대가 폭동과 반란을 진압하였으며, 헤롯 성전(2차 성전)을 파괴하였습니다. 60년이 지난 후, 2차 반란이 발생했지만 다시 진압되었으며 예루살렘 성은 완전히 파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묘교회

    초기 기독교와 비잔틴 시대(주후 200년 - 630년)

      콘스탄틴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탄압을 끝냈습니다. 그의 어머니 헬레나 왕후는 성지들을 찾아 내었으며 처음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서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동로마 제국은 비잔티움에서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페르시아인들이 성지를 점령하고 대부분의 교회를 파괴하였습니다. 비잔틴 제국이 그로부터 10년 동안 성지를 되찾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산에 위치한 황금돔 사원

    아랍 정복 시대(주후 630년 - 1,099년)

      모함메드가 이슬람 교리를 설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세대가 끝나기도 전에 이슬람 제국이 아라비아 반도로부터 와서 성지를 점령하였습니다. 아랍의 통치 시기에는 예루살렘이 이슬람교의 세 번째 거룩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셀쥬크 투르크(Seljuk Turks)가 시리아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교회들을 파괴하였으며 그리스도인 순례자들을 박해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십자군 성채, 벨 보아

    십자군 시대(주후 1,099 - 1,250년)

      교황이었던 우르바노 2세(Urban II)는 "이교도"로부터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수천명의 기사들을 고용하였으며 마침내 십자군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왕국은 100년이 채 지속되지도 못하였으며, 아랍-그리스도인 사이의 증오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전쟁은 치열해졌습니다. 사자왕 리처드(Richard the Lionheart)는 3차 십자군 전쟁을 이끌었으나, 예루살렘을 재탈환하는데는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라틴제국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살라딘(Saladin)의 아유비드(Ayyubid) 계승자들은 십자군들에 대한 인내를 가졌으나, 마믈룩(Mameluks) 왕조는 그들의 정책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마믈룩 왕조 시대의 아치형 건물 흔적

    마믈룩 시대(주후 1,250년 - 1,517년)

      이전의 터키 출신의 노예 전사들이 이집트에서 세력을 얻기 시작하였고 몽골 제국의 침입을 방어해 내었으며 마침내 악고(Acre)에 끝까지 주둔해 있던 마지막 십자군들을 몰아 내었습니다. 멋진 건축학적인 유산들을 많이 남겼으며 예루살렘은 아랍 학문의 중심지로 남아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기울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마믈룩 왕조는 북쪽에서 온 새로운 힘에 의해 무너질 때까지 예루살렘을 지배했습니다.

     

    오토만 제국 시대의 예루살렘

    오토만 제국 시대(주후 1,517년 - 1,900년)

      마케도니아 지역에서부터 아라비아 지역까지 오토만 투르크(Ottoman Turks) 제국은 그 영토를 확장해 나갔으며 400년 동안이나 통치하였습니다. 슐레이만 대제(Suleimann the Magnificent, 1520-1566)는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았으며 제사를 위한 많은 제의 장소들을 수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후대에 와서는 제국이 서서히 기울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가 시리아를 침공하려 하였으나 악고에서 패배하였었습니다. 동유럽에 살던 유대인들로 구성된 19세기의 유럽의 세력들을 힘 입어 유럽인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시온(Zion,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현대의 이스라엘 행정수도, 텔아비브

    이스라엘 국가(주후 1,917년 - 2,000년)

      1차 세계 대전 이후, 알렌비 장군(General Allenby)이 성지를 차지하였으며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도록 위임하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수십년 동안 시대가 불안정했으며 나치가 홀로코스트를 자행하게 됨으로 인하여 UN은 유대인 국가 건설을 위한 투표를 실시하였습니다. 1948년 5월 14일 다비드 벤 구리온(David Ben Gurion)은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을 선언하였습니다. 수십 년의 전쟁을 통하여 이집트와 평화 조약을 맺었고 그 이후에 요르단과도 평화 조약을 맺었습니다. 새로운 천년에도 팔레스타인 인들과 레바논과의 협상을 통하여 평화를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나가면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 보았습니다. 역사는 계속되는 것이며, 지금도 이스라엘은 새로운 역사를 세계 속에서 써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와의 관계도 밀접해지고 교류도 많아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의 또 다른 우리나라의 동맹국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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