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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성경 사전

고엘, 구원을 가져다 주는 자

by OTFreak 2020.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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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던 하나님께서는, 형사취수법(형제계대법)을 통하여 집안이 끊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셨습니다. 창세기 38장에 나오는 유다와 다말의 사건 역시 이러한 개념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고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족과 친족을 서로 보호하고 지키는 역할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처럼 은혜로우심은, 모세를 통하여 고엘을 법률화 시키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까지 고엘의 은혜를 확대하셨습니다.

   오늘은 온 인류를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엘의 사랑을 구약적인 의미를 통해서 살펴 보고자 합니다.

 

목차

     

    고통에서 구원을 가져다 주는 자, 그의 이름은 고엘

     

     

    들어가며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대속적 사역을 구약성경에서는 '고엘'(גאל)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는, 오직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구원 사역만 '고엘'이라 부르지 않고, 여러 부분에서 나타나는 '대속적 은혜'를 '고엘'이라고 표현합니다.

       흔히 말하는 '형사취수법'이나 '기업 무를 자'로 고엘을 설명하며, 신발을 벗음으로써(룻 4:7) 고엘을 포기한다는 의사 표현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신발을 벗어 의무를 포기한 사람은, 침을 뱉어 멸시했습니다(신 25:9-10).



    고엘, 구원을 가져다 주는 자

     

    어원적으로

       '고엘'의 히브리어적인 의미는, "가족이나 친족을 어려움에서 회복시키는 것"(to redeem)을 뜻합니다. 원래 고엘은 동사형 '가알'(גָּאַל)에서 나온 명사형입니다. '가알'이라는 말 역시, 속전을 주고 구제하다, 대신 보상해 주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고엘이 '기업 무를 자', '대속자', '구원자', '대신 보상 하는 자' 등의 의미로 해석이 되었으며, 구약성경의 유다나 보아스, 조카 하나멜의 밭을 대신 사 줘야 했던 예레미야 등이 고엘의 역할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대 근동 세계의 결혼 제도

       비옥한 초승달 지역으로 분류되는 고대 근동 지역은 비슷한 문화와 풍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나일강 문명과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생겨난 이 지역은, 고대로부터 매우 선진적인 법과 정치제도를 가진 것으로 고고학적인 발굴들을 통하여 밝혀지고 있습니다.

       공통적인 문화와 법률을 가진 이 지역에 속한 가나안 땅 역시 이러한 환경에 영향을 받았으며, 구약성경의 여러 관습들 역시 고대 근동의 그것들과 유사하였습니다. 계약규정이나 법률조항 등은 구약과 고대 근동 사회가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잘 보여 주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앗수르나 헷 족속들에게는 특별히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 후 자녀 없이 죽으면, 첫번째로 그의 형제가 두 번째로 그의 아버지가 그 여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 법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전쟁이 잦았던 고대 근동의 사회 속에서, 남자들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집안의 대가 끊어지는 일들이 빈번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구약성경의 결혼 제도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일부일처제(monogamy)를 원칙으로 정하셨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들의 경우를 볼 때, 대부분이 일부일처제를 유지했었고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사라가 요청하여 하갈을 첩으로 두었고 그두라는 사라의 죽음 이후에 맞아들였기에 재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일부일처제를 하나님께서 기본적으로 명령하신 이유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비유하시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이스라엘을 신부에 비유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일부 족장들이나 왕들(가인이나 에서, 솔로몬 등)은 여러 아내를 두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고대 근동의 사회와 유사하게 이스라엘에서도 중산층은 3명 정도의 아내를 두는 것이 보통이었던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아마도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동화된 결과라고 볼 수 있으며, 그 결과 하나님 외의 우상도 쉽게 숭배하면서도 죄로 인식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고엘 사상

       구약성경의 고엘 제도는, 단순히 형사취수법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레위기 25:23-25에서는 토지를 팔았다가 다시 찾아올 능력이 없을 때, 친척이 그 판 토지를 무르고 돌려줄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25:47-49에서는, 이스라엘 사람이 가난하여 외국인에게 종으로 팔려갔을 경우에도 가까운 친척이 고엘이 되어 그를 해방시켜 주어야 했었습니다.

       이처럼 다시 되찾아 주는 것뿐 아니라, 복수자의 역할도 고엘이 했었습니다. 민수기 35:16-19에서는, 친족 중에 한 사람이 다른 이에 의해 살해당했을 때 그에게 피의 복수를 하는 사람을 고엘이라 불렀습니다. 단, 이 부분에 있어서 가해자가 고의로 살인한 경우가 아니라면 도피성으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또, 민수기 5:6-8에서는 다른 이에게 잘못을 범하여 보상해 줘야 하는데 피해자가 죽고 없으면, 죽은 피해자를 대신하여 가해자의 속전을 받는 일 역시 고엘의 역할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분인 형제 계대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고엘이었습니다. 형제가 자식이 없이 죽었을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친척의 순서에 따라 죽은 형제의 부인과 계대 결혼을 하여 후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신명기 25:5-8의 수혼법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엘, 집안의 대를 이어주는 자, 유다와 다말

     

     

    계대 결혼과 고엘(창세기 38장의 유다와 다말 사건)

       계대 결혼(Levirate marriage) 제도는, 모세가 성문법화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명령을 통하여 족장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켜져 내려왔습니다. 특히 창세기 38장에는 그러한 내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유다의 장남인 엘과 며느리 다말 사이에 자녀가 없었고, 엘이 악하여 하나님께서 죽이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장남인 엘이 자녀가 없이 죽자, 둘째인 오난이 형수 다말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고 그 집을 지켜 주어야 하는데 오난은 그 의무를 저버림으로써 하나님께 벌을 받아 죽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유다는 막내인 셀라마저 죽게 될까 두려워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보내 수절하게 만듭니다. 그 이후에도 셀라를 다말에게 주기를 거절함으로써, 결국 변장한 며느리 다말과 시아버지 유다가 동침하여 쌍둥이를 낳게 되는 과정이 창세기 3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엘의 순서 상, 형제인 셀라 다음에는 시아버지인 유다가 다말과 동침하여야만 하는 것이 맞으므로 다말이 유다에게 접근한 것은 계대 결혼제도에 의하면 정당한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말의 행동이 음탕하거나 비윤리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계대 결혼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기 때문에 나온 잘못된 비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유다도 다말에게 '네가 나보다 옳다'라고 인정하였으며, '옳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짜다크'(צדק)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말은 "의롭다"입니다. 유다보다 다말의 모든 행동들이 훨씬 의로우며 정당하다는 인정의 말입니다.

     

    *더 읽어보기 : 2020/09/02 - [나의 설교/새벽예배 설교 - 매일성경] - 창세기 38장 1절 - 30절, 성도, 비버리 단추와 같은 존재 Saints and Beverly Buttons

     

     

    고엘, 기업을 무르는 자 보아스와 룻



    보아스와 고엘(룻기와 기업 무를 자)

       고향 베들레헴의 땅을 팔고 모압으로 건너 간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집안은, 모압에서 며느리들을 맞이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10년 만에 집안의 가장과 아들들은 자녀도 없이 죽었고 세 과부인 나오미와 룻과 오르바만 남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오미와 룻은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와 이삭을 주우며 가난한 삶을 연명해 나갑니다. 이 과정 속에서 '보아스'라는 친척을 만나게 됩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에게 '기업 무를 자'(구원자)로 등장하게 됨으로써 룻이 아들을 낳게 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러브 스토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고엘'의 제도를 충실하게 이행한 보아스에 대한 이야기이며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가 고엘이심을 미리 보여 주신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룻기서에서는,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고엘이 있었지만, 그는 '죽은 친척의 재산도 되찾고 결혼도 해야 하는' 이중적인 자신의 고엘의 의무를 포기하겠다고 외치며 신발을 던집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제1고엘의 뒤를 이어, 기업 무를 자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합니다.



    희년 제도와 고엘

       안식년이란, 6년 동안은 농사를 짓고 제7년째에는 그 땅을 묵혀 두어야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레 25:2). 안식년에는 파종하지도 말고 포도원을 다스리지도 말며 스스로 난 것도 그대로 두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안식년을 통하여 모든 땅이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인정하는 것인 동시에, 안식년은 가난한 자와 야생동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땅 주인이 돌보지 않고 묵혀 둔 땅에서 나는 모든 열매는 가난한 자와 야생 동물들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식년과는 달리, 50년째가 되는 희년에는, 모든 땅이 원 소유주에게로 돌아가게 됩니다(레 25:8-17).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의 땅을 모르는 사람이 아닌 친척들에게 그 땅을 팔았고, 여전히 빚을 갚아 땅을 되찾을 여력이 없을 때면 50년째 되는 희년에 그 땅을 무상으로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2~3대가 지나면 땅을 다시 되찾게 되는 희년 제도 역시 고엘과 관련이 깊은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고엘은 고통에서 구원해 주는 구원자이다

       

    욥과 고엘

       고난 중에 있던 욥은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구원주가 살아 계시다"(욥 19:25-27)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무죄함을 알아주고 고통 속에서 구원해 주실 분, 즉 고엘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욥이 고백한 고엘은 앞서 언급한 유다와 다말 사건, 보아스와 룻의 결혼, 희년 제도와는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고엘의 사상은 현실적인 측면에서의 회복을 말합니다. 부족한 것을 채움 받고 끊어진 것을 이어가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욥이 말하는 고엘이란, 고통 속에서의 "구원"을 가져다주는 고엘을 의미합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고엘을 말하자면, 욥의 친척이 욥의 재산을 다시 회복시켜 주도록 돕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욥은 그러한 재산의 회복을 말하지 않습니다. 고통에서의 구원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즉 메시아에 대한 갈망과 맞닿아 있다고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욥이 그토록 갈구하는 고엘, 구원주는 자신을 고통에서 건져 주시고 죽음 이후에 만나 주실 메시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언 사상과 고엘(예레미야 32장)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에워쌈으로 인하여 곧 예루살렘이 점령당할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조카 하나멜의 밭을 사라'고 명령하십니다. 아마도 하나멜의 부친인 살룸은 이미 전쟁에서 죽은 것 같으며, 하나멜에게는 아나돗에 있는 작은 밭을 상속으로 물려준 것 같습니다. 아나돗 지역은 제사장들이 거주하는 곳이었기에 작은 밭이었을 것인데 그 밭을 예레미야가 사서 무르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적군이 이미 예루살렘을 포위한 상황 속에서, 성 밖의 땅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고 상식적으로는 가치 없어 보이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 땅을 사서 무르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포로 생활 후 돌아오게 될 것이며 귀환 후에는 각자 자기의 기업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언의 의미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와 관련된 고엘의 의미는, 장차 포로에서 귀환할 것이라는 예언적인 내용이라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고엘과 구원하심

       고엘은, 나의 능력이 없을 때 나를 대신하여 곤란에서 건져 주는 누군가를 의미합니다. 그 누군가가 재산을 회복시켜 주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집안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해 주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욥이 고백한 바와 같이 메시아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의미와 역할을 구약성경에서 설명하든지, 고엘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구원자'임을 가르쳐 주는 단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스스로는 결코 이를 수가 없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스스로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뜻에서, 모든 인간은 다말이며 룻입니다. 또한 가난한 자요 과부요 나그네와 같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신(神)이면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나를 대신하여 대가를 받지 않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죄로부터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계속 언급하고 있는 완벽한 "구원자"이자 "고엘"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고엘의 표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완전한 고엘, 예수 그리스도



    나가면서

       이상으로, 고대 근동의 결혼제도와 이스라엘의 결혼제도가 같은 문화권 속에서 유사한 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구약성경이 말하는 고엘의 의미와 종류들을 정리하였으며, 그 가운데 진정한 의미의 고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제시합니다. 그 누구도 완벽한 고엘이 될 수 없으며, 오직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고엘이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고엘이심을 믿는 자만이 진정한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다양한 고엘의 모습을 통하여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반복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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