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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성경 사전

쿠르크 비문, 아합의 실체를 보여주다

by OTFreak 2020.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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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승자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역사와 사건을 평가하고 기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선민의 기록이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선민인 남유다의 입장에서 보면, 북이스라엘과 아합 왕은 악한 자로 보일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지만 올바로 경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북이스라엘과 아합 왕에 대한 고고학적이고 역사적인 평가는 성경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과 아합 왕에 대한 평가의 온도 차이를 잘 나타내 주는 고고학적인 자료가 바로 “쿠르크 비문"입니다. 이 비문은 아합 왕의 실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목차

     

    쿠르크 비문에 새겨져 있는 살만에셀3세의 모습과 설형문자로 기록된 살만에셀3세의 업적들

     



    쿠르크 비문, 아합의 실체를 보여주다

     

     

    들어가며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타국의 유물들을 자기 나라에 전시하고 있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유물들도 타국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보도로 있습니다. 몇 해 전 외규장각 의궤가 프랑스에서 우리나라로 반납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분명 남의 나라 유물이지만, 자기 것인양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유물이 있습니다. 이 유물은 특별히 구약성경의 아합 왕의 군대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더욱더 중요성이 부각되는 유물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유물은 앗수르 제국의 살만에셀3세가 남긴 ‘쿠르크 비문'입니다.

     

     

    쿠르크 비문의 발견

       1861년 영국의 동인도 회사 대리인이자 쿠르드에서 영국 영사로 있었던 영국 외무부의 ‘존 조지 테일러(John George Taylor)는, 터키의 쿠르크 지역에서 이 중요한 내용이 담긴 비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테일러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 운 좋게도 앗수르 왕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비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비문은 높이 2.21m, 너비 87cm, 두께 23cm의 석회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양쪽에는 설형 문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살만에셀3세의 정복전쟁

     

     

    쿠르크 비문의 내용

       이 비문에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앗수르 제국의 왕인 살만에셀3세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만에셀3세는 앗수르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왕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스라엘의 왕과 처음으로 접촉한 앗수르 왕입니다.

       쿠르크 비문에 의하면, 살만에셀3세가 남진 정책을 실시함으로 인해, 아람 제국을 중심으로 주변의 국가들이 동맹을 맺게 됩니다. 그리고 아람을 중심으로 동맹을 맺은 11개의 국가들과 살만에셀3세가 이끄는 앗수르 제국이 시리아 북부의 오론테스 강에서 카르카르 전투를 치르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앗수르 왕 살만에셀3세는, 적의 군사 14,000명을 죽였다고 비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 전쟁에서 살만에셀3세가 패배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왜냐하면 앗수르 왕들은 전쟁에서 패했다고 기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비문에 등장하는 살만에셀3세는 거룩한 4개의 상징과 별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신들이 그를 보호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목에는 의식용 목걸이를 걸고 있으며, 권위를 상징하는 오른손을 들고 있습니다. 비록 그가 아람을 중심으로 한 동맹군과 치른 카르카르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여전히 권위 있음을 보여 주는 내용입니다.

     

     

    성경에서 표현한 아합 왕

       특별히 주목할 내용은, 이 비문에 아합 왕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아합이 매우 악하고 야비한 왕 혹은 찌질한 왕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고 싶지만 가지지 못하자 괴로워하며 아내 이세벨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합니다. 왕으로서 찌질해 보이는 모습입니다.

       게다가 이세벨이 바알 우상을 북이스라엘 전역에 전파하는데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암묵적인 동조를 한 왕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에게도 여러번 책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은 왕이었습니다.

     

     

    더 읽어보기

    2020/09/01 - [나의 공부/하나님과 동행 하는 삶] - 아합, 죄를 탐닉한 사람

     

     

    카르카르 전투에서 참전하여 활을 쏘는 아합

     

     

    쿠르크 비문이 표현한 아합 왕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성경에서는 아합이 악한 왕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 역사상에서는 아합의 북이스라엘(흔히, ‘오므리의 집안’으로 불린다)은 제법 강대한 나라였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아합 시대의 북이스라엘 군사력을 잘 보여 주는 비문이 바로 ‘쿠르크 비문’입니다.

       이 비문에는 앗수르 제국에 저항하여 아람을 중심으로 동맹한 국가들과 군사들의 수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

    아람-다마스쿠스의 하닷-에제르의 전차 1200대, 기병 1200명, 보병 20000명.
    하맛의 이르훌레니의 전차 700대, 기병 700명, 보병 10000명.
    이스라엘(Sir-'-la-a-a)의 아합(A-ha-abu)의 전차 2000대, 보병 10000명.
    .......
    이 열두 임금을 그가 동맹으로 데려왔다.
    그들은 나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싸우러 왔다.
    나의 주, 아슈르가 나에게 준 영광의 능력을 사용하여
    나의 앞에서 서 있는 네가르가 부여해 준 강한 무기들로 나는 그들과 싸웠다.
    ........
    나는 그들의 몸을 넓게 흩어 놓고 광대한 군대로 황량한 평야의 얼굴을 덮었다. 
    내 무기를 사용하여 그들의 피를 계곡(?)으로 흐르게 했다. 
    평원은 너무 작아서 시체가 쓰러 질 수 없었고, 
    넓은 시골은 그들을 매장하는데 사용되었다. 
    다리(?)처럼 몸으로 오론테스 족을 꿰뚫었다. 
    그 전투에서 나는 그들의 전차, 기병, 길들인 말들을 그들에게서 빼앗았다.

    "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람 제국의 전차보다 아합의 전차가 월등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합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면서 그의 군사력이 아람을 능가하는 정도임을 표현하는 이 비문을 통하여 당시 북이스라엘의 군사력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쿠르크 비문의 내용에 대한 반론

       물론 학자들 중에는, 아합의 전차가 정말 2천대였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먼저는, 카르카르 전투가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앗수르를 상대로 한 큰 전쟁이었던 카르카르 전투에 참전한 아합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거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해 주신 말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성경은 카르카르 전투에 대해서는 전혀 우리에게 알려 주는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적인 비문이 발견되고 그 비문 속에 아람을 능가하는 전차의 숫자가 적혀 있다는 사실은, 아합과 북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아람보다 우위에 있다고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므리의 집

       다음으로, 고고학적인 여러 자료들에서는 북이스라엘을 ‘오므리의 집'이나 ‘사마리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합이라는 이름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아합’이라는 말을, 팔레스틴 지역의 북부에 ‘이스라엘'과 이름이 유사한 강대국이 있었고 그 당시의 왕의 이름이 ‘아합'과 유사한 이름이었을 것이라는 궁색한 주장을 합니다. 

       말 그대로 궁색한 주장일 뿐, 이 비문의 내용에 등장하는 아합을 성경에 나오는 그 아합 왕이 아니라고 억지로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2백대의 오타

       그리고 전차 2천대가 사실은 2백대의 오타라는 주장도 있는데, 왕의 전적을 기록하는 비문에 오타를 낸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듭니다. 

     

     

    북이스라엘은 강대국이었다

       이스라엘 핑켈슈타인 교수는 이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중계 무역과 구리 광산, 그리고 올리브 등의 수출로 엄청난 부를 유지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말은, 전차 2천대를 유지할 만큼 부유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아람을 중심으로 모인 동맹국이지만, 사실은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동맹국의 실질적인 수장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살만에셀3세의 현무암 동상

     

     

    나가면서

       역사적으로 북이스라엘은 남유다에 비해 강대국이었습니다. 부유함과 군사력은 남유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강하였습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절정기에 아합 왕이 있었습니다. 아합의 부유함은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지만, 쿠르크 비문에 의해 직접적인 증거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쿠르크 비문의 발견은 성경과 고고학을 연결하는데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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