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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9-10, '의로운 노아'에 대한 주석

by OTFreak 2020.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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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창세기 6:9-10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창세기 6:9-10, '의로운 노아'에 대한 주석

     

    의로운 노아 Righteous Noah

     

       창 6:9                                                                                                             

     

       노아와 홍수

       노아는 정직한 성품(즉,“유일한 선한 사람”)으로 “당대의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경건함과 의로운 용기는 후대에 가서 유명해졌고(겔 14:14, 20; 사 54:9-10), 일반적으로는 경건의 미덕(히 11:7; 벧전 3:20)과 연관되어 “의를 전파하는 자”(벧후 2 : 5)라는 독특한 명칭으로 불려지는 인물입니다. 유대 문학에서는 역사적으로 의의 모범으로 노아를 기렸으며(예 : 시락서 44:17; 지혜서 10:4; 제1에녹서 67:1), 그의 탄생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로 그의 명성을 더 높였습니다(예 : 1 QapGen 2; 제1에녹서 106).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이야기 (“창세기 1-11장과 고대 문학”을 참조하라)와는 달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스스로 표현하거나 설명하는 노아의 행동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신학적으로 노아를 위한 하나님의 선택적인 목적이 있음을 보여 주며,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순종적인 행위들 이전에 벌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행복을 누렸음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아는 외경의 '희년서'과 '제1에녹서'에서 타락한 땅을 위해 속죄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적 순결의 법칙을 끝까지 유지해 나가는 제사장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을 위한 상징으로 기록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신약 성경에도 우리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37–38, 벧후 3:3–7).

       초기 기독교 전통에서 노아의 홍수와 방주는 “물과 신앙과 나무'를 통해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십자가의 상징과 세례를 받는 교회의 모습으로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직면한 타락의 시대 속에서도 계속해서 믿음을 지킬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노아와 동시대의 사람들

       창세기는 노아와 그의 동시대 사람들의 관계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유대인과 교회의 상상력이 이러한 빈틈을 채우려고 시도하였습니다. 노아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미리 경고하고 촉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경고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가 외치는 소리를 거부하였습니다. 노아는 인류의 멸망을 예고하는 충성스러운 설교자로 표현이 되고 있지만, 당대의 사람들은 그를 정신 나간 사람,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며 비웃었습니다. 

       요세푸스(Josephus)는, 그가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생명이 위협받는 것을 염려하여, 가족과 함께 그 지역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또 루터(Luther)는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그를 둘러싸서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적이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 정도로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름으로 인하여 당대의 사람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의를 선포하는 설교자”(벧후 2:5)였던 노아는 창 6:9의 말씀을 잘 나타내고 있는 인물이며 방주를 만드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당대의 사람들에게 회개에 대해 외치고 있었습니다(벧전 3:19-20; 6:2). 베드로는 노아의 시대에 악인에 대한 심판과 경건한 의인(즉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 분명하게 드러난 것처럼, 베드로의 시대에도 거짓 선생과 복음에 충실한 사람들에게 동일한 심판과 구원이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한 확고한 외침은 지금도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저자에게는 노아의 회개에 대한 외침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정죄”한 것이 그의 믿음의 상징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 11:7, 개역개정 성경)

     

    노아의 방주

       노아에 대한 세 가지 표현들

       노아는 “의로운 사람”, “흠 없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는 세 가지 문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노아에 대한 각각의 표현들은 서로 다른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노아의 삶에 대한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통제할 수 없는 악(惡)이 세상에 가득 차 있던 날 동안에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누리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동시대 사람들과는 분명하게 구별이 되며 눈에 띄는 사람이었습니다 (6:5). “의로움"(righteous, צדיק)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노아에게 처음 사용되면서 이 구절에 나타납니다.

       노아의 의로움에 대한 평가는 창 7:1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인정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의로운 행위가 홍수 속에서도 노아와 그의 가족이 구원받게 되는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의로운”(צדיק)이라는 단어는 종종 “의로운” 사람 또는 올바른 행동의 표준(예 : 15:6)이 되는 "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거룩하심이 모든 율법의 기준이라고 표현합니다(예 : 신 32:4). 율법의 의로운 기준에 맞는 사람은 죽음을 당하지 않지만(출 23:7) 범법자는 하나님의 보복을 반드시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애굽 왕 바로와 마찬가지로, 출애굽기 9:27). 노아의 의로운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였으며, 그는 자신의 세대가 행한 “폭력”을 당했기 때문에 홍수의 시련에서 살아남습니다.

       “흠 없는”(תמים)은 “완전하고 건전한”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사람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성실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예 : 신 18:13; 잠 11:5; 참조, 창 20:5–6). 이 단어는 하나님의 인격을 특징짓기 위해 사용하는 “의로우심”이라는 단어와 함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나타날 때 사용됩니다(예 : 신 32:4; 참조 시 18:30 [31]; 19:7 [8]). 

       욥의 경우, 그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항의를 하면서 “의롭다”와 “흠 없는”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합니다 (욥 12:4).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욥 12:4, 개역개정 성경)

       이 내용들은 욥을 “진실한”(integrity, תום; 예 : 1:1, 8 ; 2:3; 9:21–22)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흠없는” 건강한 동물(תמים)을 설명하는 제사적 용어로, 주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에 사용되기도 합니다(예 : 출애굽기 12:5; 레위기 1:3). 

       노아에 대한 이러한 언급들은, 그가 죄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악인처럼 행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뱀과 여자의 “씨”(3:15) 사이의 적대감에서 처음 예상되었던 경건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대립은, 노아와 그의 세대가 완전히 구별되면서 계속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당시의 흠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이러한 모습들은 죄 많은 세대의 유혹에 굴복하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크게 깨달음을 주는 모습입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흐름을 따라 타락해 갈 때 자신의 성실함과 신앙적 순결을 유지합니다. 당장은 그의 마음의 신실함에 대한 분명한 보상이 없다 하더라도 “적절한 때에”(갈 6:9) 그의 모습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노아는 에녹처럼 “하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5:22, 24 참조). 이러한 언급은, 노아가 육체적, 도덕적 행위 모두에서 아담의 셋째 아들인 셋과 동일한 의로운 혈통에 속함을 나타냅니다.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고… 하나님과 함께 노아는 걸었습니다”. 고대의 족장인 에녹과 노아 외에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고 표현된 다른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참조 미 6:8) 한 두 사람은, 그들의 이름을 발음할 때 나오는 소리의 유사성에 의해 더욱 깊은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 ḥănôk (“Enoch”, 하노크)와 nōaḥ (“Noah”, 노아흐), 두 이름의 발음이  비슷한 소리를 내는 두 사람은 주님의 “옆에서 함께 걸었다"라고 말해지는 후대의 족장들의 표상이기도 합니다(24:40; 48:15). 

       할례의 언약적인 상징과 의미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족장 이전의 용어로 아브라함에게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삶은 에녹의 본보기(5:22, 24)가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에덴동산에서 걸었던 아담의 모습을 반영하기도 합니다(3:8). 이 장(章)의 족보와 함께. 5절과 11절은 아담에서 노아, 아브라함으로 가는 연결되는 혈통에 대해 언급하고, “하나님과 동행”이라는 신학적인 언어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타락한 세계에서도 나타나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여기시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경건함을 보여줍니다. 아담에서 노아로, 그리고 노아에서 아브라람에게로 말입니다.

     

    당시의 의인이자 완전한 자,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

       창 6:10                                                                                                            

     

       “셈, 함, 야벳”은 5:32의 마지막 족보를 되풀이하는데, 이것은 선택되고 축복받은 세대의 발전에 대한 창세기 저자의 지속적인 관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족장들인 아담, 라멕, 데라 등은 세 아들을 낳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셋 자손(5:32)과 셈족 계통(11:26) 사이의 족보적인 유사성입니다. 아들들의 이름은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자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9:18; 10:1). 7:13을 제외한 홍수 이야기의 다른 곳에서는 "아들"이라는 익명의 용어로만 언급됩니다 (6:18; 7:7; 8:16, 8:18; 9:1, 8). 

       노아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명백한 상속자이기 때문에, 홍수 이후의 인구는 하나님이 노아의 선택된 자손을 통해 약속을 지켜 나가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창세기는 이 세 후손으로부터 모든 민족들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 아들들은, 함의 죄가 보여 주듯이 아버지의 경건한 행동을 본받지는 않았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됩니다(9:22). 이들 중 누가 노아의 선출된 계보를 이어갈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9:26-27; 11:10-26).

     

       참조                                                                                                               

    매튜스, KA (1996). 창세기 1-11 : 26 (Vol. 1A, pp. 356-359). 내슈빌 : Broadman & Holman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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